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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129]나는 서서히 익어가고 있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23.03.15일 16:32
세월의 흐름이 류수같다는 것이 실감난다. 내 마음은 아직도 소녀인 데 거울 앞에 서있는 이 낯 설은 녀인은 누구일가? 눈가에 자글자글 피여있는 주름살, 앞머리에는 그제날의 까맣고 함치르르하던 머리결은 오간데 없고 하얀 새치가 듬성듬성 보인다. 싱싱함을 자랑하던 젊음이 가버린 얼굴, ‘내 나이가 어째서’ 소리는 높은데 마음이 서운해지는 이 감성은 무엇일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가지면서 창밖의 풍경에 눈길을 준다. 꽁꽁 얼어든 두손을 마주 비비며 걸어가는 할머니 한분이 보인다.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커다란 솜옷에 얼굴을 파묻고 마스크를 착용해서 숨 가쁜지 반쯤 열린 마스크로 입김이 서려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가 보다. 조심스레 한걸음씩 뒤뚱거리며 걷는 할머니의 모습이 이 아침의 풍경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필자

‘나도 언제인가는 저 로인처럼 되겠지’ 혼자 말을 중얼거려본다.

재작년에 나는 35년 동안 몸 담그고 살아온 직장을 떠나 퇴직이라는 직장의 굴레를 벗어난 자유인이 되였다. 나의 청춘과 나의 삶이 묻어있던 정든 교단을 이제 아주 떠난다고 하니 아쉬움이 앞섰다.

하지만 젊고 풋풋한 교사들의 정열과 학교에서 진행한 설문조사표에서 ‘학생들이 좋아하는 교사 년령대 테스트 결과 젊고 이쁜 선생이 더 좋다’는 천진하고 솔직한 결과를 보면서 나이 들어서 애들 앞에 서있는 것도 주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교사의 바통을 열혈의 젊은 일대들에게 넘겨주고 때가 되면 직장의 사명감을 완수하고 조용히 떠나는 것이 나의 현명함이라고 생각하고 미련없이 퇴직을 받아드렸다.

나는 더는 구속과 어떤 제한 속에서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아침이면 바쁜 출근시간 때문에 마음 조이는 일이 없고 친구들과 여유롭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좋다.

자고 싶으면 자고 운동하고 싶으면 운동하고 자연에 나가서 마음껏 놀고 싶으면 놀 수 있는 것은 늙어야만 누릴 수 있는 특혜이다. “너는 늙어보았냐? 나는 젊어보았다.” 참 재미있는 말이다. 나는 지금부터 젊음에서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젊어서 터득하지 못하였던 삶의 리치를 늙어가는 길에서 하나씩 배우고 있다. 어쩌면 나이 드는 것은 성숙한 인간이 되는 과정인 것 같다.

30대에서 40대에로 나는 너무나 급하게 허겁지겁 달려온 것 같다. 워킹맘(在职妈妈)이 되여 직장과 엄마의 워 라벨(工作与生活平衡)을 위하여 바쁘게 보냈던 그 시절의 장면들이 잠간 스톱되여 눈앞에 떠오른다.

아침이면 엄마 품을 떠나지 않으려는 앙앙거리는 아이를 남겨 두고 자전거 페달을 부지런히 밟으면서 출근길을 재촉한다. 직장에 도착하기 바쁘게 반급에 들어가 아침 자습을 시작한다. 최근에 일어나는 학생들의 변화를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아이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글도 가르친다. 수업이 끝나고 퇴근을 알릴 때면 하루가 다 지나간다.

매일 바쁜 시간들이여서 언제 한번 여유있게 친구들과 마주앉아 수다 한번 떨 수 없었던 시절들이였다. 나이 먹는다는 것은 생각할 사이도 없이 세월이 흘렀다.

담임을 맡으면서 욕심 많은 교원이였고 가정에서는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집착으로 자식에 대한 과분한 욕심을 가지고 살았다. 모든 것이 순번에 목숨 걸고 최고를 바라보고 살았던 나의 젊은 날이 부끄러워진다.

최고보다 최선을 삶의 목적으로 살았더라면 더 좋았을 터인데 왜서 그렇게 가지고 싶은 욕심이 많았을가? 그렇게 무거운 것을 다 짊어지고 가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고 세상 좋은 것 모두 움켜쥐고 가려는 생각은 부질없는 짓임을 알게 되였을 때는 세월은 많이 흘렀고 나는 자신이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느낄 때부터이다.

나이 들면서 세상을 둥글게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은 똑 부러진 것과 현명함이 전부가 아니였다. 털털하고 넘어지고 깨지면서 조금은 바보스러운 우매함도 사람 사는 냄새임을 알게 되였다.

35년 동안의 직장 생활에서 직장과 가정에만 충실하고 살다 보니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말도 듣는다. 시간적 여유가 많아지니 나의 생활권도 이전보다 많이 넓어지고 있다. 이런저런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어지면서 서로 다른 사람을 알게 된다.

어느 한번 한 사기군의 황당한 속임수에 몇천원의 돈을 눈 깜짝 할 사이에 잃었다. 처음에는 너무나 바보스러운 자신이 어처구니 없게 생각되였다. 책에만 있는 세상만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는 수많은 별별 일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나도 사람이니 사람이 할 수 있는 실수가 가능할 수 있다는 것도 받아드려야만 했었다.

인간은 미완성의 존재인 것만큼 나이 들어가면서도 끝없이 자신을 완성시키려고 노력하는 존재인 것 같다. 나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아마도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실수로 죽는 날까지 후회와 반성을 거듭하면서 살 것같다.

건망증이 심해서 가끔은 치매라는 단어가 떠오르면서 가슴이 덜컥 해진다. 엄마의 4년 동안의 치매 생활을 옆에서 가슴 아프게 지켜 보아왔던지라 세상에 제일 걸리지 말아야 할 병이 치매라고 자주 친구들과 이야기한다.

부엌에서 료리를 하다가 갑자기 무엇인가 부족해서 랭장고 앞에 가 서있기는 하였는데 도대체 내가 무엇때문에 랭장고 문을 열었지? 우두커니 서있는 나 자신이 쓸쓸해보인다.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아침에 아들한테서 체크 카드를 받아서 분명히 꽁꽁 챙겨 넣은 것 같았는데 제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까지 왔을 때 카드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였다. 아들애는 절대 분실될 가능성이 없다고 나를 위안해준다.

상실하여가는 나의 기억력 앞에서 건망증 치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 세월의 방관자가 되면 세월의 노예로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오랜 세월 잊고 살았던 책을 다시 보기 시작한다. 기억이 안된다. 한번 또 한번 기억에 다시 도전하며 책을 보고 글도 쓴다.

건강에 적신호가 온다. 죽는 날까지 걸어서 씩씩하게 천당에 갈 것만 같았는데 걸음걸이도 삐걱거리고 온몸이 고장이 생긴다. 생각해보니 내 몸의 ‘부품’도 사용한지 인젠 60년 세월이 가까와오니 유효기도 얼마 안남은가보다. ‘부품’에 기름도 바르고 교체도 하고 보수가 필요한 나이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게으른 성격도 삶에 대한 새로운 도전으로 부지런해진다.

아침 일찍 일어나면 두만강 유보도를 걷기도 하고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일광산에도 올라본다. 봄날의 일광산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산속의 오염 없는 공기를 허파에 가득 채워 넣으면서 지인들과 즐거운 산책을 즐긴다.

몸도 마음도 힐링이고 자연에 늙어가는 것도 즐거움이고 행복이다. 나이 먹는다는 것은 결코 슬픈 일이 아니다. 젊어서 잊고 살았던 일들을 나이 먹어서 시작하면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본다.

어느 해빛 찬연한 날에는 옛날 동업자들과 간단한 도시락을 준비하고 산속의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비닐을 펴놓고 즐거운 소풍을 즐긴다. 그 동안의 회포도 나누면서 즐거운 웃음꽃을 피우기도 하고〈도라지〉,〈아리랑〉도 한 곡조 부른다.

사진기가 필요 없는 세월에 저마다 촬영사가 되여 행복의 한순간을 놓칠 세라 찰칵찰칵 하면 주름 간 얼굴도 포샵의 혜택을 받아 모두다 하나같이 선녀같다. 주책이라고 하면 어떠랴? 이런 주책도 떨 수 있을 때 실컷 떨어야 하지!

지난봄에 친구 딸애 결혼식에 갔다가 동창생과 다시 만남을 약속하고 집에 돌아온 지 두시간만에 동창의 부고를 받았다. 친구들도 너나없이 믿기 어려운 소식이였고 그날 밤 나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어느새 훌쩍 와버린 지천명의 고개 길, 백년도 못사는 세상인 데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살아온 세월, 내 젊은 시절의 덜 익은 욕심, 인젠 훌훌 털어버리고 살자. 큰 것을 바라지 말고 홀가분하게 마음을 비우면서 즐거움이 충일하게 살아가자.

하루하루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의 길목에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착실하게 계획하고 실천해갈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지금 서서히 익어가고 있다, 성급하게 서두르지도 않고 여유롭게 느릿느릿하게 농익어가면서 세월과 동행하고 싶다…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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