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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시장 나오면 뭐하겠노 외국애들 쓰겠지"

[기타] | 발행시간: 2012.12.30일 12:01
<기획 르포-불경기의 끝을 찾아서>수원 팔달구 지동 새벽 인력시장

경기 불황으로 건설현장 체감경기 추락…비수기 일감 줄어 생계 막막

그들에게 '희망'이라는 건 사치일 뿐이다. 하루 생계를 챙기기에도 빠듯하다.

그들이란 인력시장을 전전하며 하루벌이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일용직 근로자를 지칭한다.

끝날 줄 모르는 경기 불황은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빚은 늘고 물가는 오르고 일자리는 줄어드는 경제난 속에서 그들의 시름은 깊어간다.

더욱 겨울철 '한파'는 힘겨운 삶의 현장에 서 있는 그들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가족과 자식들을 위해 '희망'은 쓰러져 가도 '포기'란 없다. 다행히 사회 곳곳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원방안들을 마련해 주니 버틸만 하다.

이른 새벽 인력시장에서 서성이는 우리 시대의 가난한 아버지들이 오늘도 고단한 몸을 이끌고 강추위를 헤쳐나가고 있다.

을씨년스러운 인력 시장

살을 에는 듯한 겨울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지난 19일 새벽 5시30분. 수원 팔달구 지동사거리 부근의 인력사무소 주변에는 가방을 둘러 맨 중년의 남자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으며 일거리를 찾고 있다.

최근 경기 불황으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든 반면 인력 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늘었다.

마침 이날 대통령 선거일로 임시공휴일여서인지 12여명 정도만 인력시장 주변을 서성거렸다.

"하루 먹고 살기 바쁜데 누가 대통령이 될지 관심없다. 경기가 어려워져 최근 일거리도 많이 줄었다"며 말문을 연 50대 중반의 김모씨는 자신의 처지를 푸념했다.

최근 건설경기가 곤두박질치면서 건설 일용직 일감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수원은 오산, 광교 등 주변 도시 건설 현장이 많아 나은 편이다.

이 중 4명 정도만 일자리를 찾고 나머지는 오전 6시30분이 될 무렵까지 자리를 서성이다 해가 밝을 무렵 자리를 떠났다. 그들 중에는 집으로 돌아가던 길을 돌려 인근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루 돈벌이도 못해 눈치만 볼 수 밖에 없어 몸도 녹일 겸, 소주 한잔으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다.

익명을 요구한 김모씨는 "하루벌어 사는 사람들에게는 매일 일자리를 찾는게 중요하지만 나처럼 일자리를 못 구하는 날이면 아이들 볼 면목이 없다. 집에 가더라도 가시방석이지 않겠는가. 경기가 나빠져 인력시장을 찾는 기구한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박순규 씨(익명·54)는 "가방을 만드는 한 중소 제조업체에 20년간 다녔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쫓겨나게 됐다. 젊은 사람들도 일자리도 없다는데 늙은 사람들이 설 곳은 더욱 없다"며 아쉬워 했다.

박 씨가 올 3월 직장을 잃은 후 노동부 고용센터를 수시로 다니고 벼룩시장에서 사람 뽑는 곳을 수차례 방문해도 받아주는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그래서 구직을 단념하고 이곳에 오게 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실제 경기 부진으로 전체적인 고용이 위축되면서 구직단념자가 19만3000명으로 지난해 10월보다 1만5000명이 급증했다. 청년층 실업률도 여전히 높은 수준인 6.7%를 기록했다.

10월 현재 전체 실업자 중 6개월 이상 실업자가 10.4%를 차지했다. 경기 부진은 고용 한파로 이어져 일하고 싶어도 실업자 10명 중 1명이 6개월 이상 일자리를 찾지 못한 장기 실업자 비중이 높다는 의미다.

실업 장기화는 고용 창출 뿐만아니라 가계부채, 출산, 고령화 문제까지 확산될 수 있어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창때는 적어도 20~30명이 일자리를 구했으나 요즘 들어 예년에 비해 3분의 1수준으로 줄었다는게 그들이 말하는 현실이다.

김모 씨는 식당에 식재료를 납품하는 일을 하다가 1년 전 거래처가 줄어들면서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고 건설 일용직 근로자로 전락했다.

그는 "5~6년 전일때만 하더라도 꾸준히 식당에 손님들이 늘어나고 식자재 주문도 많아지면서 돈 좀 만지고 살았다"면서 "하지만 2년 전부터 식당 거래처들이 줄어 들었다. 저녁 손님이 많아야 매출도 올라가지만 저녁 식당가는 썰렁하기만 하다"고 푸념했다.

심지어 외상으로 식재료를 들여놓고는 도망가는 경우도 많아졌다. 수입을 줄어들고 지출하는 돈은 고정돼 있다 보니 빚을 지면서 생계를 꾸려 나갈 수 밖에 없어졌다. 결국 늘어나는 빚에 가세는 기울었고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도 해보았지만 빚을 감당하기엔 벅찰 뿐이다.

또 다른 50대 후반의 김모씨는 "일을 나간다 해도 하루 일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면서 자신의 기구한 사연을 털어놓았다.

김모씨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5톤 화물차를 소유했던 시절이 있었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거래처 납품을 하면서 집도 장만하고 어렵지 않은 생활을 누렸다.

하지만 IMF 이후 자신에게 요청하는 일감도 떨어지고 천정부지로 오른 기름값 때문에 200km이상 넘는 장거리 운행도 부담스러웠다.

그러다보니 개인적인 친분으로 일감을 요청했던 거래처나 일거리를 소개시켜 준 작업반장 등에게 임금도 받지 못한 경우가 늘면서 살림이 어려워졌다.

"임금을 가로채 도망간 작업반장을 찾아 부산에서 목포까지 심지어 강원도 산골까지 찾아 헤멘적도 있다. 수소문한 끝에 잡았지만 돈이 없다며 발뺌하는 사람에게서 임금을 받기는 어려웠다"고 말끝을 흐렸다.

결국 빚이 늘면서 화물차를 팔아 청산에 나섰지만 늘어나는 빚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후 카드사와 은행들의 빚독촉에 은둔 생활을 하면서 가족은 친적집으로 흩어지고 술로 신세를 5년간 서글픈 인생을 달랬다. 어려워 진 빚 때문에 신용회복을 신청했다. 카드 빚을 내기 시작하면서 불어난 빚은 1억 원을 넘어섰다.

통계청이 내놓은 3분기 가계 빚 수준을 보면, 우리나라 가계 부채 규모는 모두 937조5000억원,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부채의 질은 나빠져 '생계형' 마이너스 통장의 개 은행 대출 규모는 2분기에 비해 6000억원이 늘었다.

저소득층 가계 빚을 갚지 못해 연체율이 계속 높아지고 카드론이나, 보험사 약관대출, 대부업 같은 고금리 대출로 몰리면서 서민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

소득계층별 양극화 현상도 심각하다. 상위 20%인 5분위가 전체 소득의 47.6%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전체 가구의 소득이 100으로 가정한다면 그중 50 정도를 상위 계층에서 점유했다는 뜻이다.

소득 상위 20%는 지난해 1억65만원을 벌었지만 하위 20%는 758만원에 그쳐 13배나 차이가 났다.

◇ 인력사무소가 있는 못골시장 상가 주변 아침 일찍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 ⓒ 데일리안

결국 그에겐 밥벌이가 문제였다.

가진 것 하나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몸으로 부딪히는 것이 전부였다. 식당 설겆이, 신문 배달, 대리운전까지 할 수 있는 있는 일은 닥치는 대로 했지만 임금이 적어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는 6만~7만원의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건설 잡부 일을 선택해야만 했다.

김모씨는 요새 늘어나는 외국 근로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나빠졌다. 일거리를 외국 근로자에게 뺏기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새벽시장에 나오면 무엇하나. '젊고 값싼' 외국인들에게 일감을 뺏기고 말 것인데.."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사업주들은 중국이나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에서 들어온 젊은 인력을 선호해 힘없고 비싼 국내 인력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그의 한달 벌이를 계산하면 평균 120만원 정도. 여기에 자신이 쓰는 지출은 사글세를 포함해 35만원 수준, 나머지는 아이 교육비와 생활비로 사용하기 때문에 저축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이 정도도 일거리가 많았을 경우다. 밀려드는 외국 노동자와 계절 탓에 수입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주변에 있던 또 다른 사람은 "요즘 누가 한국 사람을 쓰나. 수원일대의 인력시장만 가도 싸고 힘 팔팔한 중국 베트남 사람들이 수두룩한데...왜 한국사람들이 한국 사람 스스로를 죽이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을 흐렸다.

장사를 해도 빈털터리

수원역 부근에서 붕어빵 가판 장사를 하고 있는 박순임 씨(가명·46·여). 올해 처음 붕어빵 장사를 시작했다. 남편 돈벌이가 시원치 않아 자신도 장사를 해 생활에 보태겠다며 마음 먹고 300만원을 들여 붕어빵 장사를 시작했다.

그가 하루에 벌어들이는 수입은 2만~3만원 수준. 지난 11월 가맹점을 차린 후 두달 째 본전도 건지지 못했다. 장사 노하우 탓도 있겠지만 붕어빵 재료를 납품하는 유통업자에게 하루 수입 3분의 2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무조건 많이 팔아야 하지만 최근 3만원 이상 팔아본 적 없다. 팔면 팔수록 적자다. 하지만 별수 있겠나. 나아지겠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다"며 한탄했다.

최근 자영업자가 늘면서 식당을 여는 경우가 많아진 반면 문을 닫는 사례도 늘었다.

수원 한 대학 주변에서 10년 넘게 식당을 운영했던 이순례 씨(가명·55·여)는 "찾아오는 손님이 줄었다. 특히 저녁 손님이 크게 줄어 임대료나 빚을 갚기에도 빠듯해졌다"고 탄식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데 소득이 줄기 때문에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사정에 소비마저 살지 않는다면 돈 나올 구멍은 없다.

이씨는 "주변 식당들은 대부분 자영업자 대출을 받았다. 그동안 투자한 돈과 빚 때문에 장사가 안되더라도 할 수 밖에 없고 빚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1분기 자영업자대출 증가액(3조원) 중 저부가가치업종인 부동산·임대업,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3개 업종에서만 2조2000억원이 늘었다.

자영업자들이 빚내서 빚 갚는 악순환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IMF 이후부터 계속 되는 경기 침체가 소비 인심을 흉흉하게 만들었다"면서 "지난 겨울에는 구제역까지 덮치면서 잘 견뎌왔던 식당들이 업종을 바꾸거나 아예 문을 닫는 곳도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저성장·저금리 시대가 지속되면서 내년 역시 올해와 마찬가지로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가계부채는 늘어나고 내수 경기는 침체되면서 일한큼 손에 쥐는 돈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도 그들에겐 가족이 있고 도움의 손길이 있어 미소만은 잃지 않고 있다.

신세를 푸념했던 김 모씨는 "그래도 큰 놈이 제법 공부를 잘한다. 뒷바라지를 잘해서 성공할 수 있도록 해줘야 내가 안고 있는 가난을 물려주지 않을 것 아니냐"며 소탈한 웃음을 내보였다.

정부에서도 고금리 대출에서 저금리로 전환해주는 서민금융제도도 마련해 빚 부담을 줄이게 해주거나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방안들도 계속 내놓을 거란 것도 그들의 겨울을 따뜻하게 해준다.

특히, 경기도에서는 이들의 애환을 달려주기 위해 일용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무료 맞춤형 상담 교육을 실시한다.

내년 1월16일까지 비수기인 동절기를 맞아 일용직 근로자에게 임금, 산업재해보상, 실업급여, 동절기 채용, 서민지원 금융제도를 실시해 고용을 안정화시키기로 했다.

이종돈 경기도 평생교육과장은 "사회적 약자이면서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일용직 근로자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이번 상담 교육을 통해 올해 시범 실시한 후 성과를 분석해 내년에 확대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소망한다. 바라는 것도 많지 않다. 많이 벌고 싶지도 않다. 계속 일할 수 있는 행복, 일한만큼 돈을 버는 것이다.

김준환 유한대 교수는 "민생 현장에는 눈물밖에 없다. 저소득층을 돕는 일에 진보와 보수가 함께 힘모아 양극화와 경제 불균형 해소에 전념을 해야 한다"면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공약에서 밝힌바 있는 '경제민주화', 궁극적인 목표는 일자리 창출이기 때문에 일하면서 느끼는 행복을 주는 것이 진정한 경제민주화이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데일리안 =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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