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 ‘젠틀맨’과 ‘강남스타일’은 많이 비슷하다. 클럽에서 춤추기 좋은 음악, 따라하기 쉬운 춤, 유머라는 ‘강남스타일’의 특징은 ‘젠틀맨’도 그대로다. 뮤직비디오는 ‘젠틀맨’이 ‘강남스타일’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보다 직접적으로 강조한다. ‘강남스타일’에 출연한 유재석과 노홍철이 같은 캐릭터로 나오고, '강남스타일’에서 현아가 싸이와 춤췄던 것처럼 가인이 등장한다. 대신 규모는 커졌다. 유재석과 노홍철은 물론 그들이 출연하는 MBC <무한도전> 멤버 전원이 등장하고, 막판에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는 숫자도 훨씬 많아졌다. 흥행요소는 유지하고, 규모는 키운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과물이 가진 의미는 싸이가 지난 11일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전략적으로 곡을 만든 게 맞다.” 성공한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속편처럼, ‘젠틀맨’은 ‘강남스타일’의 흥행원인을 분석하고 응용한다.
전략적으로 곡을 만드는 것이 특이하거나 환호할 일은 아니다. 다만 한국에서 시작부터 전 세계 흥행을 노리는 곡은 처음이다. 그런 곡의 전략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보는 것은 산업적으로 분명히 유의미하다. ‘젠틀맨’이 ‘강남스타일’과 비슷해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꽤 디테일한 전략들이 들어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젠틀맨’이라는 제목부터가 전략의 산물처럼 보인다. ‘강남스타일’의 강남이 공간이고 한글이면, ‘젠틀맨’은 캐릭터고 영어다. ‘강남스타일’은 진지한 표정의 싸이가 놀이터처럼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 있는 것으로 웃겼다. ‘젠틀맨’은 싸이가 직접 사람들에게 장난을 치며 웃긴다. ‘dress classy’하게 입고 장난을 치는 젠틀맨. 싸이가 강남이라는 공간이 아닌 젠틀맨이라는 캐릭터로 기억될수록 ‘원 히트 원더’로 끝날 가능성은 줄어든다.
서울의 강남은 사라지고 세계의 젠틀맨이 남다
반면 강남, 또는 한국으로 대표되는 지역적 특색은 줄어들었다. ‘젠틀맨’에서 한국을 확실히 연상시키는 공간은 싸이와 가인이 술을 마시는 포장마차 정도다. 관광버스, 장기두는 노인, 썬 캡을 쓰고 조깅하는 여성 등이 들어간 ‘강남스타일’과 대조적이다. 그 빈자리는 <무한도전>의 멤버들처럼 코믹한 캐릭터들과 보다 강화된 섹시 코드다. 싸이는 ‘젠틀맨’에서 여성의 몸을 만지고, 비키니 끈을 푼다.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이 단체로 ‘시건방춤’도 춘다. 희한한 캐릭터들이 섹시 코드가 강한 코미디를 보여준다. ‘젠틀맨’은 ‘강남스타일’보다 더욱 미국판 <새터데이나이트라이브>에서 보여줄 법한 코믹한 뮤직비디오들과 가까운 정서를 가졌다. ‘강남스타일’의 ‘싸나이’나 ‘오빤 강남스타일’과 달리 ‘젠틀맨’의 ‘알랑가몰라’나 싸이가 ‘마뤼야’처럼 발음하는 ‘말이야’는 서구인들이 발음하기도 쉽다. 하이라이트 부분의 가사는 아예 ‘mother father gentleman’이고, ‘쌩목’으로 ‘갈 때 까지 가 볼까’라며 로커처럼 소리치던 부분은 가사 없이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로만 채워졌다. 전세계적인 흥행요소라 판단되는 부분은 강화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뺐다. 우연의 산물과 전략적 결과물의 차이다.
‘젠틀맨’에서 사라진 것, 더 많아진 것
‘강남스타일’의 노인들은 거리에서 장기를 뒀다. ‘젠틀맨’의 노인들은 싸이와 함께 멋지게 차려입고 폼을 잡는다. 그 사이에 싸이는 성공했고, 세계에 진출했다. 대신 ‘강남스타일’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알면서도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를 원하던 ‘사나이’가 한결 단순해진 가사 때문에 ‘용기 패기 똘기 멋쟁이’ 정도로 자신을 묘사하는 ‘젠틀맨’이 됐다. 한국의 사나이 싸이가 세계로 나가자 매끈한 젠틀맨이 됐다. 이 변화는 지금 서구를 중심으로한 세계 대중음악시장이 한국에 보내는 신호일 것이다. ‘강남스타일’은 유튜브와 같은 새로운 매체의 환경이 전세계 음악 산업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피부에 와닿게 보여줬다. 그 속편 격인 ‘젠틀맨’은 그 시장의 흥행 요소가 무엇인지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싸이는 오늘까지 유튜브에서 1억뷰를 돌파했다. 그것만으로도 싸이와 그의 해외 매니저 스쿠터 브라운이 짠 전략은 첫 단계를 돌파했다. 물론, 한 곡의 노래로서 젠틀맨’이 ‘강남스타일’의 답습이나 복제라는 비판은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이 노래를 “그냥 클럽음악”이라 말했던 싸이가 원했던 것은 완성도만 높은 음악이 아니라 음악산업의 맥락 안에서 통하는 무언가였던 듯 하다. 그리고, 이렇게 노래한다. “왜 말끔해야 하는건지 알랑가몰라”
글. 강명석
강명석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