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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어떤 운명을 부러워하나요

[기타] | 발행시간: 2013.05.19일 04:30
알렉산드르 푸시킨 (Aleksandr Sergeevich Pushkin, 1799~1837) 러시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시·소설·희곡 등 다양한 문학 장르에서 인간의 본성과 삶에 대한 긍정을 작품화했다. 러시아 정신의 원천으로 불리는 그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소비에트 정부는 그가 어린 시절 공부했던 도시를 푸시킨 시로 명명하기도 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젊은 시절 앞이 잘 안 보이고 마지막 희망조차 사라진 것 같았을 때 한 번쯤 암송하면서 위안받았을 이 유명한 시는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두 번째 유형지에서 쓴 것이다.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이고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그는 절망하지 않고 보석 같은 서사시들을 써나갔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형식의 운문소설 『예브게니 오네긴(Evgenii Onegin)』을 7년 만에 완성했다. 이 작품은 콜레라가 창궐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석 달간 머물러야 했던 여행지 볼지노에서 마침표를 찍었는데, 푸시킨이 미래에 대한 불안과 전염병의 위협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창작열을 불태웠던 이 시기를 후대 작가들은 ‘놀라운 볼지노의 가을’이라고 이름 붙였다.

차이콥스키의 오페라로도 잘 알려진 『예브게니 오네긴』의 줄거리는 일견 단순하지만 꽤 극적이다. 사교계의 방탕한 생활에 젖어있던 주인공 예브게니 오네긴은 죽은 아저씨의 유산을 받아 시골 영지로 간다. “한 이틀 동안은 모든 게 새로웠다. 한적한 들판이며 황량한 참나무 숲의 서늘한 그늘이며 조용히 흘러가는 시냇물의 노랫소리며. 그러나 사흘째부터는 수풀도 언덕도 들판도 더 이상 눈에 안 들어오고 마냥 졸음만 쏟아졌다.”

오네긴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이웃에 사는 젊은 지주이자 시인 렌스키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 렌스키는 올가와 약혼한 사이인데, 올가의 언니 타치아나는 오네긴에게 반해 연모의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그는 냉정하게 거절한다. “우리가 여성을 사랑하지 않을수록 우리는 더욱 쉽게 그들의 사랑을 받고 유혹의 그물에 걸린 그들을 더욱 확실하게 파멸시킨다.”

오네긴은 이것도 모자라 파티에서 올가에게 추파를 던지고 이를 보다 못한 렌스키와 결투를 벌여 그를 죽게 만든다. 이 충격으로 오네긴은 고향을 떠나고, 그를 애타게 기다리던 타치아나도 가족의 권유로 모스크바로 간다. “이 정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떠나 화려한 번잡의 소음 속으로 가노라. 너도 잘 있거라, 나의 자유여! 어디로 무엇 때문에 나는 달려가는가? 운명은 내게 무엇을 약속해주는가?”

몇 년 뒤 수도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오네긴은 사교계의 여왕으로 변모한 타치아나 공작 부인을 만난다. 그는 뒤늦게 자신의 열렬한 사랑을 담은 편지를 보내지만 그녀는 냉담하기만 하다. 오네긴은 미칠 지경이 되어 잠도 못 이루다 송장 같은 모습으로 그녀 앞에 무릎을 꿇는다. 타치아나도 눈물을 흘린다. “오네긴 님, 저에게 이 화려함, 허위에 찬 이 역겨운 삶, 사교계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제가 거둔 성공, 멋진 저택과 야회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당장 제 초라한 고향집으로, 당신을 처음 보았던 그곳으로 가고 싶어요. 아, 행복은 손에 잡힐 듯 그토록 가까이 있었건만! 제 운명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사람과 결혼한 몸, 영원히 그이에게 성실할 겁니다.”

타치아나는 나가고 오네긴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하니 있는데, 그녀의 남편이 모습을 나타낸다. 『예브게니 오네긴』은 이렇게 끝나지만 작가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다.

“운명은 너무도 많은 것을 앗아갔다! 포도주 가득 찬 술잔을 다 비우지도 않고 인생의 향연을 일찌감치 떠나버린 자, 인생의 소설을 다 읽지도 않고 별안간 책장을 덮을 수 있는 자는 행복하도다.”

세상에 제 뜻대로 되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마는 참으로 알 수 없는 게 인간의 운명이다. 그런데 작품 속 주인공 오네긴보다 오히려 푸시킨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 사실이 더욱 절실히 와 닿는다.

푸시킨은 명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황제가 세운 일류 학교를 졸업하고 열여덟 살에 외무관리가 됐다. 일찌감치 작가로서 주목을 받은 뒤 문예지 ‘동시대인’을 발행했고, 서른 두 살 때는 모스크바의 꽃이라고 불리던 열네 살 연하의 나탈리아와 결혼해 네 자녀를 두었다.

언뜻 보면 남부러울 것 없는 성공적인 삶을 산 것 같지만 주변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숱한 좌절을 겪어야 했다. 특히 빼어난 미모의 아내가 결정적이었다. 황제까지 그녀를 탐하는 바람에 푸시킨은 졸지에 10대 소년이나 하는 시종보라는 굴욕적인 직책에 임명돼 환멸과 절망 속에서 말년을 보내야 했고, 결국 아내의 연적과 결투를 벌이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서른여덟 나이로 눈을 감았다.

죽기 얼마 전 그는 아내에게 시 한 편을 보냈다. “때가 왔다, 친구여, 때가 왔다! 마음이 평온을 구한다. 이 세상에 행복은 없다, 평온과 자유가 있을 뿐. 오래전부터 나는 부러운 운명을 꿈꿔왔다. 오래전부터 지친 노예인 나는 도피를 계획했다. 일과 순수한 기쁨만이 있는 그 먼 곳으로.” 누구나 조금씩은 이런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박정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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