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중순,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부 김영훈 부주임은 길림신문사 기자들의 안내하에 길림성 매하구와 서란의 조선족 농촌들을 방문하면서 올해 농사차비 상황을 알아보았다.
매하구시 산성진(山城镇) 하남촌(河南村)의 벼 육묘장. 조선족 마을인 하남촌은 총113호, 인구가 435명인데 70%의 농호가 외국이나 국내 대도시로 로무로 나가거나 취업해 떠나갔다.
하남촌의 농기계 대호인 김정환 농민(왼쪽). 올해 51세인 김정환씨는 전 촌의 1500무 논을 홀로 임대경작하여 상질벼를 생산하고있다.
산성진에서 매하구시로 가는 향진뻐스
매하구시 홍매진(红梅镇) 복리촌(福利村)의 3층 가옥. 조선족 마을인 복리촌은 매하구시 새농촌 건설의 본보기촌
서란 평안기차역. 평안진(平安镇) 농민들은 이 역에서 기차를 타고 할빈까지 갈수 있다. 서란시 평안진은 2009년 1월 《전국문명촌진》이란 영예를 수상한바 있다.
평안진 금성촌 당지부 서기 김종권(56세). 전 촌 958호, 총인구 3416명. 전부 조선족인 금성촌은 길림성의 새농촌 건설에서 선두를 달리는 모범촌이다.
4년전에 귀향하여 올해 처음 금성촌의 60헥타르 논을 임대맡은 리학명 대장(39세)
금성촌의 평안벌. 이곳에서의 벼농사는 1924년 조선인 농민 박춘선, 오중학 일가가 평안에 와 보를 쌓고 물레방아를 돌리면서 시작되였다. 1956년 금성촌의 1헥타르당 수확고가 1만근을 넘어 당시 금성대대 당지부서기인 김옥만은 전국 농업로동모범으로 당선되여 모주석과 류소기주석, 주은래총리 등 국가지도자들의 접견을 받기도 했다.
금성촌 길가의 민들레꽃
금성촌민위원회 청사앞 문구장
평안진 조선족 중심소학교 학생 27명이 운동장에 나와 업간체조를 하고있다. 1980년대초 전성기때에는 1500여명 학생들이 운동장을 메우고 체조를 해 성황을 이루었다 한다.
금성촌의 꼬마들
금성촌의 력사를 소개하고있는 로재순 로인(79세). 로재순 로인은 17세때인 1951년 3월 중국인민지원군에 입대, 그해 6월 조선전장으로 나갔었다.
장춘에 체류하는 기간 김영훈 부주임은 또한 연변자치주 검찰원 검찰장과 연변자치주 법원 원장을 지낸 윤수범선생과 번역가 심승철선생을 방문취재하였다. 사진은 자택에서 기자에게 자신의 경력을 소개하고있는 윤수범선생(왼쪽, 74세)
자택에서 취재를 받고 있는 번역가 심승철선생(58세). 현재 장춘대학 관광학원 외국어분원에서 한국어 강사로 재직중인 심승철(沈胜哲)선생은 《어머니와 함께한 900일간의 소풍》(我要陪你去西藏), 《불멸의 영령 – 최채》(不朽的英灵-崔采) 등 작품을 중문으로 번역하여 2012년 9월, 중국 제10회 소수민족 문학창작 《준마상》(骏马奖) 번역상을 수상하였다.
(취재협조: 길림신문사 리창근, 유경봉, 김웅 기자)
기사출처: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부 사이트주소:
http://www.krcnr.cn/tp/cftp/201305/t20130521_49067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