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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가족 유라시아 횡단기] 이 가족, 신난다~ 집 팔아 산 중고버스로 세계여행

[기타] | 발행시간: 2013.09.28일 04:00

살던 집을 팔고, 아들과 딸을 휴학시키면서 가족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다들 “미쳤다”고 했다. 여행도 그냥 여행이 아니다. 경북 울산 간절곶에서 포르투갈 호카곶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25인승 중고 버스를 타고 1년간 횡단하는 대장정이다. 아시안 하이웨이를 따라 이동하면서 경유하는 나라만 유럽과 아시아를 합쳐 30여개국에 이른다. 최동익(49)씨와 아내 박미진(45)씨, 그리고 다윤(18) 진영(16) 진우(15) 다섯 명의 ‘빼빼가족’이 벌인 일이다. 가족 모두 빼빼 마른 편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족은 지난 6월 3일 간절곶을 출발해 속초에서 배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했다. 이후 버스로 시베리아고원과 바이칼호수, 우랄산맥을 넘어 26일 현재 프랑스 파리를 지나고 있다. 길 위의 집에서 생활한 지 116일째. 누적 이동거리만 1만8000여㎞다. 끝없이 움직이는 ‘빼빼가족’과 이메일로 인터뷰를 했다. 최씨 가족은 식당이나 게스트하우스 등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에 들르면 여행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점들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시작은 기득권 버리기부터”

무모한 계획은 대체 어떻게 시작됐을까. 최씨는 “나이 50세를 넘으면 덤으로 사는 겁니다. 저의 작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일, 세상을 환기시키는 일을 고민하다 제안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가족의 반응은? “만세!”였다. 프리랜서 전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최씨는 그렇다 쳐도 멀쩡한 집을 팔고 학교를 쉬자는 데도 순순히 따라준 아내와 자녀들의 결단이 더 놀랍다.

두려움, 당연히 있었다. 잘하는 것인지 끊임없이 회의가 들었다. 하지만 여행자건, 세속에 묻혀 사는 평범한 사람이건 누구나 안고 가는 고민이 아닐까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여행의 준비는 ‘버리기’였다. 아파트를 팔고 시골에 작은 집을 지어 경비를 마련했다. 2년여 동안 짐을 줄이고 줄여 16년 된 중고 버스 ‘무탈이’에 옮겨 실었다. 최씨 가족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시골집에는 지금 사람이고 세간이고 아무것도 없다.

하루 일정을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처음 보름 정도는 일정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여행자로서의 적응, 다른 문화의 이해, 정박지의 두려움 등으로 살아나기 바빴습니다. 조금 익숙해진 요즘은 가급적 오전에만 운행합니다. 약 200㎞ 안팎.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삶과 동떨어진 일은 아닙니다. 4평 정도의 집이 매일 조금씩 움직일 뿐입니다. 매일 새로운 환경에 놓일 뿐입니다. 움직이는 집이 그날 하루 정박할 곳을 찾는 일은 힘들지만 그 때문에 지역의 작은 시장,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이점도 있습니다.”

‘우짜노? 우째 되겠지…. 모르겠다!’ 정신으로 간다

여정은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다. 지난 6월 24일 러시아 네르친스크에서 치타로 이동하는 길에 버스에 문제가 생겼다.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공구를 꺼내 여기저기 들여다보고 있는데 뒤에서 “우리 사람이구만유?”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로공사 노동자로 러시아에 나와 있다는 북한 사람이었다. 그는 “멀리서 보니 우리 사람 같아 보여 달려왔다”면서 덥석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옆에 러시아 감독관이 있다면서 서둘러 자리를 떴다. 최씨 아내는 인스턴트커피를 한 움큼 집어 떠나는 차 안에 던지듯 넣었다. 아이들은 북한 사람을 처음 봤다며 신기해했다. 최씨는 그날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가슴이 먹먹해졌다. ‘우리 사람’이라는 말이 하루 종일 입에서 맴돈다”고 블로그에 썼다.

고장 난 버스는 뜻밖에도 러시아 젊은이가 고쳐줬다. 사실 최씨는 처음 러시아에 도착했을 때 “치타에서 며칠 전에 일본인 관광객이 칼에 찔려 죽었으니 조심해라”는 말을 듣고 내심 현지인들을 경계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흔쾌히 버스 보닛을 열어 배터리 연결부의 풀린 나사를 말끔히 조여 줬다. 최씨는 ‘오해’와 ‘이해’를 배웠다고 했다.

지난달 11일 러시아 국경을 넘어 북유럽 핀란드로 들어서는 관문. 국경수비대가 승용차, 트럭, 버스를 따로 검사하는데 최씨 가족은 차량은 버스지만 인원은 승용차라 검사 주체를 두고 30분 넘게 실랑이가 이어졌다. 그때 책임자가 나타나 버스를 보더니 “바이칼을 지나왔나? 이 차로? 내가 바이칼 출신입니다”라며 반색했다. 무탈이는 버스 라인에, 가족은 승용차 라인 가장 앞으로 인도돼 출국 검사를 마쳤다.

그래도 말이 여행이지 언어와 문화, 치안 등 모든 게 낯선 곳에서 무엇 하나 쉬울 리 없다. 최씨는 “알고는 못 옵니다. 모르니 여기까지 왔어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여행하면서 가족끼리 갈등은 없을까. 그는 “가족은 제일 기초적이고 중요한 인간관계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짜증, 걱정은 등 돌리면 그만이지만 가족은 안 됩니다. 이 여행이 좋은 건 가족 간 사소한 갈등과 불신을 바로 풀 수밖에 없는 구조와 생활이라는 겁니다”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m×2.2m 공간에서 아이들 셋이 자고, 겨우 몸을 누일 만한 자리에서 엄마와 아빠가 함께 눈을 붙인다. 배려하고 희생하지 않으면 견뎌내기 힘든 공간이다.

특별한 교육철학이 있는 듯 보여 물었다. 그랬더니 “철학? 없습니다. 아버지가 철학이 있으면 가족한테 전파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보고 자랍니다. 그래서 아버지 삶은 굉장히 피곤하고 힘듭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행을 하면서 삼남매는 조금씩 커가고 있다. 바이칼에서 크라스노야르스크로 이동할 때 1000㎞가 남았다는 표지판을 보고는 “아버지 1000㎞밖에 안 남았네요. 바로 갑시더!”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시베리아고원을 버스 타고 넘어온 이들에게 1000㎞쯤은 ‘한번 가볼 만한’ 거리다. 밤길에 정박지를 찾지 못해 초조해하는 아버지 옆에서 “시베리아 카페 위치 애플리케이션 만들면 대박 나겠다”며 아이디어를 쏟아내기도 한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막내 진우는 여행 와서 인생목표가 확실해졌다고 한다. 사진작가다. 빼빼가족은 호카곶을 반환점으로 삼아 터키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귀국하면 뭐 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에 최씨가 답했다. “살아 돌아간다면 ㅎㅎ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에게 소주 한잔 얻어먹고 싶습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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