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안에 인간의 욕망과 의지를 이해하고 지시 없이도 스스로 행동하는 컴퓨팅(computing)이 실현됩니다."
13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주 레드먼드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 본사에서 만난 피터 리(Peter Lee·53) 마이크로소프트연구소(MSR) 소장은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연구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음성·동작 인식 기술의 발달로 컴퓨터가 인간의 행동을 보고 듣고 이해하는 수준까지 진화했다는 것이다.
MS가 오는 22일 선보일 차세대 게임기 'X박스 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사용자가 거실 소파에 앉으면 이용자의 얼굴을 인식해 TV 화면에 "Hi, ○○○"라고 인사한다. 이용자가 움직이면 변화하는 위치를 파악하면서 카메라가 자동으로 따라다닌다. 게임 선택, 채널 변경·녹화, 전화 걸기까지 모든 조작이 음성으로 이뤄진다. 피터 리 소장은 "주변 컴퓨터가 모두 똑똑해지면 인간은 복잡한 조작을 할 필요가 없어 조작 실수로 인한 오작동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한국계 과학자인 피터 리는 지난 7월 MSR 신임 소장에 취임했다. 전 세계 13곳에 거점을 둔 이 연구소는 1150명이 넘는 과학자와 기술자가 미래 기술을 연구한다. MS의 스티브 발머 회장(CEO)은 "피터 리 신임 소장의 지휘 아래 앞으로 MSR의 통찰력과 발명품이 회사의 전략 마련과 제품 개발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MIT테크놀로지리뷰는 "피터 리는 MS의 미래를 발명(invent)해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마디로 MS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다는 말이다.
리 소장은 "스마트폰 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초기 경쟁에선 밀렸지만, 앞으로 한 수 위의 미래 기술을 접목해 다시 승기를 되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일루미셰어(illumishare)' 프로젝트가 하나의 예다. '일루미셰어'는 램프를 비추면 책상이든 칠판이든 화면이 되고, 이 화면을 제삼자에게 실시간으로 보여줘 공유하는 기술이다. '일루미셰어폰(가칭)'을 쓰면 학생이 집에서 수학 문제를 푸는 종이에 램프를 비춰 실시간으로 수학 교사가 보면서 같은 종이에 첨삭할 수 있다.
그는 "현실 제품에 사용되는 기술 못지않게 블루스카이 연구(Blue-sky research·현실 세계에 즉각 적용할 수 없는 과학 연구)에도 많은 역량을 쏟아야 한다"며 "상상력을 푸는 연구가 어느 순간 현실 제품에 적용돼 회사의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리 소장은 미국 카네기멜론대에서 컴퓨터 과학을 22년간 가르쳤고, 미국 국방부 산하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 컴퓨터 과학 부문을 총괄하기도 했다. 그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가능성을 미래에 실현하는 일은 단지 MS를 위한 게 아닌 IT 산업 전체를 위한 일"이라고 말했다.
[미국 레드먼드=성호철 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