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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리커창 총리 "군령장 쓰고 빈곤퇴치"…관우·마속과 다를까?

[기타] | 발행시간: 2014.03.08일 08:49

군령장, 단어의 뜻은 군사적인 명령을 적어 놓은 문서입니다. 그런데 중국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살짝 다른 의미로 쓰입니다. 중요한 역할을 맡은 장군이 그 군사적 목표를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약속하는 일종의 각서입니다. 삼국지연의에는 군령장을 쓰는 장면이 숱하게 나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 깊은 군령장이 두 번 등장합니다.

하나는 적벽대전에서 천하 용장 관우가 쓰는 군령장입니다. 패주하는 조조를 처단하기 위해 제갈량이 장수들에게 병력을 주고 주요 길목마다 매복을 시킵니다. 그런데 핵심 장수인 관우에게 아무 역할도 맡기지 않습니다. 관우가 발끈해 나섭니다. "왜 내게는 임무를 주지 않는거요?" 제갈량은 "관공은 조조에게 큰 은혜를 입어 차마 손을 쓰지 못할 것입니다." 자존심이 상한 관우가 큰소리를 칩니다. "내 반드시 조조를 처결할 것이라는 군령장을 쓰겠소. 실패하면 내 목을 가져가시오."

하지만 의리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관우는 실제 조조를 만나고도 그대로 살려보냅니다. 돌아온 관우에게 제갈량이 호통을 칩니다. "내가 그래서 장군 대신 딴 사람을 보내려 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 조조를 처단해 천하의 우환을 없애려 했는데 장군 때문에 다 망쳤습니다. 군율은 엄한 것이니 군령장대로 장군의 목을 베겠습니다." 놀란 유비가 제갈량에게 대신 싹싹 빕니다. 관우를 살려달라고.

제갈량이 자신을 어리고 서생 출신이라며 만만하게 보는 관우의 기를 꺾어놓기 위해 벌인 계략이었다고 소설은 평합니다. 어떻든 주군의 의형제이자 유비 일파에서 서열 2위였던 관우가 군령장 한 장 때문에 목이 달아날 뻔한 장면입니다.다른 하나 역시 제갈량과 관련돼 있습니다. 유명한 '읍참마속'이라는 사자성어를 남긴 마속의 군령장입니다. 유비가 죽은 뒤 촉나라의 재상으로 있던 제갈량은 출사표를 쓰고 위나라 정벌에 나섭니다. 전쟁 초기 제갈량은 귀신 같은 용별술과 책략으로 위나라를 압박해 들어갑니다. 다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식량 등 군수 물자의 보급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특히 기정이라는 곳에 군수물자 보급 기지를 세웠는데 이곳을 공격 당해 빼앗긴다면 군대 전체가 사지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정을 지키기 위해 가장 믿을 만한 장수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때 제갈량이 총애하던 마속이 나섭니다. 제갈량은 마속이 '병법에 해박한 뛰어난 전략가이지만 실전 경험이 없어 불안하다'며 선뜻 마음을 정하지 못합니다. 그러자 마속은 임무에 실패하면 죽음으로써 벌을 받겠다는 군령장을 쓰면서 고집을 부립니다. 결국 마속은 중책을 맡지만 제갈량의 우려대로 위군에게 기정을 빼앗김으로써 촉군을 위기에 빠뜨립니다. 가까스로 사태를 수습한 제갈량은 마속을 끌어냅니다. 장수 한 명, 한 명이 귀한데다 마속의 재주가 아까워 차마 죽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군율을 문란하게 할 수 없다며 눈물을 흘리면서 마속의 목을 벱니다.그만큼 군령장은 엄중합니다. 군령장을 쓰는 행위는 자신의 목숨을 걸겠다는 뜻입니다.

올해 중국 양회에서 이런 '군령장'이 등장합니다. 그것도 중국 국무원을 총책임지고 있는 리커창 총리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지난 6일 리 총리가 칭하이 회족 자치주 대표단을 접견한 자리였습니다. 칭하이는 내몽고 바로 아래 서북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곳입니다. 대표단의 한 명이 리 총리에게 가뭄에 시달리는 서북부의 빈곤퇴치에 더욱 힘을 쏟아달라고 건의했습니다. 그러자 리 총리는 수행중이던 국무원 빈곤퇴치국의 류잉푸 국장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 양회의 정부업무보고에서 내가 극빈층 1천만 명을 줄이겠다고 밝혔죠? 전인대에서 이 정책이 통과되면 우리는 군령장을 쓰고 추진해야 합니다."지역의 빈곤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청에 리커창 총리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의지를 밝힌 셈입니다. '목숨을 걸고 빈곤을 퇴치하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리 총리가 정치적 생명을 걸고 빈곤층 해소에 나서겠다는 뜻입니다.

리커창 총리가 빈곤 퇴치에 승부수를 던지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군령장을 쓰든, 안쓰든 자신의 정치 운명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중국내 부의 양극화는 용인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부유층과 빈곤층의 생활 수준 차이가 우리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이 큽니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점이 믿기지 않습니다.

과거 어느 상하이 부유층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금싸라기 값의 땅인데도 집안으로 개천이 흐르고 승마를 할 정도로 넓은 잔디밭이 있습니다. 3층짜리 저택 안에서는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움직입니다. 가족 6명을 위해 가사 돌보미, 육아 돌보미, 기사 등을 합쳐 12명이 일합니다. 자녀들의 여름 별장으로 인공 나무 위에 오두막집을 지었습니다. 물론 안에는 에어컨이 작동됩니다. 이런 집이 상하이 시내와 근교에 수두룩합니다.

반면 같은 상하이에서도 전혀 다른 환경에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고층 빌딩이나 아파트 지하에 숨어사는 사람들을 '생쥐족'이라 부릅니다. 다 낡은 아파트 한 채를 수십명이 함께 임대해 몸 하나 들어갈 만큼 칸을 나눠서 쓰는 사람들을 '달팽이족'이라고 부릅니다. 얼마전에는 대도시의 지하 하수구에 거처를 마련하고 살던 사람들이 언론에 포착돼 사회적 충격을 준 바 있습니다. 대륙 서쪽의 빈곤 지역에는 아직도 18세기의 모습을 못버린 마을이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사막화의 진행으로 이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습니다.중국의 많은 식자들이 이런 상황을 계속 방치하다가는 '제2의 문화대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미 '과거 마오쩌둥 시절 다같이 못살았던 때가 더 좋았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나옵니다. 그러니 리 총리 입장에서는 '빈곤 퇴치'가 정권 안위 차원의 문제입니다.
중국 공산당이 지상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2020년 '소강사회' 건설도 벌써 6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소강사회'란 중국인 모두가 적어도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고 저마다의 꿈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각종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산당은 이런 애드벌룬을 가리키며 중국인들에게 인내를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2020년이 도래했는데도 여전히 연간 순소득이 40만원에도 못미치는 빈곤층이 1억2천만명을 넘는 작금의 현실이 계속되다가는 중국 사회 전체가 폭발할 것입니다. 그러니 매년 1천만명, 우리나라 인구의 20%에 달하는 빈곤층을 줄이겠다는 목표는 필요한 수준의 최소수치인 셈입니다.

리커창 총리는 군령장에 목이 날아간 마속과는 다른 운명을 맞을 수 있을까요? 분명한 점은 절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빈곤 문제는 지나친 고속 성장, 관료 사회의 부패, 난개발로 인한 주택과 교통 문제, 구인과 구직의 불균형으로 인한 취업난, 빈약한 사회적 자본과 사회보장 제도 등이 난마처럼 얽혀 있습니다. 빈곤층에 돈을 뿌리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의 미봉책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엄청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개혁과 혁신을 이어가야만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13억5천만을 대상으로 하는 일입니다. 우리도 자주 경험합니다만, 조그마한 변화도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 쉽게 이룰 수 없습니다. 하물며 십수억 명의 이해를 조정하는 일인데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생각하면 '미션 임파서블'입니다만, 그래도 중국 수뇌부가 군령장까지 쓰는 것을 보면서 조그마한 희망을 품어봅니다. 부디 숫자로 장난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빈곤층이 삶의 안정과 희망을 얻을 수 있는 제도 개혁을 꾸준히 추진해나가기를 기대해봅니다.

우상욱 기자woosu@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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