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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강신문=하얼빈)“학교에 가고 싶어요.”
이 한마디가 르완다 9살 고아의 운명을 바꿨다. 르완다 내전으로 부모를 잃은 유스터스 우아예스(22)의 하버드대 입성기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르완다 동부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유스터스는 3살 되던 1994년 후투족과 후치족 간의 민족분쟁으로 부모를 잃었다. 당시 내전으로 100일동안 80만명이 사망했다.
국제적십자사에 구출된 유스터스 남매는 1998년까지 보호를 받았지만 이후에는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 있는 쓰레기더미에서 살아야 했다.
유스터스는 쓰레기를 뒤지며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찾고, 길거리에서 구걸을 했다. 쓰레기더미를 헤집다가 불도저에 밀려 생매장될 뻔한 적도 있다. 물도 없고 샤워시설도 없어 1년간 씻지도 못했다. 쓰레기장의 버려진 차 안에서 추위를 버티며 2년 반을 살았다.
유스터스는 “나는 영양실조 상태였다”며 “일요일이 가장 싫었다”고 회상했다. 일요일은 쓰레기차가 오지 않아 이른바 ‘식사배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을 때 그는 닿을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오께 교복을 입고 하교하는 아이들이 그를 보고 ‘나이보보’라고 불렀다. ‘잊혀진 아이’라는 뜻이다.
유스터스는 “정말 매우 어두운 나날들이었다”며 “나는 어떻게 삶이 나아질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여기서 나갈 수 있는지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스터스의 운명을 바꾼 것은 9살 어느 일요일, 미국 출신의 구호활동가 클레어 에피옹이 쓰레기장에 들르면서다. 에피옹은 택시를 타고 지나다 거리에서 고아로 보이는 아이를 발견하고 기사에게 “멈추라(Stop!)”고 말했다.
다른 아이들은 다 도망갔지만 유스터스만은 에피옹 앞에 섰다. “왜 넌 도망가지 않니?”라고 에피옹이 묻자 유스터스는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자선단체 에스터재단에서 일했던 에피옹은 유스터스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초등학교를 다니게 했다.
유스터스의 영민함은 초반부터 빛을 발했다. 초등학교 첫 학년을 수석으로 마쳤고, 고등학교 때는 모든 과목에서 A학점을 받았다. 그는 영어와 프랑스어는 물론 동부 아프리카 지역의 스와힐리어와 링갈라어까지 배웠다.
청소년기 에스터재단 고아원으로 들어간 유스터스는 두 여동생을 데려와 같이 살았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재단 자선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학교 캠퍼스 건설 등을 도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스터스는 미국 구호단체인 ‘브리지2르완다’가 제공하는 1년 장학금 프로그램에 응모해 미국 대학 유학을 준비했다.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어 올 가을 미국 명문 하버드대에 4년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그는 여기서 수학과 경제학, 인권을 배우게 된다.
유스터스는 최근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여기(미국)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산다. 모든 것이 빠르고, 걷는 것도 빠르다.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고 경험과 의문점들을 이야기한다. 어른을 대하는 법도 르완다와 다르다. 르완다에서는 소리를 지르거나 소란를 일으키지 말라고 한다. 여기에서는 개개인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며 보스톤 생활의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어 “나는 내가 과분한 호의로 풍요로워졌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가난을 부인하는 것은 나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다. 나도 언젠가 ‘스톱’을 말할 수 있는 클레어처럼 되고 싶다”고 말했다.
출처: 헤럴드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