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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만에 고향땅을 찾은 송아지친구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5.08.11일 11:28

70년만에 고향땅을 찾은 송아지친구들이 렬사릉원에서

나의 고향은 유서깊은 항일혁명근거지인 길림성 왕청 현성에서도 동쪽으로 약 90리 더 들어가는 산골마을 태평촌이다. 해방전에는 소나무가 많다고 해서 소송툰(小松屯) 이라고 하였으며 또 이곳에는 잣이 많이 난다고 하여 민간에서는 함경도 사투리로 《잣덩때》(잣을 올려놓는 선반) 라고도 불렀다.

무상기가 짧아서 주로 보리와 감자 농사가 위주인 반농업, 반림업 마을인데 아마도 1930년대 후반기에 조선에서 살길을 찾아온 가난한 농민들과 관내에서 재황을 피해 찾아온 한족들에 의해 개척된것 같다. 어릴 때의 기억에 의하면 맹수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이른새벽 어머니가 우물가로 물 길러 나갈 때면 아버지가 몽둥이를 거머쥐고 앞장서군 했다.

처음으로 개척하는 산골이라 오염 없는 깨끗한 강물에는 물고기가 거멓게 무리쳐 헤염쳤고 마을 뒤산은 여름철이면 머루, 다래, 산딸기가 무르익었으며 겨울철에는 노루, 사슴, 산토끼들이 시름없이 뛰놀았는지라 동년의 고향은 자석처럼 우리 개구쟁이들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그러나 그 호황기가 얼마 못가 일제의 침략마수가 이곳까지 미치게 되였다. 놈들은 마을앞에 영림소와 큰 제재공장을 앉히고 원시삼림자원을 략탈해갔으며 공산당의 반일혁명활동을 경계하여 강제적으로 산재마을을 집단부락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경찰서를 설치하고 수비대까지 주둔시켰다.

《8.15》해방이 되자 적지 않은 농호들은 농사하기 좋은 곳으로 이주하고 나머지 100여세대 되는 농가들은 비록 풍족하게 살지는 못했지만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화목하게 지냈다. 특히 일제의 식민통치하에서 2중, 3중의 압박착취를 받아왔던지라 경제적으로는 가난하였지만 혁명정신만은 강하였다. 일찍 해방된 그해 10월 10여명 열혈청년들이 지방토비세력 몰래 아군에 입대했다.

그후 항미원조시기까지 도합 20여명 조선족청년들이 참군하였는데 전투영웅 1명이 배출되고 전쟁터에서 희생된 렬사도 적지 않았다. 우리 꼬마들도 소년단을 조직하고 민병을 도와 두사람씩 짝을 지여 《3.8》식 보총을 거머쥐고 마을 교통요도를 지켰고 토비숙청에도 참가했다. 아군이 마을에 진주하면 꼭 군민련환모임을 가졌는데 청소는 우리 소년단에서 도맡았다.

조선족은 예로부터 교육을 중시하여왔는데 마을에 학교가 없는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당시 형편에서 자체로 해결할 방법이 없어 할수 없이 학교가 있는 곳으로 한집, 두집 뜨기 시작하여 지금은 순 한족마을이 되였다. 우리 송아지친구들은 비록 산지사방에 흩어져 살면서도 동년시절 맺어진 깊은 우의와 고향을 그리는 절절한 마음은 한결같았다. 생전에 한번은 고향에 모여 반세기 넘게 쌓이고 쌓인 화포를 나누자고 하던차 금년은 뜻깊은 항일전쟁 70주년이기에 백사불구 모이기로 약속했다.

특히 7, 8월은 여름방학이 들기에 자식들의 시간을 빌수 있는 적합한 시기라 우리는 삼복더위도 마다하고 지난 7월 22일 자식들의 효도에 떠받을려 끝끝내 고향에 모여앉는 행운을 가지게 되였다.

실로 조련찮은 모임이였다. 병석에서 일어못나는 장기환자외에 원근 각지에서 8명이 모였는데 최고년령이 82세였고 그외에도 모두 80고개에 올라선 학발들이였으니 자식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없이는 도저히 성사될수 없는 일이였다. 감숙성 란주리공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현해연부교수는 비행기로 고혈압환자인 어머니를 친히 모시고왔으며 또 이번 모임에 의연까지 하였다. 그의 고마운 처사에 로인들이 찬사를 하니 《로인님들이 손수 이렇게 뜻깊은 모임을 가지시는데 자식으로서 이만쯤 하는것은 응당한 일입니다.》고 했다.

그리고 외국에서 근무하는 뢰전군은 장모님의 병간호를 왔다가 이번 행사를 알게 되자 환자간호를 다른 사람에게 위탁하고 거동이 불편한 장인을 자가용차에 모시고 장인을 대신해 행사준비도 도와나섰다. 이번 행사를 조직하느라 동부서주한 오태권로인의 아들 오수일내외는 어머니 중병으로 하여 경제지출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조련찮은 로인님들의 모임인데…하며 푸짐한 오찬을 로인들께 마련하여 로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갈라진지 근 70년 세월이 흘렀으니 사람도, 고향도 모두 몰라보게 변하였다. 그 옛날 코흘리개 우리들을 백발로옹, 로파로 변하게 했으니 세월은 얼마나 무정한가!

세월은 그래도 가슴에 의리를 품었는지 째지게 가난했던 내 고향을 생기가 넘쳐흐르는 인간락원으로 탈바꿈시켰으니 세월은 또 유정도 했다. 옛날 집집마다 밤이면 광솔불로 어둠을 밝혔는데 지금은 전등불로 대낮같이 밝아졌다. 어릴 때 어둠이 깃들어 밖으로 나가면 부엉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어린 가슴을 허비였는데 지금은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노래곡조에 어깨가 저절로 으쓱으쓱해진다. 어릴 때 이 산골에서 현성까지 가자면 어머니가 지어준 보리밥도시락을 허리춤에 차고 온 하루를 걷고 걸어야 했는데 지금은 매미차를 잡아타고 록음방초우거진 포장길로 한시간 내달리면 되니 실로 신선이 왔다가 울고갈 지경이다.

이 얼마나 천지개벽의 대변화인가! 우리는 비록 늙어서 얼굴에는 잔주름이 그물쳤지만 내 고향이 천당같이 변한것으로 하여 그 기쁨 한량 없다.

고향정에 듬뿍 젖어 우리는 언덕우에 높이 자란 느티나무를 정겹게 쓰다듬어 보았고 백옥처럼 깨끗한 샘물울 량껏 마시기도 하였다. 금전골 돌바위를 에돌아 흐르는 시내물은 과거와 다름없이 아름다운 멜로디로 우리를 반겨 맞아주었다.

일행은 문학엔 문외한들이였지만 너 한마디 나 한구절 민요 《고향의 봄》가사를 모방한 엉터리 가사를 지어서 저가락장단에 맞추어 흥이 나게 노래를 불렀다.

내가 나서 자란 고향은 꽃피는 산골 / 푸른 송백 할미꽃 아기진달래 / 싱그러운 솔향기 풍기는 동네 /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잣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 떡메골 숲속에서 뻐꾸기 울면 / 금전골 실버들이 춤추는 동네 /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우리는 고향정에 깊이 절고절어 밤 가는줄도 모르고 이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나는 80성상 살아오면서 고향송가도 많이 들어왔고 또 많이 부르기도 했지만 이번처럼 고향정에 젖어보기는 처음이다. 고향이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다지도 나의 마음을 휘여잡는가 해서 사전을 펼쳤다.

《나서 자란 곳을 고향이라 한다》는 해석은 물론 틀리지 않았겠지만 어쩐지 만족스러운 답이 아닌것 같다. 고향은 어머니와 더불어 우리에게는 둘도 없는 보귀한 객관존재이다. 그래서 고향을 어머니에 비하며 13억의 그 많고 많은 고향이 하나로 엉킨것을 어머니 조국이라 부르게 된다.

고향정에 가슴 뜨거울 때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것이 다름아닌 고향을 위해 보귀한 목숨마저 다 바친 혁명렬사들이였다.

우리 고향에서 동북쪽으로 약 10여리 더 가면 북산기슭 숲속에 렬사릉원이 새로 일떠섰다. 이 릉원의 주인공은 해방전 동북특위서기 동장영렬사와 생명의 최후 순간까지 그를 수호한 조선족녀항일유격대원 최금숙렬사이다. 지난 7월 23일 우리 일행은 경건한 마음으로 렬사릉원을 참배하였다. 렬사비에 화단을 올리고 제주를 부은 다음 고개 숙여 정중히 묵도를 드렸다

비문에 새겨진 범상치 않은 렬사의 생애와 빛나는 사적은 우리들의 눈굽을 흐리게 하였다.

동장영렬사는 안휘성 사람으로서 일찍 학생시절부터 혁명활동에 종사하였고 1924년에 입당한 조기 공산당원이다. 그는 일본류학시절에도 계속 혁명활동을 견지하였으며 1928년 귀국후 상해 로중구서기, 1931년에는 동만특위서기직을 련임하면서 반일유격구 확대와 반일무장력량을 강화하는데 크게 공헌한 반일애국장령이였다.

1934년 3월 21일, 일본토벌대가 왕청유격구를 포위공격할 때 중병환자인 동장영은 부대를 지휘하여 포위권을 돌파하고 자기는 자립할수 없게 되여 녀유격대원 최금숙에게 업혀 퇴각했다. 둘은 마지막 탄알이 없어질 때까지 일본침략군과 완강하게 싸우다가 모두 장렬히 희생되였다. 당년 동장영렬사는 27세, 최금숙렬사는 21세 처녀였다.

21세 꽃나이에 생사를 념두에 두지 않고 생명의 최후 순간까지 수장을 수호하는 그의 고상한 혁명영웅주의정신은 새로 성장하는 나젊은 일대들이 반드시 따라배워야 할바라고 생각한다.

근 70년만에 만난 모임이라 2일이란 시간은 너무나 짧았지만 감수는 매우 컸다. 오늘과 같은 고향의 대변천을 가져오게 된것은 중국공산당의 옳바른 지도가 있었기에 이루어질수 있었다고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였다.

우리는 눈굽을 적시며 오래오래 손목 잡고 천마디, 만마디 건강장수할것을 서로 부탁했다.

/장춘 윤영학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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