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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손톱만한 플라스틱이 로봇으로 변하는 법, 종이접기서 나왔죠

[기타] | 발행시간: 2015.09.13일 09:15

미국항공우주국은 종이접기를 활용한 태양전지판을 10분의 1크기로 축소시킨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접이식 태양 전지판을 모두 펼친 모습.


6세기 유럽에서는 종이 접는 사람을 마법사라 불렀어요. 종이 한 장으로 세상 모든 물건을 만들어냈으니까요.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종이접기는 과학이 됐습니다. 움직이는 로봇부터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현미경까지. 공학에 접기 기술이 응용되며 미래 기술로 발전했기 때문이죠. 단순히 접는 것이 아니라 수학·과학 법칙을 활용해 더 작고, 정교하게 접는 방식이 연구되고 있어요. 종이 한 장에서 시작된 접기 공학 속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요. 마법의 영역을 벗어나 과학으로 발전한 접기 공학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봤습니다.

자연에 숨어 있던 접기 공학



종이접기를 공학에 응용한 로버트 J 랭 박사.



꽃잎은 작은 꽃봉오리 속에 일정한 법칙에 따라 접혀있다가 펴진다.

종이접기는 자연에서 시작됐습니다. 꽃과 풀들이 아무렇게나 뭉쳐 있고, 구겨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일정한 법칙을 따르고 있답니다. 꽃봉오리 속에 겹겹이 겹친 꽃잎, 번데기 속에 뭉쳐 있는 곤충의 날개 등 자연 곳곳에서 그 법칙을 찾아볼 수 있어요. 인류는 자연 속에 숨겨졌던 접기 방식을 종이에 응용하며 종이접기 기술을 개발했던 겁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어요. 동식물 등 자연물들은 모두 곡선형인데 종이는 접으면 직선이 된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직선을 이용해 곡선을 만들고, 평면을 입체 모양으로 만들 수 있는 걸까요. 비밀은 종이접기 속 기하학에 있습니다. 기하학은 도형의 점·선·면을 이용해 평면과 공간을 연구하는 수학의 한 영역입니다. 종이가 수학 원리와 만나 직선을 곡선으로 만들고, 평면을 입체로 만드는 마술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거죠. 종이와 접기 기술만 있으면 자 없이도 직선을 정확하게 3등분할 수도 있고, 각도기 없이 정삼각형·이등변삼각형 등 다양한 도형을 만들 수 있는 이유입니다.



접이식 태양전지판을 개발한 미국항공 우주국 연구원 브라이언 트레즈.

이처럼 평면을 접어 입체적으로 만드는 종이접기는 직선에서 시작됩니다. 직선들이 만나 각을 만들고, 각들이 만나 새로운 공간을 탄생시키는 거죠. 축구공을 예로 들어볼게요. 축구공을 자세히 보면 정오각형과 정육각형의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조각들은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직선들이 만나 각을 만들죠. 또 여러 각들이 모여 동그란 공간을 만들며 ‘구’라는 입체모양을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축구공 외에도 우리는 이미 실생활에 접기 기술을 적용하고 있어요. 그중 하나가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J 랭 박사가 개발한 자동차 에어백입니다. 그는 곤충의 다리 접는 방법을 응용해 차에 탄 승객의 목을 보호하면서도 순식간에 펼쳐지는 에어백 접기 기술을 만들었습니다. 자연에서 시작된 종이접기가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며 접기 공학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죠.

우주 세계를 개척할 새로운 학문으로



접기 로봇의 플라스틱 판에는 전기회로와 접는 선이 새겨져 있다.

지난 5월, MIT 공과대학에 신기한 영상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가로·세로 각각 1.7㎝길이의 손톱만한 플라스틱 판이 꿈틀대며 접히더니 다리가 4개 달린 로봇으로 변신합니다. 약 2㎝, 0.33g의 로봇은 1초당 4㎝를 움직이는 속도로 파닥거리며 주변을 돌아다닙니다. 경사면을 오르기도 하고, 자신보다 2배 이상 무거운 물건도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장애물을 헤치고, 물에서 수영도 합니다. 영상 속 로봇은 종이접기를 응용해 만들어진 ‘접기 로봇’입니다. 간단한 회로와 접는 선이 새겨진 얇은 플라스틱 판에 열을 가해 입체적으로 접히게 만든 뒤 외부 자기장으로 조종하죠.



지난 5월, MIT 다니엘라 러스 교수 연구팀은 종이접기를 응용해 초소형 접기 로봇을 개발했다.

최근 과학자들은 종이접기 기술을 공학에 활용한 접기 공학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규모가 큰 기계를 종이처럼 접어 크기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죠. 작아진 기계는 더 쉽게 운반할 수 있고, 조작도 훨씬 쉬워질 수 있어요. ‘접기 로봇’을 개발한 미국 MIT의 다니엘라 러스 교수는 “접기 로봇은 평면을 입체로 만드는 종이접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로봇을 빠르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는데, 풀이나 가위 없이도 입체모형을 만들 수 있는 종이접기가 그 해법이 됐다”며 접기 공학의 편리함을 강조했죠. 이처럼 종이접기에 활용되던 접기 기술은 주로 우주과학·로봇과학·의학 등 공학 분야에 활용되며 접기 공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접기 공학이 처음으로 활용된 분야는 우주과학입니다. 1995년 일본의 천체물리학자 미우라 교수가 설계한 접이식 태양전지판이 첫 성공사례로 알려져 있죠. 그는 인공위성 양 옆에 직사각형 모양으로 설치되는 태양전지판의 가로·세로에 주름을 넣고, 접는 방식으로 크기를 줄인 후 우주로 날려보냈어요. 우주로 날아간 태양전지판은 특별한 장치 없이 원 상태로 펼쳐지는데 성공했고, 종이접기를 활용한 과학 발전의 가능성을 증명했죠.

이후 접기 공학을 이용한 태양전지판 연구는 초고속으로 이루어졌습니다. 2014년에는 종이접기를 이용해 태양전지판을 더 간편하게 우주로 옮길 수 있는 방법이 연구되기도 했죠.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제트추진연구소는 지름이 25m에 달하는 태양전지판을 10분의 1정도인 2.7m 지름으로 축소시키는 기술을 연구 중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만약 이 기술이 성공한다면 태양전지판의 전력생산능력을 14kw에서 250kw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주에서 스스로 접기가 가능해져 이동식 우주기지도 건설할 수 있으리라 예상됩니다.



2012년, MIT와 하버드대가 종이접기를 활용한 로봇을 공동제작했다. 사진은 로봇이 접히기 전 모습.

로봇 공학에도 접기 공학이 적용됩니다. MIT와 하버드대 과학자들이 모여 만든 로봇 역시 스스로 접기와 펴기를 반복할 수 있습니다. 전기회로를 내장한 경첩이 종이판에 함께 설계되어 열을 제어하고, 로봇의 몸체를 순차적으로 접은 후 설 수 있게 하죠. 한번 접히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었던 기존 로봇과 달리 이 로봇은 접혔던 로봇이 다시 평면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할 수 있어요. 로봇을 조립하기 위한 너트와 볼트가 필요 없기 때문에 손쉽게 만들 수도 있죠. 이러한 장점은 시간과 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에 로봇을 대중화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종이에 일정한 열을 가하면 로봇은 스스로 모양에 맞춰 접힌 후 설 수 있다.

접기 공학의 발전은 종이를 비롯한 수많은 접기 재료들의 개발과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그중 형상기억합금이라는 재질이 가장 큰 역할을 했죠. 힘을 가하고, 변형을 시켜도 본래의 모양을 기억하고 열을 통해 제자리로 돌아가는 신소재 입니다. 형상기억합금의 개발은 접힌 태양전지판이 다시 펴지거나 종이가 스스로 접혀 로봇으로 조립되도록 만들었죠. 여기에 접기 기술의 원리가 수학적으로 증명되며 더 작고, 더 정교한 접기 기술이 개발되었다는 점도 접기 공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사람 목숨도 살리는 종이접기 기술



종이접기 기술을 활용해 20분의1 크기로 축소한 우주망원경 렌즈.

접기 공학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도 합니다. 주로 의학 분야에 적용되며 비용절감 효과와 수술의 안정성을 극대화하고 있죠. 우리 돈 1000원으로 약 58만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게 한 종이 현미경 ‘폴드스코프’가 대표적입니다. 2013년 스탠포드 대학 약대 물리학 조교수 마누 프라카시가 개발한 이 발명품은 종이에 인쇄된 전개도면을 따라 그대로 접기만 하면 현미경이 됩니다. 종이에 관찰용 렌즈와 소형 LED전구가 부착되어 있기 때문에 조립만 하면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장비는 주로 아프리카 개도국과 같이 전염병에 취약하고,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어요. 높은 해상도의 현미경을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특히 감염 걱정이 있을 경우 바로 태워 없앨 수 있기 때문에 위생적이기도 합니다.



종이접기 기술을 활용해 개발한 스텐트는 수술의 안정성을 높였다.

수술의 안전성을 높인 경우도 있습니다. 2003년 옥스퍼드 대학의 연구팀에 의해 개발된 스텐트 기술은 좁아진 혈관을 수술 없이 넓힐 수 있게 만들었어요. 혈관 내부에 작게 접힌 스텐트를 넣은 후 펼치는 기술이 이용됐죠. 안과에서는 손상된 망막을 안전하게 시술하기 위해 접기 공학을 응용하고 있습니다. 눈을 절개해야 하는 위험한 수술 대신 망막세포를 대신하는 감광판을 접고, 꼬아 가늘게 만든 후 안구로 넣은 뒤 전기 자극을 주어 펼치는 겁니다. 이외에도 생명과학자들은 사람의 DNA를 다양한 방식으로 접어 원하는 형태로 만들기도 하고, 체내에 약물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도록 의료기기를 접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랭 박사는 종이접기 기술과 현대 공학의 만남이 무궁무진한 기술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 말합니다. “앞으로는 언제, 어디서든 쉽게 변하고 조정할 수 있는 제품들이 필요하다. 종이접기는 다양한 모양으로 변형할 수 있기 때문에 공학에 이용된다면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죠. 현재 그는 빛과 열을 활용한 접기 방식 연구와 우주 가구 의료기기만을 위한 접기 디자인 연구, 인공 강을 만들기 위한 기초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종적으로는 접기 공학을 여러 분야에 적용하며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지금, 여러분의 눈앞에 놓여진 종이 한 장이 새롭게 보이지 않나요? 거대한 운동장을 작게 접어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시대가 곧 다가올지도 모르겠네요.

글=이민정 기자 lee.minjung01@joongang.co.kr, 사진=중앙포토·미국항공우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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