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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 압도하는 러시아 '할머니시대'

[기타] | 발행시간: 2012.05.12일 13:50
[오마이뉴스 서진석 기자]

▲ 부라노보 마을의 할머니들로 구성된 '부라놉스키에 바부슈키' 그룹 멤버들. 이들은 5월 22일부터 열리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러시아 대표로 나간다.

ⓒ 공식 홈페이지

2차 대전 후 전쟁으로 피폐해전 유럽의 정신적 재건을 위해 지난 1955년 최초로 시작된 유로비전 가요제가 올해로 57년 째에 접어들었다. 이전에 비해 한국에서의 관심은 많이 사그라든 것 같지만, 아바, 셀린 디옹 같은 세계 팝음악의 판도를 주름 잡는 가수들을 배출한 유로비전 가요제의 인기는 현지에서 여전히 대단하다.

그동안에도 유로비전은 소련 붕괴 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우크라이나 같은 유럽문화의 변방과도 같은 국가에서도 개최되는 등 정치 경제 종교와 무관하게 음악과 문화로 유럽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거대한 축제의 장이었다.

실제 유로비전의 본선이 열리는 날은 거리가 텅텅 비고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바나 맥주집은 자국 가수를 응원하는 인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마치 우리나라에서의 월드컵 열기를 방불케 한다.

5월 22일부터 열리게 될 유로비전도 여느 때와는 다른 면모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에 특히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유로비전 사상 최초로 그동안 유럽의 또 다른 변방이었던 코카서스 3국 중 하나인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열린다는 것과, 참가자들의 평균연령이 대폭 높아졌다는 것이다.

할머니들, 유로비전 참가자 평균 연령을 높이다

그 평균연령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들이 바로 지난 3월 7일 러시아 대표로 선발된 할머니들이다. '부라놉스키에 바부슈키'라는 이름의 할머니 그룹이 바쿠에서 열리는 유로비전 가요제에서 러시아를 대표할 그룹으로 선발된 것이다. 이들은 6명으로 구성돼있는데, 예술감독이자 '팀리더'인 43세 아주머니를 제외하면 모두 56-76세의 할머니들이다.

그들은 러시아인들이 아닌, 서부 우랄산맥 인근에 위치한 자치공화국인 우드무르티야(Udmurtia) 공화국 출신이라는 점도 많은 관심을 끌었다. 총면적 4만2천㎢로 남한 면적의 반에 조금 못미치는 이 아담한 공화국은, 러시아 전체를 대표하기엔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 지역이다.

이 단체의 이름도 러시아어로는 브라놉스키에 바부슈키(Бурановские бабушки), 현지어인 우드무르트어로는 브란구르트 페샤나이요스(Брангурт песянайёс). 그렇게 각기 전혀 다르게 불릴 정도로 러시아어와는 상당히 차별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우드무르티야에서는 러시아어와는 전혀 다른 에스토니아, 헝가리, 핀란드의 언어와 연관이 깊은 우드무르트 언어를 사용하여 주변 민족들과는 상당히 차별되는 문화와 역사를 일구어왔다.

공화국의 수도는 이젭스크(우드무르트어로 '이즈카르')로, 13세기 무렵 우드무르트인들이 이 지역에 모여 살기 시작했으나 16세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러시아의 지배하에 들어가 있어 세계적으로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러시아 연방공화국 내에 섬처럼 자리잡은 독특한 문화와 언어로 인해 그동안 인류학자, 언어학자들 사이에서는 연구 대상으로 많이 알려져 있던 지역이었다. 그렇게 이름만 겨우 알려져 있던 이 지역의 할머니들이 러시아 연방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경쟁에서 우승을 했다는 것 자체로도 큰 이슈가 되었던 것이다.

최고령은 76세... 평소엔 가축 돌보거나 밭일

이 단체의 이름은 러시아어로 '부라노보(우드무르트어 '브란구르트') 마을의 할머니들'이란 의미이다. 수도에서 30km 떨어진 부라노보 마을에 사는 40세에서 82세에 이르는 단원들로 구성되어 있고 11명의 여성과 1명의 남자 등 총 12명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참가 단원수가 6명을 넘지 못하는 유로비전 가요제의 규정 때문에 그중 여섯 명만 참가의 영예를 얻게 되었다.

그 중 최연소 단원은 부라노보 마을 문화센터장이자 공연단의 행정, 음악지도, 안무 등을 총담당하는 올가 투크타메라로 올해 43세. 할머니들 중 최고의 '귀요미'인 나탈리아 푸가체바씨는 76세로, 여섯 살이었을 때 나치가 소련을 침공하던 당시의 상황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만큼 아직 정정하다. 푸가체바 할머니는 역대 유로비전 사상 최고령 참가자이기도 하다.

1969년에 결성된 이 공연단은 우드무르트 전통민요와 춤 등을 주로 무대에 올렸고, 같은 핀위구르어권 국가인 에스토니아, 핀란드, 헝가리 등에서 우드무르트인들의 문화와 언어를 알리는 행사에 모습을 보이면서 조금씩 유럽 전체에 명성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지 우드무르트어만을 사용해서 노래하는 전통만 고집하지 않고 '렛잇비', '호텔 캘리포니아' 등의 고전 팝음악과 러시아 대중가요를 우드무르트어로 번안하여 소개하는 등의 다채로운 활동으로 러시아 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구가했다.

할머니들은 어디서 무슨 노래를 부르든 우드무르트어와 우드무르티야에서 일상생활을 하면서 입는 민속의상을 고집한다. 심지어 수십 년 동안 입고 작업하던 옷들도 공연복으로 사용한다.

단원들은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우드무르트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젊은 시절 낙농업, 유치원 교사, 회계사, 건설업, 농장, 공장 등 다양한 업종에서 종사했으나, 현재는 모두 은퇴하여 거위, 닭, 토끼, 고양이 등 가축을 돌보거나 밭일을 돌보면서 생활을 유지한다.

▲ 서부 우랄산맥 인근에 위치한 자치공화국인 우드무르티야 공화국 시골 전경.

ⓒ tatiana

러시아 전체에 63만명 뿐인 우드무르트인들의 '경사'

단원 중 한 명인 발렌티나 파첸코(74) 할머니 집에 보일러가 설치된 것은 불과 작년 9월, 그전까지는 근처 숲에 가서 일일히 나무를 해와서 난방을 해야했다. 여전히 수도는 없어서 공동수도에서 물을 길어다 쓴다. 노래를 지도해주는 아들과 함께 살면서 주로 닭 치며 연명을 하는 평범한 인생을 살았으나 얼마 전 사고로 팔 하나마저 잃었다.

그 외 단원들 모두 평생 우드무르티야의 민속음악을 부르고 민속춤을 추었지만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이렇게 러시아 시골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흔하디 흔한 할머니들이 결성해 만든 이 공연단이 유럽의 쟁쟁한 젊은 음악가들과 겨룰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할머니 시대'의 출현이 놀라운 것은 단지 그 나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우드무르티야라는 공화국이 가진 특별한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우드무르티야는 우드무르트인들이 줄곧 살아온 곳이긴 하지만, 급격한 도시화와 러시아화로 인해 주민들의 수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2002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우드무르티야 공화국을 포함한 러시아 전체에 63만 명 정도의 우드무르트인들이 거주하며 그 중 73%인 46만4000명 만이 우르무르트어를 모국어로 구사할 수 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우드무르트인들의 3분의 2가 이 지역에 살고 있으나, 그것도 러시아 등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우드무르트인들은 공화국 전체 인구 중 28%에 불과한 소수민족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젭스크나 사라풀 같은 대도시는 러시아인들의 차지가 되어버린지 옛날이다.

게다가 소련 시절 군수공장이 집중적으로 지어지면서 이곳은 일반인들의 출입이 전면 통제된 지역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드무르트 문화의 세계화나 홍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현지 학교에서는 여전히 우드무르트어로 교육을 하기도 하고, 하루에 두어 시간이긴 하지만 지역 방송에서는 뉴스시간에 현지어로 방송을 해주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 놓여있던 우드무르티야의 할머니들이 우드무르트어로 부른 노래가 러시아를 대표하는 곡으로 선정되었으니 현지인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 할머니들이 우승이라도 한다면...'

우드무르티야 공화국 출신으로 오스트리아 인스부르그 대학교에서 우드무르트인들의 전통신앙과 관습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타티야나 민니야크메토바 교수는 이 할머니들의 성공이 우드무르트인들을 전 세계에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고 역설했다 .

"저는 이 할머니들이 전 세계에 우드무르트인들에 대한 눈을 열어주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제가 지금 일하고 있는 인스부르크 대학교에서도 아무도 우드무르트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제가 일하는 곳이 유럽민족학연구소인데, 어떻게 아무도 모를 수가 있냐고요. 우드무르트인들도 엄연히 유럽에 살고 있거든요. 부라노보 할머니들의 성공 이후 제 친구들도 우드무르트인들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어요. 유럽 내 여러 방송사들에서도 부라노보 할머니들에 대한 내용을 내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민니야크메토바 교수의 말에 따르면 그동안 유로비전에 참가한다는 것은 돈과 지연이 있는 가수들만이 가능하다는 선입견이 있어왔다. 그런 장점이 전혀 없는 할머니들이 100% 자신들의 기량만으로 성공을 거둔 것은 '반벌거숭이' 팝스타들에 질리고 뭔가 특별한 것을 찾던 사람들에게 자극이 된 것이다.

민니야크메토바 교수는 기자와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만약 정말 이 할머니들이 바쿠에서 우승을 거두기라도 하면 푸틴 정부가 이끄는 러시아 내 소수민족 정책에도 큰 변화를 주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비치기도 했다.

▲ 유로비전 본선에 진출한 '브라놉스키에 바부슈키'그룹 할머니들을 배출한 우드무르티야 공화국.

ⓒ 이은영

쟁쟁한 젊은 가수들 제치고 세 번째 도전에 본선 진출 성공

하지만 이 할머니들이 정말 혜성처럼 유럽 팝무대에 진출하게 된 것은 아니다. 2010년 처음으로 유로비전 가요제에 문을 두드린 후 올해가 벌써 세번째 도전이다. 현재 이들의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크네니야 룹초바씨는 지난 2008년 이젭스크에서 열린 한 공연에서 우드무르트어로 '예스터데이'를 부르고 있는 그들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후 룹초바씨는 2009년에 사망한 러시아 최고 민요가수 류드밀라 지키나의 생일 기념 콘서트에 초대해 그들의 기량을 시험해 보았고 반응은 대성공이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할머니들에게 유로비전에 나가보지 않겠느냐 제안을 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 전부터 헝가리, 핀란드, 에스토니아, 프랑스 등 다른 핀우그르어 국가에서 공연을 한 바 있어 국제무대에서의 공연도 이미 친숙한 상태였다. 할머니들은 거침이 없었다.

2010년 처음으로 러시아 예선에 도전했을 땐 고배를 마셔야했지만 그래도 3위라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고, 올해 세번째 시도에서는 25명의 쟁쟁한 가수 및 그룹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경쟁가수들 중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마니어층이 꽤 두터운 러시아 여성아이돌 타투의 멤버도 들어 있었다.

심사결과는 러시아 음악계의 전문가들의 평가와 시청자들의 전화투표를 합산해 계산됐고, 전체 38.5%라는 높은 득표를 얻었다. 이 할머니들이 유로비전에서 선보일 '파티 포 에브리바디(Party for everybody)'는 손님을 맞기 위한 잔치를 준비하는 이들의 흥겨운 기분을 노래한 댄스곡으로 우드무르트어와 영어가사가 섞여있다.

우드무르티야는 이들의 성공을 바탕으로 해서 유럽과 전 세계에 우드무르트인들의 문화를 알리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유로비전의 우드무르티야식 버전인 '엘쿠노비데니에(El'kunovidenie)'를 준비 중이다. '엘쿤'은 우드무르트어로 '공화국'을 의미하는 단어로 우드무르티야 전역에 살고 있는 아마추어 가수들이 참가하여 기량을 선보이는 가요제다. 11월에 있을 우드무르티야 공화국 창설일에 최초로 막을 올리게 되는 이 가요제에 이미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난데 없이 스타덤에 오른 부라노보 할머니들이 유로비전에서의 성공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꿈은 부귀영화나 명예가 아니다. 1939년 전쟁으로 파손된 성 삼위일체 성당을 재건하는 아주 소박한 것이었다. 할머니들의 소원이 알려지고 유로비전 참가가 확정된 후부터 현재 대략 8백 만 루블(27만 3천 달러)이 모아져 할머니들은 평생 고대하던 꿈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보게 될 것 같다. 이렇게 난데없이 유로비전의 스타로 떠오른 할머님들은 여전히 감자를 키우며 가축을 돌보는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이번 유로비전에는 푸가체바 할머니가 유일한 최고령 참가자는 아니다. 영국 대표로 참여하는 엥글버트 험퍼딩크(Engelbert Humperdinck)는 1936년 생 76세로 할머니와 동갑이다. 젊고 예쁜 소녀들이나 꽃미남들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 외에는 관심의 틈을 주지 않는 한국 가요시장에서는 가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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