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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과 연변 각 현시의 이름 어떻게 지어졌을가?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6.09.28일 11:03

지난세기 30년대의 도문거리


룡정 명칭의 기원비


위만시기 돈화거리


훈춘의 “진정문”옛터


왕청기차역 옛터(지금의 동광촌 부근)

력사기재에 따르면 연변은 일찍이 2만 6000년전의 구석기시대 말기부터 “안도인” 등 인류가 생존했다 한다. 고대동북에 숙신, 옥저, 말갈, 녀진, 만족 등 민족이 살았던 경력이 있다. 당, 료, 금, 원, 명, 청 력대 모두가 연변일대에 행정기구를 설치하고 관리해왔다.

지명은 한개 도시의 생명의 기점이다.

연변

연변은 연길이라는 지명이 나타난후에 있은 이름이며 길림성 동부 변강에 위치해 있다해서 변화돼 왔다.

1677년 청나라정부는 발상 “승지”를 보호하기 위해 흥경(지금의 료녕성 신빈만족자치현) 이동, 이통주이남, 두만강이북 지역을 전력 봉쇄했다. 연변지역이 모두 봉쇄범위에 들었고 연길은 남황위장(南荒围场)에 속했으며 그후에 남강(南岗)이란 이름을 달았다.(“南荒”의 음에서 전해졌음) . 광서17년 (1891년) 남강에다 황무국을 설치, 국자가로도 불렀다. 1902년 11월 연집강(烟集岗, 연길)에다 연길청을 설치했다. 연길청이 설치된 후 이 지역을 “연훈제변(延珲诸边)”, “연훈지방(延珲地方)”, “연훈전경(延珲全境)” 으로도 불렀다. 그후 “연길지방”, “연길지역”으로 부르다 “연변”이라 부르게 되였다.

“연변”이란 지명은 일찍이 1913년에 출판한 “길림지지(吉林地志)”에 기록돼 있다.

1945년 8월 18일, 쏘련홍군과 동북항일련군 연변특파대가 연길에 입주, 위“간도성”군정기관이 무너지고 연변지역이 해방되였다. 8월 20일, “간도림시정부”가 구성되고 9월하순에 중공중앙 동북국에서 길합구행정위원회를 설립, 연변지역은 연길, 훈춘, 돈화, 화룡, 왕청, 안도, 액목 7개현이 포함됐다.

연길

“연길”의 속칭이 연집강(烟集岗)이며 남강이라고도 불렀다. “연길”지명의 기원에 대해 여러가지 말이 있다. 명나라때 후예지랑(瑚叶吉朗) 이란 이름을 달았고 청나라때는 남강이라 했다. “연길”의 만족어는 야산양(野山羊) 혹은 석양(石羊)의 뜻이다. 개발초에 이곳은 연기가 자욱해 연집강(烟集岗)이라 불렀는데 연길(延吉)은 연집(烟集)의 음으로 따와 전해졌다. 청나라후기에 연길을 국자가라 불렀는데 즉 관아소재지란 뜻이라 한다. 민국시기에 일반적으로 국자가라 불렀고 연길이라 부르기도 했다.

광서 28년(1902년) 연집강에 연길청을 설치, 선통원년(1909년)에 길림동남로병비도대공서(吉林东南路兵备道台公署)가 국자가에 입주, 연길청을 연길부로 승급, 1912년에 연길현으로 개칭했다. 연길청이 설립된 후 청나라말 민국초에 이 지역을 “연훈제변(延珲诸边)”, “연훈지방(延珲地方)”, “연훈전경(延珲全境)” “연길지방(延吉地方)”, “연길지역(延吉区域)”이라 했다.

훈춘

“훈춘”이란 이름에 대한 유래가 여러가지 있다. 《명사(明史)》기록에는 “훈춘은 녀진어 즉 “편지(遍地)”, “변경(边陲)”, “근변(近边)”이란 뜻에서 왔다.

《금현석명(今县释名)》에 “명나라때 훈춘위를 설치, 와얼하부에 소속되였으며 훈춘하로 이름이 지어졌다. 금사세기 훈춘수와 통문수가 합류해서 여기에 왔다… ”는 기록이 있다.

흑룡강성만족어연구소 목엽준교수의 번역에는 “훈춘은 만족어로서 꼬리란 뜻이고 하류란 개념을 표달했으며 강차(江岔), 하차자(河岔子)로 번역할수 있다.”고 했다.

훈춘은 바다와 잇닿아있고 여러 하류가 바다로 들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만족어로 “강차(江岔) 혹은 하차(河岔)”로 번역하는것이 훈춘의 실제에 부합된다 한다.

도문

도문이란 이름은 두만강으로부터 따왔다. 두만강은 만족어 “도문색금(图们色禽)”이란 단어에서 따왔다. “图们”은 “万”이라는 뜻이고 “色禽”은 “河源”이란 뜻이다. 즉 만물의 근원이란 뜻이다.

19세기 말부터 촌락이 형성되고 회막동 혹은 하전자로 불렀다. 1933년에 돈도철도(敦图铁路) 종점을 회막동에 세운후로 해당 당국은 공상업계 사람들을 불러놓고 회막동을 도문으로 개칭했다.

돈화

당나라때의 발해건주이며 대조영이 나라를 세운 옛터이다. 현덕부 영주소속이다.

원나라시기에 알타리만호부를 설치하고 명나라때에 농액륵 등을 설치했다. 광서7년(1881년)에 돈화현을 설치했다. 아크둔성(阿克敦城)어음을 따서 돈화(敦化)라 불렀다.

《길림통지(通志)》여지지(舆地志)중에는 “돈화현 지현서가 성동문내 거리북쪽에 있었고 광서6년에 건립”이란 기재가 있다.

룡정

“룡정”이란 지명은 조선어에서 따왔다. 1881년 조선인 농민 장인석, 박윤언 두 가정이 륙도구에 이사하면서 우물을 발견하고 조선어로 “룡조정(龙吊井)”이란 이름을 달았다.

후에 룡정이란 이름이 전해졌다.

1908년 연길청이 룡정촌으로 불리였고 륙도구를 대체했다. 1934년 룡정촌주민은 룡정지명의 기원을 기념하기 위해 리기섭의 발기하에 이 우물을 새로 수선, 2메터 높이의 화강암비석을 세웠다. 비석에“龙井地名起源之井泉”이란 글자가 새겨져있다.

화룡

화룡시는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있다. 구석기시대부터 인류가 생존해 있었다.

광서28년 (1902) 화룡골분방청(和龙峪分防厅)을 설치했다. “화룡골(和龙峪)”이란 이름이 일찍 1883년(광서9년)《길림조선상민무역지방규정(吉林朝鲜商民贸易地方章程)》에서 나타났다. “화룡골”은 지형으로 이름을 지어졌다. 동쪽은 겹겹이 둘러싸인 산봉우리가 이어지고 서쪽은 구릉지대이며 중간은 하곡분지라 해서 “두 산에 낀 개울”이라는 뜻에서 왔다. “峪”란 한어로 “산골짜기”란 뜻이다.

왕청

“왕청”의 이름은 만족어 “旺钦”에서 따왔는데 “보루(堡垒)”란 뜻이다. 선통원년(1909년) 왕청현을 설치, 현 동쪽에 왕청하(旺清河)가 있었는데 만족어의 음을 땄다는것이다.

현재 도시표지를 세울때 여전히 원명“旺钦”을 쓴다. 청나라초에 봉천흥경(지금의 료녕신빈현) 동쪽에 “旺清”문이 있었는데 음과 뜻이 같다하여 “旺”을 “汪”으로 고치고 “旺钦”을 “汪清”으로 고친후 지금까지 사용해왔다.

안도

“안도” 이름의 기원은 지난세기 초로 거슬러올라간다.

광서 31년(1905년) 일본은 조선을 침략한 후 두만강이북의 중국령토를 “두번째 조선” 혹은 “조선의 연장”으로 만들려고 공공연히 “중조국경선문제”를 왜곡해 제기했다.

광서34년(1908년) 4월, 흠차대신이며 동3성 총독인 서세창이 류건봉 등을 파견하여 “봉길량성변경선답사 겸 장백삼강지원조사(勘奉吉两省界线,兼查长白三江之源)”을 시켰다. 《료녕안도현지(辽宁安图县志)》기재에 따르면 두만강변에 현을 설치하여 국경선을 보호한다는 뜻으로 안도라는 이름을 달았다 한다. 변강을 안정시킨다는 뜻이다 한다./ 길림일보에서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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