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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물에서 보물을 찾아내는 사람

[기타] | 발행시간: 2016.12.01일 12:26

본계시홍원페차정비유한책임회사 강성애



 1981년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본계시페기물수거회사에 입사해 오늘까지35년을 쓰레기속에서 뒹굴었지만 감탕속의 련꽃처럼 한점 오염없이 깨끗이 청춘을 꽃피우며 인생의 성공을 찾은 조선족녀기업인이 있다. 그가 바로 본계홍원페차정비유한책임회사 강성애사장이다.



 1981년 강성애사장의 어머니가 본계시페기물수거회사에서 퇴직을 하자 부모님들의 요구(국영기업 직원이라는 리유)와 강압하에 강성애는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어머니의 뒤를 이어 본계시페기물수거회사의 사무실직원이 되였다. 갓 물기오른 꽃망울같은 처녀로서 페기물수거회사에서 사업한다는것은 체면이 아니였다. 누가 “어디에서 출근하냐?”고 물으면 얼굴부터 붉어지고 대답을 할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업에는 분공이 다를뿐 귀천이 없다”는 말을 굳게 믿은 그는 무슨 사업을 하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성공할수 있다는 일념으로 고물에 인생을 걸었다.

  1986년 고물속에도 상업기회가 있다는것을 포착한 강성애는 동료와 합작하여 본계시의 한 페기물수거장을 도급맡았다. 고물을 많이 수거하여 경영범위를 넓히고 영업수입을 높이기 위하여 강영애사장은 숫쳐녀로서 몸에서 온갖 고약한 냄새가 나는 전국 각지에서 온 형형색색의 넝마주의군들을 웃는 얼굴로 정답게 맞아주었고 그들과 친구가 되였다. 고물장사는 눈덩이처럼 커졌고 경제수입도 톡톡했다. 이렇게 강영애사장은 “사회상의 최하층 사람들과 접촉하고 사귀면서 처음 장사를 배우고 장사의 단맛을 맛보았으며 사업의 기초를 닦았다.”



 1998년 본계시페기물수거회사는 강영애를 본계시페기물수거회사 채툰분사 경리로부터 본계시페차정비회사 총경리로 조동시켰다. 당시 본계시페차정비회사는 파산직전에 이른 회사로 사무실과 공장도 없어 남의 회사건물을 빌려쓰고 있었으며 30여명의 직원중 20여명은 앞당겨 퇴직을 하고 몇명이 남아 회사를 지키고 있었다. 로동자들은 넉달동안 로임도 못받고 있었다. 쓸만한 것이란 국가에서 내준 페차정비회사 영업허가서뿐이였다. 조동발령이 내려왔을 때 원 직장의 많은 동료들이 고생을 사서 할 필요가 있느냐며 그를 말렸지만 중국에서 갓 시작된 페차업시장의 미래를 내다본 강영애사장은 결연히 중임을 떠며였다.

 부임후 먼저 정부 유관부문을 문턱이 닳도록 찾아다니며 회사의 건물과 부지를 해결하였다. 하여 본계시페차정비회사는 회사이름만 있고 공장이 없던 20여년의 력사에 종지부를 찍고 본계시 평산구 천금로 385동에 단독 공장과 사무실을 갖게 되였다. 다음은 국가의 페차업에 관한 유관 결정에 따라 정부에 적극적인 건의를 해 본계시의 페차시장을 정돈하였다. 본계시에는 본계시페차정비회사외에도 본계강철회사 등 기업에서 운영하는 페차회사가 두개 더 있었다. 이는 국가의 페차회사 운영에 대한 유관결정(1개 시에 하나의 페차회사만 허락함)에 부합되지 않았을뿐더러 페차시장에 혼란을 조성하고 환경보호와 페차의 효률적관리에도 악영향을 주었다. 강영애사장의 노력과 호소로 본계시정부에서는 본계강철회사 등 기업들에서 운영하는 2개의 페차회사를 규제하고 본계시페차정비회사의 시장을 확보해주었다. 본계시페차정비회사는 일약 결손기업의 모자를 벗고 30여명의 직원을 가진, 국가에 세금을 상납하는 기업으로 발전하였다.



 2011년 국가에서는 페차업에 대한 관리와 표준, 요구를 강화하고 페차업에 대한 환경규제를 강화하였다. 국가에서 제정한 표준과 요구에 도달하자면500여만원의 자금투자가 필요했다. 투자, 개조할 여력이 없은 본계시페기물수거회사에서는 이 계기를 리용하여 본계시페차정비회사에 대한 체제개혁을 실시하고 주식제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국가의 경제발전에 따른 인민들의 생활질향상과 자동차시장의 밝은 앞날을 전망한 강영애사장은 체제개혁 때 500여만원을 투자하여 본계시페차정비회사의 주식을 전부 소유하고 본계시페차정비회사를 국가에서 요구하는 표준요구대로 개조, 건설하여 국가표준화 페차정비회사로 승격시켰으며 회사이름을 본계홍원페차정비유한책임회사로 개명하였다.



 만여평방미터의 페차장 바닥에 콩크리트포장을 하고 6천여평에 달하는 공장건물과 사무실을 건설하였다. 비물 및 페유 집수조 설치를 의무화하였으며 파쇄기, 전단기, 압축기 등에 대한 진동소음 및 분진저감장치를 설치하여 환경오염을 최저화하였다. 구원차, 지게차, 중량기 등을 새로 구입하여 회사의 능률을 대폭 증가하고 페차고객들에 대한 서비스 질을 크게 향상하였다.



 수년간의 발전을 거쳐 지금 본계홍원페차정비유한책임회사는 본계시의 유일한 합법적인 페차회사로 등록자본금 870만원에 각종 기술인원 30여명을 확보하고있으며 년간 수천대의 페차능력을 갖추었다.

강영애사장은 “무슨 일을 하든 변함없이 끝까지 노력과 정성을 쏟아붓는다면 보람찬 성공을 이룰수 있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윤청기자

출처:료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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