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빈) 한영남
이십년인가 삼십년인가
아니면 그보다 더 긴 시간동안
밖으로만 밖으로만 철없이 싸대다가
어느날 비로소 철이 든듯 고향에 돌아왔다
불알친구들과 술 한잔 했다
요즘의 세간에서 나를 불러주는
모든 호칭들을 무시한채
우리는 예전처럼
쑥스러운 별명들을 툭툭 주고받으며 낄낄거렸다
열어놓은 방문으로 훤히 내다보이는 마당가에서는
모기불이 따악따악 소리내고있었고
먼 곳에서는 쓸데없이 개구리소리가 요란했다
갑자기 오줌이 급해서 화장실을 찾다가
그냥 체면을 몰수하고
울바자밑에 실례하기로 했다
세상사에 진작 지쳐버린 나의 까만 녀석은
부끄러운듯 더욱 자까부러져 있었고
그런 녀석을 간신히 끄집어내
고향내음을 맡아보게 했다
이십년만인가 삼십년만인가
아니면 그보다 더 긴 세월이 흐르도록
오랜만에 정말 그렇게 오랜만에 달을 보았다
어릴적 엄마의 땀 젖은 머리에 앉아 춤추듯 돌아오던 달을
눈물이 질름질름 넘치도록 쳐다보았다
거기에 추억은 울바자처럼 서있었네
눈이 내리고있었지
동화만큼이나 아름다운 눈이 펑펑거리고있었지
그리고 밤이였지
아무에게라도 전화를 하고싶은
그런 푸근한 밤이였지
열어놓은 기억속으로는
옛날 아슴한 이야기들이
청첩이라도 받은듯이 달려오고
겨울밤은 강물처럼 흐르고있었지
그속을 나는 아이처럼 환성을 지르며 달려가고
그래서 나는 다시 그 손가락을 빨던 소년이 되였지
괜히 네 생각이 나서
나는 너에게 눈줴기를 뿌리고
너는 고드름을 창처럼 꼬나들고
나를 향해 달려왔지
강아지가 갑자기 부끄러워 고개를 드니
더없이 맑은 밤하늘에서는
별들이 눈송이처럼 쏟아져내리고있었지
그래서 울었어
시집 못간 가시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