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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평벌에 솟은 행복의 만석가리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2.08.06일 16:20

그림 같은 광소촌 몽기동마을.

  (흑룡강신문=하얼빈) 연변조선족자치주 룡정시 시내를 벗어나 중국조선족의 초기 이주사에 큰 족적을 남긴 명동촌, 오랑캐령을 지나 내처 동쪽으로 달리면 두만강과 천평벌을 만난다.

  눈뿌리가 아득하게 펼쳐진 천혜의 곡창, 기름진 천평벌을 바라만 봐도 가슴은 들먹거리고 마음은 풍요롭다. 여름을 타 제법 독을 쓰는 검푸른 벼모들이 거울 같은 논물에 비쳐 천평벌은 더구나 초록빛일색인데 산자락에 자리한 파랗고 빨간 양철지붕의 아담한 마을들이 동화속의 그림처럼 동경을 자아낸다.

 유구한 마을의 력사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상천평마을어귀에서 시골마을에서는 보기 드물게 규모가 꽤나 큰 5일장이 열리고있었다. 몇십개나 실히 되는 매장에는 복장, 남새, 육류며 호미를 비롯한 농기구에 이르기까지 없는것이 없을 정도였고 장을 보러온 촌민들로 장마당은 꽤나 북적거렸다.

광소촌은 130년전부터 물류가 흥성했다. 1883년 9월, 청나라조정은 중, 조 대외무역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길림조선상인무역지방규정”을 제정했다. 1885년, 화룡욕에 통상국을 설치한 토대에서 오늘의 광소촌에 광제욕통상분국을 앉히고 중, 조 통상사무를 처리하였다. 중국조선족이주민들이 드나드는 길목에 위치했으니 자연스럽게 물류집산지가 형성된것이다.

  재래의 광소촌은 천평벌에 솟아난 몇개의 샘물터를 중심으로 상천평, 중천평, 하천평 3개 마을뿐이였으나 몇년전에 몽기동, 북동, 남동, 삼동포가 광소촌에 편입되면서 7개 자연툰으로 늘어났다.

  중천평마을에 들어서니 정자에서 마을의 로인들이 길어진 여름날의 절주에 태워 환담을 즐기고있었다. 마을의 좌상인 박태인로인이 석쉼한 목소리로 세월의 파란으로 반죽된 촌의 개발력사를 들려주었다.

  “워낙 천평벌이야 나무 한그루도 볼수 없는 습지였는데 맨처음 1890년쯤 길주에서 온 장씨가 이곳에 밭을 일구기 시작했습니다. 이주초기에 벌써 광소촌의 사람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학교를 세우고 자식들을 공부시켰습니다.”

  1907년 3월, 리동춘이 마을사람들의 뜻을 모아 광소촌 상천평에 양정학당을 세웠다. 이는 연변에서 세번째로 세워진 조선족사립학교이다. 이듬해 양정학당은 조선족사립신식학교중에서 제일 처음으로 관립학당으로 넘었다. 양정학당은 벌써 초창기에 조선간민자녀 60명을 받아들이고 중국어, 일본어, 산학, 체조 등 5개 과목을 설치하고 공개적으로 학생들에게 반일사상과 민족의식을 키워주었다.

마을장터에서 호미를 고르는 김룡수서기(오른쪽).



  “어곡전”과 “어곡미”

  천평벌이 벼농사가 잘된다는 소문을 듣고 실농군 최학출이 조선에서 두만강을 건너 광소촌 하천평으로 이주해왔다. 최학출은 재래의 산종농사를 타파하고 “유지온상육모법”을 창안하였는데 콩기름을 바른 세면종이를 모상판우에 덮어 벼모를 키워서 논에 냈다.

  최학출의 논에서 자란 벼는 소출이 높았고 알알이 구슬처럼 투명하고 밥을 지으면 찰지고 밥맛이 특별히 구수했다. 발 없는 말 천리 간다고 최학출의 “유지온상농법”이 위만주국의 중시를 받게 되였다. 1941년 12월, 최학출은 장춘으로 불려가 강덕황제의 수라상에 올릴 어곡미를 생산하라는 특명을 받게 되였다.

  몇년간 광소촌에서는 “어곡전”의 명성을 되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2006년에 “어곡전비”를 세운 토대에서 해마다 “어곡전농부절”을 개최함으로써 “어곡미”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또 촌에서는 규모화경영을 위해 “어곡전협회”를 설립하였는데 현재 100명의 촌민이 이 협회에 가입하여 200여헥타르에 달하는 “어곡전”을 다루고있다. “어곡미”는 이미 연변의 명브랜드로 소문 높아 북경, 상해 등 국내 대도시에 진출한것은 물론, 장춘 위만황궁박물원에까지 전시,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고있다.

  천평벌의 선두주자

  현재 광소촌에는 586가구, 총인구 2247명이 거주하고있는데 전형적인 조선족촌이다. 경작지면적이 970헥타르에 달하는데 그중 수전면적이 200헥타르를 차지한다.

  피부색이 검스레하고 몸집이 박달나무처럼 단단한 광소촌 당지부서기 겸 촌민위원회 주임인 김룡수는 주견이 뚜렷하고 촌민들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선다. 취재하는 3시간 사이 김룡수서기는 세번이나 촌민들의 전화를 받고 현장에 출동하여 문제를 해결하고는 돌아와 다시 취재에 림했다. 그는 쾌남아의 뚝심으로 촌민들을 이끌고 광소촌을 “경제강촌”으로 건설함으로써 본인은 “전국특등로력모범”이라는 영예까지 획득하였다.

  김룡수는 우선 농업생산구조조정을 대담하게 개변하는데 손을 대고 축산업발전에 모를 박았다. 2008년부터 그는 소사양대상을 쟁취하고 빈곤부축자금 120만원을 조달받아 소 400마리를 구매, 선후로 400세대에 나누어주었다. 지금 광소촌에는 20여호에 달하는 소사양전문농가가 있는데 가구당 평균 10여마리의 소를 키우고있으며 촌집체에도 65마리의 황소가 있다.

  광소촌에서는 2008년부터 농기계합작사를 꾸리고있는데 현재 불도젤, 굴착기, 대중형뜨락또르 등 농기계들이 구전하여 촌의 농업생산기계화작업률은 75%를 넘어서고있다. 농기계합작사에서는 평소 촌민 가정의 수도관이 파렬되였거나 수로를 가시거나 쓰레기를 처리할 때에 무료로 봉사를 제공한다.

  사회활동능력이 강한 김룡수는 해당 부문과 장기적인 협력관계를 맺고 촌민들을 대량 해외에 내보냈는데 현재까지 한국, 일본, 영국 등 15개 국가로 해외로무를 다녀온 촌민이 연인수로 850명에 달한다. 해외로무를 통해 촌민들은 소득을 많이 창출했을뿐만아니라 견문도 넓혔다.

  김룡춘농민은 몽기동에 태를 묻고 자란 알짜토배기로 국외에서 벌어온 230여만원이라는 목돈으로 2011년에 광소촌에 몽기동소전문합작사를 설립하고 현재 200마리의 소를 사양하고있다.

  시골마을에서 우리 문화 빛을 발산

  현재 광소촌은 천지개벽의 변화를 가져왔다. 마을도로는 전부 포장도로로 바뀌고 촌민들은 수도물을 마신다.

  몽기동마을은 연변에서도 손꼽히는 전형적인 새농촌건설 시범촌이다. 마을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몽환세계에 빠진듯 마음이 황홀해진다. 마을은 소소리높은 백양나무의 록음에 묻혔는데 마을어귀의 큰 늪에서는 오리떼가 여우자적 헤염친다. 여느 마을에서는 대부분의 촌민들이 떠나가고 주택의 대문마다 널판자를 대고 대못질한것을 심심찮게 볼수 있으나 이 마을에서는 빈집을 찾아볼수 없어 더구나 살맛이 난다.

  중천평마을에는 학교운동장만큼한 마을문화광장이 있는데 건신기자재가 구전하고 정자, 문구장, 광장 등 부대시설이 즐비하다.

  정자에서 환담하던 로인들이 마을광장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다.

  “아침이면 촌민들이 건신기자재에서 달라붙어 운동을 하고 한낮이면 로인들이 정자에 모여 세간사를 주고받고 저녁이면 광장에서 사교무춤판을 벌립니다. 이웃 마을 선구, 제동에서도 춤군들이 찾아오는데 많을 때는 80여명에 달합니다.”

  정자 한켠에서는 한 중년이 책을 보고있었다. 기자가 다가가 물어보니 보건에 관한 책인데 광소촌농가책방에서 빌려온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광소촌농가책방에는 실용농업기술서적을 비롯한 5000권에 달하는 도서가 소장되여있다고 했다.

  오전취재가 끝나자 김룡수서기는 기자를 마을식당으로 초대했다. 300평방메터나 되는 마을식당에는 12개의 테블이 마련되여있었는데 식사하는 촌민들로 빈 테블을 찾을수 없었다. 도시의 식당에 들어선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광소촌에 이런 식당이 하나 더 있다고 하니 마을의 윤택한 살림에 수긍이 절로 갔고 찬탄을 금할수 없었다. 무더운 여름철이라 랭면 한그릇을 주문했는데 연길의 여느 유명한 랭면집의 랭면보다 못지 않았다.

  광소촌은 이 몇년간 선후로 “룡정시 사회주의 새농촌건설 시험촌”, “주민족단결모범촌”, “흥변부민행동특색마을”, “길림성 사회주의 새농촌건설 시험촌” 등 영예를 수두룩이 안아왔다.

  2012년 5월, 김룡수서기는 당과 정부의 신임과 촌민들의 열망을 안고 중국공산당 길림성 제10차 대표대회에 참가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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