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구 주먹’ 떠난 자리 ‘기업형 조폭’이 판친다
지난 5일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씨가 사망하고 그의 빈소에 전국의 ‘어깨’들이 조문을 하면서, 조직폭력계의 구도에 관심이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7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8월말 기준, 전국의 폭력조직은 217개이며 조직원 53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폭력조직 수를 지역별로 보면 경기가 29개(조직원 912명)로 가장 많고 부산 23개(381명), 서울 22개(484명) 순이다.
그러나 김씨가 이끌던 ‘범서방파’, 조양은의 ‘양은이파’, 이동재의 ‘OB파’ 등 1970∼1980년대를 주름잡던 기존 3대 조폭은 이미 사분오열되고, 대신 군소 조직이 경합하는 춘추전국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김씨의 사망으로 범서방파는 과거와 같은 세를 형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양은이파도 조직이 분해된데다 조양은씨가 금융권 대출사기에 연루된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는 등 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OB파도 눈에 띄는 활동이 없으며 두목 이동재씨는 해외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전국적인 세력을 일구며 폭력·갈취·사채·성매매·마약매매 등 각종 영역에서 활동하던 전통 조폭과 달리 차세대 조폭은 적정한 규모를 유지하며 기업형으로 진화하고 있는 변화양상을 띠고 있다.
대형조직의 빈자리를 중소규모 기업형 조폭들이 채우고 있다.
기업형 조폭은 유흥주점이나 불법게임장, 성매매업소 등 전통 영역이 아닌 건설업, 사채업, 유통업, 엔터테인먼트업 등 합법을 가장한 형태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주식시장, 인수·합병 등에도 관여한 데 이어 보험사기, 인터넷 도박사이트 등 돈이 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파고들고 있다.
경찰은 조폭들이 사채시장에서 사업가 행세를 하며 주식 등을 담보로 잡고 고리로 자금을 빌려준 뒤 이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터무니없이 고금리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금품을 갈취하는 사례가 빈발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조폭들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양상을 주시하고 있다.
이들은 연예인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하거나 사진 촬영, 사인회, 각종 행사 출연을 강요하고 연예기획사를 직접 운영하면서 불공정 계약을 강압하는 등 불법행위를 일삼는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전국적인 조직이 사라지고 중소규모 조직이 실리를 추구하는 형태로 점차 변화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문화일보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