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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겨울 수채화에는 그리움이 물들고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3.01.08일 11:04
 (연대) 리화

겨울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산동은 아직도 눈이 내리지 않았지만 북방에는 이미 큰눈이 내려 은백색단장을 하고 있다는 뉴스를 인터넷에서 보았습니다. 고향에 있을 때는 매년 이맘 때면 하얀 눈을 밟으며 새해 축복을 전하는 년하장 준비에 분주했던것 같습니다. 삼삼오오 떼를 지어 예쁜 년하장을 사서는 아름다운 글귀를 적어서 주고받았던 누구에게나 따뜻하게 와닿는 겨울을 보내군 했습니다.

  책장을 열어 꽂아두었던 년하장 하나 꺼내봅니다. 겨울차림을 한 귀여운 새 10여마리가 오구작작 모여서 함께 헬기를 탄 그림이 있는 년하장입니다. 살며시 펼치니 비뚤비뚤한 글씨들이 눈에 안겨옵니다. 축복의 멜로디가 귀맛좋게 흐릅니다. 새해에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해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담은 남동생이 보내주었던 년하장입니다. 오늘도 이 년하장은 잔잔한 멜로디로 지나간 겨울풍경을 재생시키고 있습니다.

  그때 겨울은 썰매타고 돌아오는 남동생의 빨간 볼에서 화사하게 피여나곤 했습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에는 마당에 눈사람을 만들어놓고 동네아이들과 눈싸움을 벌리던 동생의 웃음소리에 강추위도 한발 뒤로 물러서군 했지요. 귀를 쫑긋 세운 세파트도 마구 뛰여다니고 눈우에서 뒹굴던 더없이 좋은 계절이었습니다. 처마밑에는 시래기가 걸려서 바람에 흔들리고 마당 빨래줄에 널린 옷에는 고드름이 대롱대롱 달려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고향집이 많이 허전해졌습니다. 아버지가 한국으로 가신후 고향집의 뒤밭 울타리는 몇년사이에 다 쓰러져버렸고 엄마가 한국 가신 뒤로는 김치독도 텅텅 비여있고… 가마목에서 발효시키던 청국장의 구수한 향도 나지 않습니다. 남동생이 연해도시로 나온 후로는 눈우에 찍힌 장난꾸러기 발자국도 볼수가 없고… 세파트가 남의 집으로 보내진 후로는 컹컹거리는 소리도 들을수 없는 빈집이 되여버렸습니다.

  다행히도 지난해는 어느 할아버지, 할머니가 우리집에서 살아주셨고 친척들의 친구들도 빈집을 채워주어서 걱정이 되지 않았는데 올해 겨울은 고향집이 비여서 홀로 추워할가봐 걱정이 무척 앞섭니다. 눈이 펑펑 내려서 마당에 수북이 쌓이면 이웃집 마음 좋은 아저씨가 쓸어줄가나?…

  고향집 마당 한켠에는 늘 장작나무와 소나무가지들이 그득 쌓여져 있었습니다. 그때 겨울은 아버지가 만드신 큰 산발구에 산더미같은 나무가 얹혀 왔었지요. 아버지는 겨울이면 2-3미터 되는 나무막대기에 낫을 꽁꽁 동여매여 규칙없이 자란 나무가지를 다듬어 와서 패서는 차곡차곡 쌓아두었습니다.

  어느 추운 날, 아버지랑 함께 공구 사러 집을 나선 적이 있습니다. 난생처음 당신의 팔짱을 끼여보는 나는 신났습니다. 언젠가 방학해서 집에 돌아온 내가 어쩌다 아버지 목을 끌어안고 등에 치근닥거릴 때 “저쪽에 가랏. 크다만기 와 매달리노?”하시던 아버지, 당신은 언제나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였지요. 그날 아버지는 누구한테서 받아입은 긴 니즈외투를 입고 사촌오빠가 준 솜털없는 신발을 신었습니다. 솜신발을 신어도 발이 얼어들만한 날씨인데 당신은 “이 신 참 뜨시다. 좋다.”고 하시면서 기분좋게 한적한 철길을 걸어주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아버지 친구집에 잠간 들려 언배 반자루를 받아안았습니다. 강추위에 무거운 언배를 들고 집으로 가야 하기에 나는 택시를 타자고 제의했었지요. 그때 당신은 “이 추운날에 너거 엄마는 자전거타고 식당에 출퇴근하는데 우리도 고마 걸어가자”면서 언배 반자루를 어깨에 짊어지고 씨엉씨엉 앞에서 걸으셨습니다. 반짝이는 레루의 평행선이 눈길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속으로 앞서 걷는 아버지와 뒤따르는 나에게 하늘은 찬란한 해살을 내려주었습니다.

  겨울은 밤늦게까지 저녁자습 마치고 돌아오는 나를 마중나온 엄마의 작은 그림자에서도 비껴서 왔습니다. 거센 바람이 전선줄을 세차게 흔들어 윙윙 소리가 나던 엄동설한의 어두운 밤에도 어머니는 늘 산자락까지 내려오셔서 내손에서 자전거를 받아쥐고 당신이 집까지 끌고 올라가셨습니다. 매일 저녁이면 신발을 가마목에 보송보송 말려서 이튿날 학교가는 나와 남동생, 일하러 나가시는 아버지의 발을 따뜻하게 덥혀주었던 어머니셨지요. 신발뿐만아니라 내의와 양말도 우리가 깨여나기전에 미리 이불밑에 넣어두어 따뜻하게 만들어주었기에 지금 나는 겨울이면 아침마다 남편의 양말을 따뜻한 이불속에 넣어두고 있습니다.

  가난했던 시절, 그때는 양말을 마음대로 사서 신어보는것이 작은 꿈이였던 적도 있습니다. 구멍난 양말이 생기면 어머니는 저녁밥상을 물리고 따뜻하게 펴놓은 이부자리에서 양말을 깁고 했지요. 그럴 때마다 나는 양말깁는 어머니곁으로 바투 들어앉았지요. 어머니는 한뜸한뜸 촘촘하게 기워나가면서 실을 당길 때면 뾰족한 바늘끝이 안쪽으로 향하게 한후 손을 밖으로 쭈욱 당기고 했습니다. 바늘끝이 겉으로 향하게 당기면 다른 사람이 찔릴수 있으니 자신이 찔릴지언정 남을 아프게 해서는 안된다고 어느 겨울밤에 당신은 가르쳐주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헤여지고 찢어지고 구멍난것을 저렇게 착한 마음으로 가쯘하게 기워서 새롭게 만들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요.

  겨울은 또 소박하게 차려지는 우리집 밥상우에도 있었습니다. 늦가을 어머니가 손수 담은 김치에서 빠알갛게 익어가기도 하고 언감자떡에서 몰몰 피어오르는 김으로 변신하기도 하였지요. 노랗게 볶아진 감자채와 구수한 청국장으로 한겨울은 춥지가 않았습니다. 간혹 맛나는 음식이 생기면 저가락은 전혀 그 음식에 와닿지 않으시던 아버지와 어머니, 나와 남동생이 먹고 나면 나머지를 드시던 부모님이 계셨기에 겨울은 푸근했나봅니다.

  설이 다가오면 우리가족은 물만두를 빚었습니다. 한번 빚으면 500-600개 만들어두어 정월보름까지 넉넉하게 먹을수 있게 준비해두었습니다. 어머니가 만두피를 밀고 아버지와 내가 만두를 빚고 남동생은 어머니가 조금 떼여준 밀가루반죽을 가지고 놀고 했지요. 웃음과 행복을 만두피에 담아서 엄지와 식지로 꼭꼭 눌러 빚으면 어느새 금원보같은 만두들이 올망졸망 배렬되어 있었고 동생은 만두세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만두가 일정하게 모이면 아버지는 마당 장작나무우에 내놓아 얼리기 시작합니다. 15분이 지나면 꼬댕꼬댕 얼기 시작한 만두를 깨끗한 주머니속에 모아두어 처마밑 등대에 올려놓았습니다. 큰 만두주머니를 올려다 볼 때마다 내 마음은 금덩이를 모아둔것 같이 풍요로웠습니다.

  몇년전부터 고향집 걱정을 하고 있는 나에게 한국에 계시는 아버지, 어머니는 살 사람이 있으면 그 집을 팔아라고 합니다. 요즘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일어서는 년대에 누가 불때는 불편한 집에서 살겠냐고 하지만 나는 그 집을 팔수가 없었습니다. 고향집이 있다는게 마음속의 든든한 뒤심이 되고 기댈 가슴이 있는것 같았습니다. 더우기 아버지가 손수 지으신, 우리가족의 냄새가 가득 배인 집을 어떻게 팔수가 있겠습니까? 언제나 하학해서 집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나와 동생은 집내음을 깊게 맡으면서 “아… 울집 냄새가 너무 좋습니다”하고 좋아했던 집이였으니깐요.

  아버지, 어머니를 너무 닮고싶은 나였기때문일가요? 아니면 당신들의 그 향기를 물려받아서일가요? 남동생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놀러 올 때면 들어서기 바쁘게 고향집 냄새가 난다고 좋아합니다. 이렇게 그윽하고 좋은 냄새를 죽을 때까지 그냥 간직하고싶습니다. 고향집을 팔아버리면 추억도 이 냄새도 다 사라질것 같은 허전함과 불안함이 없지 않습니다.

  아직도 춥게 겨울을 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요즘, 그런 사람에게 우리집을 빌려드리고싶습니다. 불때는 집이여서 다소 불편하겠지만 찬 바람과 추위를 막아주고 우리가족이 살던 따스한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주고싶습니다. 내가 고향집이 그리울 때 무랍없이 찾아가도 반갑게 맞아줄수 있는 그런 사람에게 빌려드리고싶습니다.

  낮이면 따스한 해볕 가득 쏟아져 찬란했던 마당, 밤이면 토월산에서 떠오르는 달님의 교교한 달빛이 머물러 우리가족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고향집, 지금쯤은 하얀눈 함뿍 쓰고 겨울나고 있을 고향집은 굴뚝에서 뭉게뭉게 연기 피워올릴 그날을 기다리고 있을겁니다. 고향집에 겨울 수채화가 그려진 년하장 하나 띄워 보냅니다. 내 그리움을 가득 실어서 보냅니다.

  고향집 구석구석에 내려앉은 먼지마저 그리운 이 계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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