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제임스 울시 전 미 중앙정보국(CIA)국장과 각별한 관계를 맺고 CIA 자문의원으로도 활동하는 등 최소 10년 이상 CIA와 깊이 연결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불과 1년여 전 미 해군잡지에 자신을 "진짜 미국인"으로 강조하는 기고까지 한 것으로 밝혀져, 국가적으로 민감한 정보와 과학기술을 다루는 부처의 수장으로 적절한 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19일 본보가 1997년 기업공개(IPO) 당시 유리시스템즈에 대한 미 증권거래소(SEC)의 기업소개서를 입수해 확인한 결과, 울시 전 국장은 CIA 국장에서 물러난 다음해인 96년 이 회사 이사로 영입돼 10만주의 주식을 받았다. 김 후보와 울시 전 국장은 모두 미 해군 출신으로, 김 후보자가 유리시스템즈 설립 전 미 해군연구소에서 일할 때 서로 알게 됐다.
유리시스템즈는 울시 전 국장 영입 전후로 초고속 성장을 한다. 히트 상품인 멀티미디어 통신장비 ATM(일명 유리박스)은 95년 미 군용으로 첫 선을 보였다. 같은 해 유리시스템즈는 AT&T의 통신장비 부문(루슨트의 전신)과 이 장비의 정부 납품 독점계약을 맺었고, 96년에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 중 하나로 선정돼 이듬해 IPO에 성공한다.
SEC 자료에 따르면 울시 전 국장의 이사 임기는 98년까지로 돼 있는데, 공교롭게도 유리시스템즈는 바로 98년 루슨트에 10억달러에 매각됐고, 55% 정도의 지분을 가진 김 후보자는 5억1,000만달러를 손에 넣었다. 이듬해인 99년 CIA는 정보기관에서 쓰일 기술을 개발하는 벤처 발굴을 위해 투자 펀드인 '인큐텔'(In-Q-Tel)을 설립하는데, 김 후보자는 창립 당시부터 이사회에 참여했다.
울시와의 인연은 2006년에도 계속된다. 당시 루슨트는 프랑스 회사인 알카텔과 합병하는데, 루슨트가 그 동안 미국 정보기관과 거래해 온 기밀 계약마저 넘어갈 수 있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벨 연구소 소장이었던 김 후보자는 자회사를 별로 설립, 이 기밀계약을 맡았고, 새 회사의 이사회 멤버로 다시 울시 전 국장과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등을 영입했다.
이와 관련,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이날 "김 후보자가 2009년 CIA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면서 "자문위원들은 대테러ㆍ테러 비확산ㆍ사이버 안보와 교전지역 등 CIA의 주요업무를 브리핑 받고 임무달성을 위해 기꺼이 돕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는 보도자료를 내고 "2007~2011년 CIA의 외부자문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재임한 사실이 있다"면서도 "그런 과거 경력이 장관직 수행의 결격 사유라고 보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미국의 탐사저널리스트 팀 샤록(Tim Shorrock)은 "벨 연구소와 루슨트는 미국 정보기관을 위해 기술을 제공해 온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면서 "김 후보자가 그런 고위직에 내정된 사실이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미 정보기관의 민간 위탁에 대해 장기 취재하고 <스파이를 구합니다: 정보기관 위탁업무의 비밀스런 세계>라는 저서도 낸 전문가다.
● 울시는 누구 제임스 울시(68) 전 CIA 국장은 조지 H. 부시 정부에서 유럽과의 재래식무기 협상 담당 대사와 해군 부장관, 상원 군사위원회 자문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빌 클린턴 정부에서는 1993~95년 CIA 국장을 지냈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과는 사이가 좋지 않아 독대한 적이 거의 없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9ㆍ11 당시에는 이라크 배후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일보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