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 결정’ 제천영육아원 원생들의 방황
충북 제천시 제천영육아원에서 생활하는 A군(16·중2)은 5일 학교에 가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 학교를 빠진 건 이날이 처음이다. 아침을 거르고 혼자 텅 빈 숙소를 나와 시내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PC방에 들러 좋아하는 게임을 했지만 재미가 없었다고 했다. A군은 지난 3일 영육아원 이사회의 시설 폐쇄 결정을 들은 뒤부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기자에게 “평생 함께한 친구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A군은 오후 2시30분쯤 제천시에서 운영하는 보건소로 향했다. 충북도는 정서적으로 불안한 영육아원 아이들을 위해 심리치료를 지원하고 있다. 이날은 A군을 포함해 원생 5명이 상담을 받았다.
게다가 이미 영육아원 건물이 팔렸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불안감은 더 심해졌다. 한 원생은 “원장님이 회의시간에 선생님들에게 ‘건물이 팔렸다’고 말했다더라”며 “정말 우리 집을 잃게 될까봐 다들 걱정이 심하다”고 전했다.
영육아원에서 동고동락해 온 아이들은 폐쇄 결정 이후 ‘집’에 가지 않고 주변을 맴돌았다. 기말고사를 치른 4일에는 낮 12시쯤 하교했지만 원생 50여명 중 바로 돌아온 아이는 없었다. 다들 정처없이 시내로 발길을 옮겼다. 남학생들은 대부분 PC방으로 향했고, 여학생들은 음식점 등을 돌아다녔다. 이들은 “시험이 끝난 홀가분함과 우리 집이 조만간 없어진다는 불안감이 얽혀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오후 2시가 조금 지나 여학생 3명이 영육아원에 돌아왔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이들은 2시40분쯤 한 여교사와 함께 숙소로 들어갔다. 이후 숙소 입구는 철문이 굳게 닫혔다.
영육아원 폐쇄 결정에 다들 불안해하면서도 누구도 이 얘기를 입밖에 꺼내지 않는다고 한다. B군(15)은 “다른 데서 살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은 하기도 싫어서 먼저 말을 꺼내는 아이가 없다”며 “친구들과 뿔뿔이 흩어지게 될까봐 겁이 난다”고 했다.
4일 시내를 맴돌던 아이들이 집에 돌아온 시간은 오후 6시30분쯤이었다. 기운 없이 버스에서 내리던 A군(16)은 “여기 있는 친구들과 16년을 살면서 정도 많이 들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 있던 남학생(16)은 “진짜 아이들을 위한다면 폐쇄하겠다는 얘기를 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며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제천영육아원에서 아동 체벌과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지난 5월 발표했고, 제천시는 최근 시설장 교체 처분을 내렸다. 이에 육아원 이사회는 지난 3일 자진 시설폐쇄 결정을 내렸다.
이용상 기자 제천=김동우 기자 sotong203@kmib.co.kr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