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주민들 명과 암
푸른 바다 위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섬들. 그 섬들을 잇는 다리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해가 바뀔 때마다 남해안의 지도가 달라진다.
전라남도는 1996년부터 주민이 살고 있는 섬 273곳을 교량으로 잇는 연륙·연도교 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치고 있다. 2020년까지 12조1451억원을 들여 103개의 연륙·연도교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연륙·연도교의 교량 길이만 118.9㎞.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전남 유인도서 273곳은 대부분 육지와 연결된다. 낙후된 섬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천혜의 해양관광자원을 개발하자는 취지에서다. 현재까지 7조3578억원을 투입해 44곳 31.6㎞의 다리가 들어섰으며, 25곳에서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관심을 끄는 연도교 사업은 신안의 ‘다이아몬드 제도’다.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위치한 4개(자은·암태·비금·도초도)의 큰 섬과 주변의 섬들을 연결하는 사업으로 교량만 15개가 건설된다. 연도교의 길이만 총 17.7㎞로 1조3272억원이 드는 대규모 사업이다. 이들 섬을 가려면 뱃길로 길게는 2시간 이상이 소요되지만 다리가 완공되면 20분으로 단축된다. 섬들이 거미줄 같은 다리로 육지와 연결되면서 주민들의 삶은 달라졌다.
◆섬마을 주민은 옛말… 들썩이는 땅값
전남 신안군 압해읍에 사는 김모(67)씨의 인생은 연륙교 건설을 기준으로 크게 달라졌다. 수년간 관절염을 앓고 있는 김씨는 매일 오전 9시쯤 공용버스를 타고 목포 시내에 나가 물리치료를 받는다. 병원 인근 시장에 들러 장을 본 뒤 오후 2시쯤 버스를 타고 귀가한다. 섬이었을 때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2008년 6월 연륙교 개통의 덕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연륙·연도교 건설로 육지가 된 주민들이 가장 반기는 것은 하루 24시간 언제든지 집에 오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응급환자가 발생해도, 급한 용무가 있어도 육지로 나가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시절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나 다름없다. 수산업을 하는 어민들은 싱싱한 수산물을 광주 등 대도시에 1∼2시간 내에 수송이 가능한 데다 유통비용까지 줄면서 이전보다 소득이 20∼30%가량 올랐다. 신안군의 경우 연륙교 개통 전 1억원대 소득을 올리는 주민이 20∼30명에서 지난해에는 120명으로 크게 늘었다. 천일염과 마늘, 양파 등 지역 특산물을 현지에서 구입한 관광객들이 이후 단골 손님으로 변하면서 판매량이 30%가량 증가했다.
완도 고금도에서 양식업을 하는 한 주민은“연륙교 개통 전에는 광어와 우럭 등 수산물을 육지까지 수송하는 게 큰일이었다”며 “지금은 도선비를 줄일 수 있어 그만큼 값도 내려가면서 판매량이 늘었다”고 말했다.
자연경관이 수려한 섬들은 연륙교 건설 후 대기업의 연수원 부지와 전원주택 수요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땅값이 크게 올랐다. 신안 압해읍의 경우 3.3㎡당 4만∼5만원이던 땅이 연륙교 건설 후 2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신안 자은도는 다이아몬드 제도 개발의 기대감으로 1만∼2만원짜리 땅이 10배 이상 오르고 있다.
◆몰려드는 관광객… 평온한 삶도 사라져
4차선 도로 인근에 사는 신안군 주민 이모(63)씨는 밤낮없이 드나드는 차량 소음으로 잠을 자다가도 몇 번씩 깨곤 한다. 차량 운전자들이 쓰레기를 아무데나 휙휙 버려 아침이면 휴지 줍는 일이 하루 일과가 돼 버렸다.
연륙·연도교 개통이 가져온 가장 큰 문제가 쓰레기와 주차난이다. 관광객 증가에 대비해 주차장을 확대하고 있지만 방문객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피서철 성수기엔 대형 관광버스가 동시에 수십대씩 몰려와 관광객을 내려놓고 있다. 일부 차량은 농로와 마을 안길 등에 주차를 일삼으면서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신안 증도에서는 대형 관광차량의 주차장 부족으로 날마다 수십대가 도로와 농로 등에 주차하면서 골칫거리가 된 상태다.
관광객들이 버리는 쓰레기도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완도 신지의 경우 섬주민 3000명이 배출하는 쓰레기 양은 하루 2000㎏가량으로 일주일에 2∼3번 수거하면 해결된다. 하지만 피서철에는 하루 나오는 쓰레기량이 2t 정도로 평소보다 10배가량 많아 쓰레기 대란을 겪고 있다.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일부 피서객이 종량제 봉투 구입비를 아끼려고 농경지, 심지어 주택가에 무단 투기해 주민들이 피서철 내내 악취로 고통 받고 있다.
연륙교 건설 전에는 섬을 찾은 관광객이 3∼4일씩 묵으면서 여관과 식당을 이용했지만 다리가 놓인 후에는 해가 지면 설물같이 빠져나가면서 폐업하는 곳까지 생겨나고 있다.
섬 주민이 사용하기에도 부족한 기존 상수원으로 수십배 늘어난 관광객이 함께 쓰면서 피서철에는 생활용수난도 심각하다. 신안 증도는 연륙교 교량에 송수관을 부착해 장흥댐 물을 끌어오고 있지만 다른 지역은 송수관 연결이 어려워 만성 물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완도=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