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루이 14세의 유산인 350년 전통의 프랑스 파리국립오페라발레단. 150여명의 단원과 1500여명의 스태프를 거느린 이 거대한 ‘예술의 성채’가 영화로 기록됐다. 다큐멘터리의 거장 프레드릭 와이즈먼 감독의 ‘라 당스’(22일 개봉)다. 2008년 9개월에 걸친 영화 촬영 당시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이 발레단에서 동양인 최초의 솔리스트로 활약 중이었다. 김 교수와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정영재씨 등 영화를 미리 본 무용수 3인의 감상을 대화로 엮었다.
→김 교수님은 발레단에서의 추억이 새삼 새록새록 떠오르셨겠다.
-김용걸(이하 김):2008년 웬 할아버지(알고 보니 와이즈먼 감독)가 자꾸 카메라를 들고 왔다 갔다 하시는데 일부러 피해 다녔어요.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당장 연습이 더 중요했거든요. 그 덕(?)에 영화에 제가 안 나와서 마음이 아팠죠(웃음). 찍었으면 좋은 추억이 됐을 텐데 바보 같았죠?
→영화에서 발레단의 연습실, 의상 제작실, 식당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본 소감은.
-김지영(이하 영):파리국립오페라발레단은 단원의 90%가 소속 발레학교 출신이다 보니 잘 알려져 있지 않고 폐쇄적이에요. 그러니 저희에겐 굉장히 흥미로운 영화죠. 350년 전통으로 쌓인 저력을 엿봤다고나 할까요.
-김:발레단의 저력이라기보다 ‘프랑스 문화의 저력’을 본 느낌이에요. 의상이면 의상, 소품이면 소품, 모든 스태프들이 각자 자기 일에 치열하게 집중하는 모습, 그 자체가 참 아름다운 영상이더군요.
-정영재(이하 정):저희의 평소 생활과 너무 똑같으니까 지루하기도 했어요(웃음). ‘여기나 저기나 하는 건 똑같구나’ 싶었죠. 이건 직업병인가요? 하하.
-영:영화가 지루했다면 무용수들의 지난한 작업을 영화가 잘 표현했기 때문일 거예요. 무대에 올려지는 작품은 화려하지만 동작 하나하나를 무수히 반복 연습하는 과정은 힘겹고 지루하죠.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무용수의 작업 방식이 어떤지 대리 체험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김:영화에서 보여지지 않았던 무용수들의 일상을 봤다면 또 달랐을 거예요. 그들의 평소 마음가짐과 공연 전후의 태도 등은 정말 본받을 점이 많아요. 작품과 음악에 대해 늘 진지하게 탐구하고 의논하죠. 어렸을 때부터 발레학교에서 익혀온 습관인데, 우리는 시스템 때문인지 아직 그런 진지함이 부족해 보여요.
→브리짓 르페브르 단장은 “무용수는 반은 수녀, 반은 복서”라고 하던데 공감하시나.
-김:공감하는 정도가 아니라 제대로 핵심을 짚은 거죠. 그만큼 인내하고 강해져야 한다는 소리죠. 위대한 예술가들은 말 한마디를 해도 심금을 울리는구나 싶었어요.
-정:저는 그분을 보니 최태지 국립발레단 단장님이 겹치더라고요(웃음). 경영·행정 등에서는 카리스마를 발휘하고 단원들 하나하나 다 간파하고 있는 섬세함도 보여서요.
→감독은 소멸을 전제로 하는 무용이 ‘죽음과의 싸움’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는데.
-영:미술, 음악은 작품과 녹음으로 남지만 무용은 동영상을 아무리 잘 찍어도 관객의 시선에 따라 달라지는 그 찰나, 그 느낌을 절대 담아낼 수 없어요. 그 순간이 끝나면 죽은 거죠.
-김:무용수의 생은 참으로 짧아요. 10대 전후에 시작해 길게 쳐봐야 마흔이면 끝나죠. 다른 장르는 나이가 들면서 만개하는데 무용은 하루살이처럼 불탔다가 사라지는 예술이니, 동감이네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서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