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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일 - 국가2급연주원의 색소폰사랑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0.03.23일 10:55

색소폰으로 엮은 예술인생

연길시문화관 국가2급연주원 김명일의 색소폰사랑


(흑룡강신문=하얼빈) "음악이 없는 생활은 살고싶지 않다"는 색소폰 연주가 겸 지도교수인 김명일선생은 현재 연길시문화관 음악부 주임, 연길시음악가협회 리사, 중국음악가협회 회원, 동북3성색소폰협회 리사, 중국색소폰협회 회원, 심양군구군악학교 연변지역학생모집판공실 주임 겸 색소폰지도교수, 중로년색소폰협회 회장 등 직을 맡아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동시에 후대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있다.

색소폰에 빠진지 어언 28년, 연변의 첫 색소폰연주원으로 이름을 날린 국가2급연주원 김명일은 일찍 초청을 받아 중남해공연에 참가하여 당과 국가 지도자들에게 색소폰독주 “바다의 꿈”을 연주해 높은 평가를 받았는가 하면 전 성 문화예술간부실무콩클에서 색소폰독주 1등상, 동북3성색소폰콩클에서 은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영예를 받았으며 또 선후로 144명 학생들을 양성하여 심양군악학교에만 18명, 중앙음악학원에 1명, 길림사범학원에 1명, 북경중관촌군악학교에 4명, 대련예술학원에 2명을 수송하였고 장춘군구군악단, 장춘16군군악단, 할빈무장경찰군악단에도 여러명 제자들을 수송하였다.

1957년, 한 로동자의 가정에서 태여난 김명일은 어린시절부터 예술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있었다. 소학교때 학교 선전대에서 무용을 한 그가 중학교에 입학하자 학교선전대에서는 무용조에 들어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학교악대의 연주를 보면서 악기를 배우고싶다는 마음이 생긴 그는 선생님한테 악기를 배우고싶다고 당돌히 말했다. 선생님께서 “무슨 악기를 아는가”고 묻자 그는 주저심이 들었지만 “피리를 불줄 안다”고 대답했다. 결국 선생님은 그더러 피리를 불어보라고 하였고 그는 피리로 간단한 곡을 불었다. 이렇게 그는 학교의 악대에 들어가 클라리네트를 배우게 되였다.

처음에는 웃학년 학생들이 부는것이 부러워서 배웠지만 날이 갈수록 클라리네트에 푹 빠진 김명일은 학교에서 배우는걸로는 만족을 느낄수 없었다. 그는 어머니를 졸라 선후로 연변편극단(지금의 연변청년예술단)의 리춘산선생, 연변가무단 리창운선생한테서 개별지도를 받았다. 당시 아버지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여서 아버지가 집에 계시면 감히 련습도 못한 그는 슬그머니 김치움에 들어가 불고 또 불었다.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고중졸업을 앞두고 그는 전 주 중학생문예콩클에서 클라리네트독주를 하였는데 왕청현문공단 지도부의 눈에 들었다.

1977년 7월에 고중을 졸업한 김명일은 왕청현문공단의 연주원으로 입단했다. 반년도 안되여 능란한 클라리네트연주를 선보이며 왕청현문공단에서 악대의 주축으로 맹활약을 펼친 그는 많은 공연에서 클라리네트연주로 관람객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1980년, 전 주 전업단체문예회보공연에서 높은 연주기량을 보여준 김명일은 설립을 앞둔 연길시조선족예술단의 초빙을 받았다. 하지만 왕청현문공단에서는 인재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먼저 연길담배공장에 전근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1982년도에야 그는 겨우 연길시조선족예술단의 악사로 전근되였다.

연길시조선족예술단에서는 민족음악을 위주로 하였기에 민족전통악기를 다룰줄 알아야 되였다. 하여 김명일은 예술학원의 고 김석산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저피리를 배웠다. 악기에 타고난 재질이 있었던 그는 얼마 안되여 구수한 흙냄새가 나는 구성진 저피리독주를 할수 있게 되였고 1983년 9월에는 《예술세계》잡지에 《저피리연주에 대한 단상》이라는 론문을 발표하였다. 그해말 그는 “모택동탄신90돐맞이음악회”에서 저피리독주 《강원도아리랑》을 연주해 많은 절찬을 받았다.

김명일이 색소폰을 접촉하게 된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어느날 고 김석산선생이 낯선 악기를 들고와서 김명일에게 보여주었다. 무슨 악기인가고 묻는 김명일에게 “이것이 색소폰이라는 서양악기인데 한번 들어볼래?”하면서 한곡을 연주해주었다. 색소폰연주를 들으면서 뭔가 가슴에 “찡 ”하고 와닿으면서 저도모르게 처음보는 그 악기에 빠져들어갔다. 1983년에 그는 자비로 중국인민해방군 총정치부군악단에서 3개월간 연수를 하면서 색소폰을 배웠다. 교재가 없었던 그는 다른 사람의 색소폰교재를 빌려 전부 베껴내는 열정을 다하여 여러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당시 저피리와 색소폰에 푹 빠져있었던 김명일은 저피리의 리드를 뽑고 거기에 색소폰의 뻬크를 맞추어서 부는 등 새로운 발상을 내여 저피리와 색소폰이 교묘하게 어우러지는 연주를 선보였고 예술단의 실무보고에서 저피리독주와 색소폰독주를 다 연주하여 언제나 1등을 하며 인정받았다.

1985년에 김명일은 연변가무단에 전근하면서 전국소수민족예술단체회보공연을 비롯한 전국적인 공연에 많이 참가하여 색소폰연주를 선보였다. 1988년에 그는 할빈시창녕예술단에 입단해 연주원으로 활약을 펼쳤다. 그 시절 그는 초청을 받아 중남해공연에 참가하여 당과 국가 지도자들에게 색소폰독주 “바다의 꿈”을 연주해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이는 그가 지금까지 참가한 공연중 최고의 무대였다.

1992년에 고향으로 돌아온 김명일은 연길시문화관에서 음악부 주임을 담임하면서 색소폰연주지도를 맡고 인재발굴과 양성에 정력을 기울였다.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재간을 음악을 사랑하는 후대들에게 남김없이 전수해주고싶었다. 하여 자신이 보아온 교재들을 종합하여 학생들이 접수하기 쉽게 취미를 느낄수 있게 재편집하여 교본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매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노래를 묻고는 그 노래를 교본과 결부하여 배워주어 애들이 싫증을 느끼지 않고 취미를 붙일수 있게 하였다. 그는 색소폰을 배우러 오는 학생들에게 “무엇때문에 색소폰을 배우려 하는가”를 꼭 묻고는 그들에게 “색소폰을 배우면 우선 좋은점은 열손가락을 다 놀리기에 대뇌발육에 아주 유리할뿐만아니라 정신을 집중하는 능력을 키울수 있으며 앞으로의 진로에도 큰 도움이 될것”이라는 등 우점들을 낱낱이 설명해주어 애들의 적극성을 불러일으켜주었다.

지도교원으로서 김명일은 제자들의 심령에 음악의 꿈을 심어주기에 노력하였다. 또한 제자들에게 존재하는 애로점들을 잘 감안하고 그에 상응한 조치를 취했다. 화룡에 집이 있는 김국성학생은 음악에 남다른 재질이 있어 리해력과 접수력이 빨랐다. 하여 김명일은 그 애한테 남다른 기대를 걸었다. 그런데 그 학생이 갑자기 배우러 오지 않았다. “아까운 음악신동을 이렇게 포기할수 없다”고 생각한 김명일은 수소문하여 그 학생의 집주소를 알아내고는 가정방문을 하였다. 부모가 리혼을 하면서 할머니슬하에서 살게 된 김국성학생이 학비때문에 그토록 애착하던 색소폰을 포기했다는 사정을 들은 김명일은 “앞으로 학비는 고려하지 말고 그냥 배우러 오너라. 꼭 견지하여야 한다”고 친절하게 말했다. 김명일은 그후 3년간 김국성학생에게 무료로 색소폰을 배워주었을뿐만아니라 생활비까지도 대주었다. 김명일의 아낌없는 지도하에 김국성학생의 색소폰연주는 눈에 뜨이는 진보를 가져왔고 그는 장춘16군군악단에 특장생으로 입단하게 되였다.

김명일의 학생들은 전국의 크고작은 색소폰연주콩클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따라서 그 자신 또한 우수지도상을 수상하였다. 2004년 5월, 제2기 전국소년아동예술풍채표현에서 우수교원상을 수상하였으며 2005년 8월의 제2회 중국청소년예술영재추천평의 색소폰전업 소년 B조 전국총결승에서는 방민학생이 특등상을 수상하였고 김명일은 우수지도상을 수상했으며 2005년 10월에는 사회예술등급시험중 교수성과가 돌출하여 길림예술학원 사회예술등급시험위원회로부터 우수지도교원으로 평의받았다. 2008년 7월에 성문화청에서 주최한 제16회 길림성예술계렬콩클에서 그가 지도한 색소폰4중주 “재즈(ZooeSnieRiot)”가 소년조 1등상을 수상하였고 2008년 8월 1일에는 제2회전국군악예술축제에서 그의 제자 리전강이 청년조 1등상을, 수파가 소년조 1등상을 수상하였고 김명일 자신도 우수지도교원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누렸다.

김명일은 후대양성에서 이렇듯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을뿐만아니라 자신의 연주기량제고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식사시거나 운전시에도 빠짐없이 색소폰연주를 듣고 또 하루라도 색소폰연주를 련습하지 않으면 허전하고 갑갑해난다는 그는 스스로를 “색소폰미치광이”라고 자칭하군 한다. 한국에 갔을 때에는 옷은 한벌도 사입지 않고 2만8천원을 주고 색소폰을 구입하고 나머지 돈 3천원으로는 전부 색소폰에 관한 서적을 구입하였다. 서적이 하도 무거워서 세관을 통과하지 못해 동료들이 나누어 들어서야 겨우 통과하였고 색소폰때문에 세금을 천여원이나 내기도 하였지만 전혀 아까운줄 몰랐다. 그만큼 색소폰을 그의 생활의 전부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1996년 9월, 전 주 문화간부실무시합에서 색소폰독주로 1등상을 수상하였고 2008년 4월에는 길림성문화청에서 주최한 성문화간부실무시합에서 색소폰독주 “통일련가”를 연주해 1등상을 수상하였다.

이외에도 김명일은 다방면의 인재가 필요한 시문화관의 실정에 비추어 작곡과 노래를 배웠다. 그가 2002년에 작곡한 노래 《우는 타향살이》(권중철 작사)는 중앙국제방송국에서 주최한 가요창작콩클에서 2등상을 수상하였고 연변TV방송채널에서 매주일가로 방송되였으며 2004년에 작곡한 노래 《마음》(김대현 작사)은 연변음악가협회에서 주최한 작사작곡콩클에서 우수창작상을 수상하였고 김상운과 량춘화의 2인창으로 연변TV방송채널에서 매주일가로 방송되였다. 이외에도 그가 창작한 《타향에서 맞은 안해의 생일》 등 7수의 가요가 매주일가로 방송되였다. 2009년 7월, 김명일은 “길림은행컵” 렴정가요 및 창작콩클에서 연길시문화관의 전직가수 강미자와 함께 노래 《중화의 정》을 불러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가요계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김명일은 연길시문화관공연이 있을 때마다 색소폰연주는 물론 노래도 불러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만능재주군으로 불리웠다.

김명일한테서 색소폰연주를 배우는 제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그의 명성도 널리 알려졌다. 하루는 한 로인이 색소폰을 배우고싶다면서 찾아왔는데 그 로인을 제자로 받아들이면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로인들이 차츰 많아졌다. 그는 연길시문화관에 제기하여 중로년색소폰협회를 설립하고 회장직을 맡았다. 그는 로인들이 색소폰을 불 때 힘드는 점을 감안하여 리드의 참대를 얇게 밀어서 불기 쉽게 만들었다. 현재 중로년색소폰협회에 가입하여 색소폰을 배우는 로인은 14명인데 73세의 고령인 로인도 있다.

김명일은 최근에 자신이 색스폰으로 연주한 《모르고》, 《가져가》, 《축복하노라》, 《타향의 봄》 등 18곡을 담은 첫 음반 《추억의 노래》를 출시하였다.

많은 색소폰인재를 양성해낸 김명일은 색소폰을 배워주면서 안타까왔던 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회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색소폰을 배우는 학생들이 대폭 늘어났다. 따라서 배워주는 지도교원들도 많아졌는데 그중에는 수준미달인 교원이 많다. 이런 교원들한테서 배우면 주법이 틀리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등급시험에 통과할수 없을뿐더러 습관이 되면 고치기도 상당히 어렵다. 애들은 애들대로 힘들고 돈은 돈대로 랑비되기에 지도교원을 찾음에 신중하라고 권고하고싶다.”

한번은 김명일이 색소폰연주콩클에 평심으로 참가하였는데 연주도중에 한 녀학생의 입에서 피가 났다. 주법이 틀리여 아래입술을 깨문데서 생긴 현상이였다. 리유를 알지 못한 그 애의 아버지는 지도교원을 찾아서 따졌지만 결국 주법을 고칠수 없었던 그 녀학생은 색소폰을 포기해야만 되였다.

색소폰 연주와 전수를 인생의 최고의 락으로 여기는 김명일은 “2~3년안에 큰 극장에서 《김명일과 그의 제자들》이라는 제목으로 대형색소폰음악회를 조직하려고 계획하고있다”며 앞으로의 타산을 밝혔다. “김명일과 그의 제자”들의 성공적인 색소폰음악회가 하루빨리 열리기를 미리 축원한다.

/연변라지오TV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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