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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신”의 이름을 찾은 사람

[조글로미디어] | 발행시간: 2014.06.11일 16:15

구룡침을 한묶음 들고 있는 장헌규




도통 믿기 어려운 그림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녀인의 왼쪽 옆구리를 찔러 들어간 은빛의 침은 그의 오른쪽 옆구리로 비죽이 나오고 있었다. 침의 길이가 무려 60㎝나 된다는 얘기가 실감이 가는 대목이었다.

솔직히 방금전까지 허풍을 치는 의사가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고 말하니 장헌규는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는 듯 무덤덤한 표정이다.

“저는 아직도 감히 이 침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못 찌르면 장기를 다칠 수 있으니까요.” 침구를 배우고 있던 김씨 성의 수강자가 침묵하는 스승이 못마땅한 듯 이렇게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정골(整骨) 센터에는 한순간 한약재의 은은한 냄새와 더불어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연길 시가지 남쪽에 자리 잡은 장헌규의 이 센터에는 명문대의 의학교수와 현지 병원의 의사도 자청해서 그의 독특한 침구(鍼灸)를 배우고 있었다.

장헌규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이 침은 일명 “구룡침(九龍針)”으로 특허를 취득, 현재로서는 중국 대륙에서 실제 사용되고 있는 제일 긴 침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검처럼 기다란 이런 침은 “망침(芒針)”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서 옛날부터 전승되고 있다. 망침은 특제한 긴 침으로 통상 가늘고 탄성이 있는 불수강 철사로 만든다. 그 모양새가 흡사 보리 수염 같다고 해서 망침이라고 불린다. 망침은 중국 고대 아홉 침의 하나인 “장침(長針)”이 발전한 것으로, 그 길이가 5치, 7치, 10치, 15치 등으로 부동하다. 임상에는 일반적으로 5~8치의 침이 많이 사용되며 8치 이상의 침은 화석처럼 아주 희소하다.

장헌규는 그제날 부친이 마을에서 이웃의 병을 보면서 이따금 놓던 장침이 바로 8치(24㎝)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침은 망침이 아니라 조선반도의 옛 조상으로부터 장장 몇십대를 이어 받은 전통의술이었다.

용의 뼈를 잠근 사람


어느 날 왕실의 누군가 야외에서 수렵을 하다가 낙마를 했다. 측근이 부축을 하려고 하자 왕족은 단박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질렀다. 허리뼈가 삐끗 어긋났던 것이다. 다들 어쩔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누군가 마침 부근 마을에 신의(神醫)로 불리는 장씨 성의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이윽고 장씨 의사가 부름을 받고 천방지축 달려왔다. 그는 왕족의 허리에 기다란 침 몇 대를 꽂아 넣더니 지압으로 척추를 이곳저곳 눌렀다. 통증은 금세 바람처럼 사라졌고 왕족은 다시 말 잔등에 올라탔다. 왕족은 대단히 기뻐하며 의사에게 이 신기한 의술의 이름을 물었다. 이때 장씨 의사는 그동안 갈고 닦은 기지를 빛낸다. 왕족의 용골(龍骨)을 이어 맞췄다는 의미로 용(龍)자를 넣어 “쇄룡골(鎖龍骨)”이라고 멋진 이름을 지어 올렸던 것이다. 그때부터 “쇄룡골”이라는 이 치료법의 이름은 동네방네 널리 전해졌다.


이 일화는 조선 세조(世祖, 1417~1468) 때 생겼다고 장씨 가문에 전한다. 훗날 장헌규는 이 “쇄룡골”의 이름 의미를 보다 잘 전달하기 위해 “쇄룡정골(鎖龍正骨)”이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출원했다. 중국말 “정골(正骨)”은 바로 우리말 한자의 “정골(整骨)”이라는 뜻이다.

각설하고, “쇄룡골” 치료법에 나오는 “장침”이 도대체 얼마나 길었는지는 현재로선 잘 알수 없다. 다만 장헌규의 조부 때에 이르러 후손에게 물려준 제일 긴 장침이 8치였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침은 조선민족 의술의 정수이지만, 희소한 의술인 장침을 놓는 사람은 아주 적다. 인체의 수백개의 혈위는 그렇다 치고 어려운 해부학을 손금 보듯 습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침을 놓을 때는 손가락의 힘과 손목의 힘을 이용하여 장침을 누르고 비비며 살갗에 번개같이 뚫어 넣어야 하는데 웬만한 의사는 아예 엄두조차 내기 힘들다.

실제로 장헌규는 가문에서 전하는 의술을 배우다가 도중에 포기한적 있다고 한다. 1983년, 장헌규는 군부대에서 퇴역하고 고향마을에 돌아와 호미를 잡고 있었다. 의술은 땅을 떠나 천하를 주름잡고 싶은 그에게 지팡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부친의 말씀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겁니다. 쇄룡골이라는 게 뭔지 딱딱하고 재미가 없었어요.”

장헌규는 의술이고 뭐고 팽개치고 무작정 산해관 너머 소림사로 떠났다. 워낙 군부대에서 특수요원으로 있었던지라 무술에 남다른 흥미가 있었던 것. 1984년, 장헌규는 소림사(少林寺)에서 스승을 모시고 무술을 배운다. 스승은 또 그에게 정골(整骨)과 침술도 가르쳤다. 정골과 침술은 무술 수련자에게 필수품처럼 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장헌규는 또 무당산(武當山)에 올라가 도사를 모시고 주역을 읽으며 태극권을 시작한다.

10년 후 귀가한 장헌규는 언제인가 눈과 마음이 열린 자신을 문득 발견한다.

“1년이 12달이듯 흉추가 12개 마디이며 1년이 24계절로 나뉘듯 늑골이 24개이고 하늘에 태양이 떠있듯 저골(骶骨)이 있으며 달이 떠있듯 꼬리뼈(尾骨)가 있다…”

난해한 범문(梵文)처럼 들리던 “쇄룡골”의 구구절절이 말 그대로 뼈 속 깊이에 파고들었다. 부친이 환자의 몸에 찌르는 침의 “경로”가 인제 투시라도 하듯 눈앞에 사진처럼 환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지금은 공해가 많고 또 약을 많이 쓰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침의 효과가 잘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장헌규는 어느 정도 침술에 숙달하자 침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나름대로 침을 놓는 방법을 모색했다.

미구에 몸을 6개의 각도, 3개의 방향으로 찌르는 “구룡침”이 그렇게 나왔고 침 3,5대를 일시에 머리에 연속 찌르는 “포마침(跑馬針)”, 젖샘 치료 등을 일원화한 “삼합일(三合一)” 치료법도 그렇게 나왔다. 장헌규는 또 과민성 습진을 치료하기 위해 습침(濕針) 치료법을 만들기도 했다.

장헌규의 독특한 침구술로 중국침구지압협회의 이사로 당선되었으며 중화의학전승의 선두주자 인물로 되었다. 얼마 전에는 또 스리랑카 국제의과대학 민족전통의학 박사 칭호를 받았으며 북경중의중약전승학원 객좌교수로 초빙되었다.


고향의 산과 물의 향기를 찾는 사람

센터의 벽 아래에 두꺼비 한 쌍이 웅크리고 있었다. 주먹처럼 툭 튀어나온 눈알이며 꾹 다문 길쭉한 입, 그리고 땅을 짚고선 짤막한 다리… 누가 선물한 나무뿌리 조각인지 진짜 대단한 작품이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고 있었다.

장헌규는 조각물의 작가가 화제에 오르자 입가에 웃음을 흘렸다. “뭘요, 제가 언제인가 강가에서 주은 뿌리를 직접 조각한 겁니다.”

그러고 보니 센터에는 적지 않은 뿌리조각이 있었다. 조각은 여기저기 자리를 차지하고 의료용품 가운데서 각별한 운치를 자아내고 있었다.

장헌규는 바쁜 일상에서 평정한 마음을 얻기 위해 자주 시골에 내려간다고 한다. 골짜기를 파고 내리는 시냇물은 그동안 쌓였던 번뇌를 깨끗이 씻어주었고, 울울창창한 수풀은 신선한 공기를 꽉 막힌 폐부에 시원하게 불어넣었다.

연길의 부르하통기슭에 누워있던 나무뿌리가 그렇게 조각품으로 나타났고 왕청의 가야하기슭에 뒹굴고 있던 돌덩이가 그렇게 고운 무늬의 수석으로 나타났다.

인간의 핏줄처럼 나무의 결이 거미줄처럼 엉켰고 인간의 골격처럼 줄기가 똬리처럼 돌돌 감겨있었다. 장헌규는 혈에 침을 꽂아 경락을 뚫듯 조각칼로 나무를 이리저리 잘라 뿌리의 원형을 드러냈던 것이다. 수석에 피어난 무늬도 그의 손길을 거쳐 초가, 농부의 모습으로 새롭게 나타나고 있었다.

고향의 산과 물의 향기는 뿌리조각과 수석에 한껏 피어오르고 있었다.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하늘과 땅, 강, 짐승, 사람… 모두가 나무뿌리에 녹아있는 것 같아요.”

그럴지라도 보는 눈에 따라 보이는 실상도 다를 수밖에 없다. 탁자 부근에 놓은 나무뿌리 조각이 바로 그러했다. 조각물은 분명 하나이지만 왼쪽에서 보면 두루미요, 오른쪽에서 보면 부엉이였고 뒤에서 보면 돌조각을 입에 문 고대 원시인이었다. 한두 발자국 물러서 보면 조각물은 물을 헤가르는 한척의 용선(龍船)을 방불케 했다.

원리를 깨치면 하나를 안후 열을 안다고 했다. 정골센터의 벽에 걸려있는 서예작품도 단연 일품, 이 역시 장헌규의 솜씨라고 한다. 뿌리조각처럼 스승을 모시지 않고 홀로 닦은 기예였다.

“어느 수련이든지 끝이 없어요. ‘집’에 몸을 가두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되네요.”

장헌규는 공기를 마시듯 자연과 자유롭게 교감을 갖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의 “도호(道號)”인 장룡비(張龍飛)라는 이름처럼 하늘을 날면서 새롭게 거듭나고 싶다는 것. 그는 현재의 자기는 아직 탈피를 채 하지 못했다고 곱씹어 말한다.

이때 따라 그가 입구에 놓은 나무화석이 새삼스러웠다. 수천년 동안 땅에 고이 묻혀있던 이 화석은 바로 석탄으로 굳어지기 직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장헌규는 그가 얼마 전부터 비로소 시작한 큰 작업이 있다고 말했다. “요즘은 조의(朝醫) 쪽으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조의는 “조선족의학”이라는 말로, “조선족의사”로도 통한다. 조의는 2,3년전 비로소 국가의 인정을 받은 의학류형의 이름이다. 중국에는 장족의학, 몽골의학, 묘족의학 등 여러 소수민족 의학류파가 있다. 장헌규는 현재 연변조의분회 회장 직무를 맡고 있다.

장헌규는 그가 늘 중의(中醫)라고 불리지만 정확한 신분은 바로 “조의”라고 특별히 힘을 주어 말한다.


조의(朝醫)의 모습을 그린 사람

“제가 중국의 스님과 도인에게 의술을 많이 배운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맥을 이은 것은 분명히 우리가문에서 전하는 전통적인 조선민족 의술입니다.”

조부는 조선의 평양에서 원근에 의술로 풍수로 이름난 명의였다. 어느 날 그는 야밤에 솔가 도주하여 연변의 안도에 이주했다. 조부가 연변으로 이주한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조부는 한일합병 후 독립운동에 나선 의병 부상자들을 의술로 치료했고, 일본인들이 함부로 조선의 땅에 길을 내고 터널을 뚫을 때 조선인의 기맥이 끊긴다고 반기를 들고 나섰다. 결국 그 때문에 일본 군경의 감시를 받았고 나중에 일가족을 거느리고 안도 지역에 은거했던 것이다. 그러나 연변이 일본의 치하에 들어간 후 일본군경에게 잡혀가 그길로 실종되었다. 그는 집을 나서기 전에 자식들에게 쇄룡골 의술을 꼭 전승할 것을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그런 가문에서 나서 자란 장헌규는 나이를 먹을수록 조선민족 전통의학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조선족들은 아직도 조의라는 이름에 대한 관심이 너무 적어요.” 장헌규의 말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은 아예 “조의”라는 이름조차 모르는 현 주소이다. 그런데 온라인에는 벌써 누군가 의도적으로 조의라는 이름의 닷컴의 등록을 완료한 상태라고 한다.

“이러다간 우리 이름을 우리가 쓰지 못하게 되는 현상이 빚어질 수 있어요.”

장헌규는 지난해 11월 서둘러 “연변조의(ybchaoyi.com)”라는 닷컴을 등록했다. 비록 조의라는 이름의 닷컴을 전부 등록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조선족의 고향인 “연변” 성씨의 닷컴을 만들게 되었다는데 작은 안위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장헌규가 만든 닷컴의 메인 페이지에는 태양과 그 속에 있는 조의라는 이름이 나란히 꽃구름처럼 떠있다. 태양신은 조선민족의 주되는 숭배의 신이다. 그러고 보면 장헌규에게 조의는 다름 아닌 태양신의 이름 그 자체로 되고 있었던 것이다.*


김호림/중국민족잡지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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