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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떠도는 항일혼을 만나다

[온바오] | 발행시간: 2015.08.19일 03:54

단재 신채호

시간은 무한한 공간을 삼키고 공간은 무한한 시간을 삼킨다. 오늘의 세계를 펼쳐볼 수도 있고 내가 머무는 이곳에서 시간의 역사를 더듬어 볼 수도 있다.

중국에서 생활하면서부터 시간 여행을 하게 됐다. 지역별 발전 수준이 10, 20년의 차이가 나고 곳곳에서 역사 유물을 접하게 되니 과거를 상상하며 시간여행을 떠날 기회가 많았다.

대륙의 나라, 한창 발전 중인 중국에서 생활하다보니 오히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는 시간 여행에 눈을 떠게 됐다.

지난 15일이 광복 70주년이었다. 서울에 있었다면 별 생각 없이 지나쳤을 광복절이지만 항일운동의 현장인 중국에 있다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래서 세월에 묻힌 내 주변의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다시 꺼내보았다.

내가 주로 생활하고 있는 베이징은 신채호, 이회영 등 독립운동가들이 생활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한 곳이다. 또한 이육사 시인이 베이징 둥청구에 있던 당시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했으며 미주에서 대조선독립군단을 결성해 활동했던 박용만이 베이징 충원먼와이대가 근처에서 의열단원 이해명에게 피살되기도 했다.

* 베이징 독립운동 유적 보기

1919년 신채호는 현재의 상하이 황푸구 수이온 플라자가 있는 곳에서 '신대한'이라는 주간지의 주필로 활동을 하다가 1920년 4월 베이징으로 이주했다. 베이징에 망명해 있던 간호사 박자혜 여사를 만나서 결혼을 했으며 한문잡지 '천고'를 발행하는 한편, '중화일보' 등에 논설을 쓰며 활발한 언론활동을 벌였다.

한문잡지를 발행하고 중국 신문에 논설을 쓸 정도이니 그의 한문 실력은 아마도 대단했던 것 같다. 신채호 같은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조선은 나라는 빼앗꼈지만 지식인의 정신까지 잃어버리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베이징의 보타암, 석등암 등 절에서 살기도 했는데, 가난한 탓에 숙식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 같다. 신채호는 베이징의 사찰에 기거하며 조선사연구에 심취했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대전 중구 어남동에서 출생했으며 충북 청원군에 그의 사당과 묘가 있다.

* 신채호 유적 보기

2000년에 처음 연변에 갔을 때, 용정에 있는 용정대성중학교 기념관을 찾은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20세기초 신식학문을 공부했던 조선의 지식청년들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현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대단히 현대화 되어 있었으며 빛바랜 사진으로 만나는 지식청년들의 눈빛은 유난히 맑고 빛나고 있었다.

용정의 일송정에 올라서 너른 평야를 가로질러 굽이굽이 흘러가는 해란강을 내려다보니 선구자 노랫말이 가슴으로 와닿았다. 이곳 용정의 명동마을이 바로 윤동주 시인이 태어난 생가가 있다.

연변에 가면 국사책에 보았던 간도가 있다. 간도는 용정 두만강 가운데 있는 섬이다. 그래서 사이 '간(間)'자를 써 간도라 불렀는데, 이 간도가 조선 사람의 만주 농업 진출 첫 관문이었다. 이곳 간도를 시작으로 현재의 동북3성이 당시 만주땅을 농사 짓게 된 것이다.

이같이 만주땅에서 농사를 짓는 조선인을 간민이라고 불렀으며 세월이 흐른 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면서 간민은 조선족이 됐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역사책에서 익히 봤던 독립운동가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으면 현재 조선족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 그들의 후손들은 현재 조선족으로 살고 있다. 용정이 고향인 윤동주 시인도 따지고 보면 간민, 조선족인 셈이다.

* 연변 독립운동 유적 보기

내 고향 경남 함양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더듬어 보니, 구한말 덕유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경남, 전북, 충남 등지를 오가며 이 일대의 산악지대를 무대로 일제의 군과 경찰의 상대로 항전을 벌인 문태서(문태수, 함양 서상면)라는 의병장이 있었다.

그리고 의병장 노응규(함양 안의면)는 경남 안의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국이 점령한 진주성을 빼앗고 이후 영남과 호남 일대에서 항일운동을 펼쳤다.

내가 나서 자란 곳이지만 이제야 고향 사람 중에 이같은 민족의 영웅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한독립운동 유적지를 살펴보면 일제가 조선의 국권을 빼앗기 전까지는 주로 국내를 무대로 항일운동이 전개되지만 나라를 빼앗긴 후, 중국, 러시아, 유럽, 미주로 활동과 생활 무대가 확대된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유적을 살펴보면 상하이를 시작으로 일제에 쫓겨 중국 남방을 한바퀴 돌만큼 넓게 옮겨 다녔다.

중국의 독립운동 유적을 살펴보면 현재 한국교민이 분포된 지역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동남아까지 그 활동 무대가 펼쳐져 있으며 유럽, 미주에서도 독립운동을 펼친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 임시정부 유적 보기

미국 캘리포니아 LA에는 안창호 인터체인지가 있고 안창호 우체국까지 있다. 미국 진출의 역사도 일제시대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이 지역의 역사유적을 살펴보면 미국 최대 코리아타운의 시초를 짐작할 수 있다.

카자흐스탄에도 홍범도 거리, 계봉우 거리 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거리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한인들이 모여서 코리안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중국 최초의 코리아타운인 선양 서탑에는 고려상무회관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광복 후, 한인들의 한반도 귀환업무를 담당했다. 대륙 진출의 병참기지로 삼았던 선양이 성도인 랴오닝성, 북쪽으로 지린성, 헤이룽장성 등 옛 만주지역 곳곳에는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캘리포니아 독립운동 유적 보기

* 아시아 독립운동 유적 보기

* 유럽 독립운동 유적 보기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아이러니 하게도 나라를 잃자, 조선은 세계로 벋어가기 시작했다. 반도의 산맥을 무대로 항일운동을 벌이다가 대륙의 산맥을 무대로 항일무장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나라를 뺏긴 식민의 생활 무대는 반도에서 세계로 확대됐던 것이다.

반도인의 본격적 대륙 진출의 역사는 결국, 일제시대부터인 셈이다. 현재 중국 주요 도시에 형성된 코리안 커뮤니티도 그 뿌리를 캐보면 독립운동 유적이 발견된다.

독립운동의 유적과 현재 코리아타운를 비교하면 시중심과 변두리의 차이가 난다. 독립운동가들의 거주지, 대한민국임시정부 위치 등을 살펴보면 현지 사회의 중심에 파고 든 반면, 현재 코리아타운은 중국도, 미국도 시 외곽의 주변머리에 위치해 있다.

독립운동의 활동무대는 곧 글로벌이었으며 현재 한국 대기업 중에도 독립운동 활동 범위만큼 글로벌 사업을 벌이는 기업은 삼성과 현대자동차 정도이다.


지난 15일 광복 70주년의 주된 화두는 통일이었다. 주목해야 할 역사적 사실은 우리 민족은 반목과 갈등으로 자기 생명을 단축시키는 우매한 민족임을 말해주고 있다. 적지않은 독립운동가가 독립운동가에 의해서 살해됐다.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명장 김좌진 장군도 동포 청년에게 암살됐으며 대조선독립군단을 결성했던 박용만 역시 베이징에서 의열단원 이해명에게 살해됐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해방 후에도, 이념과 체제 대립으로 둘로 나누어져 전쟁까지 하면서 분단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감상적 통일을 논하는 자들은 많으나 분단체제의 종식을 실현할 안목과 실력을 갖춘 위정자는 없다.

나라를 잃은 식민지 청년들의 항일과 독립운동은 삶이었지 이벤트가 아니었다. 분단의 역사를 마감하고 통일시대를 여는 것 역시 민족의 생활이자 우리의 삶이지 이벤트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독립을 위해 재산을 바치고 생명까지 바쳤던 것처럼 통일을 위해서 재산과 생명을 내놓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영혼이 없는 '립서비스'로 통일의 새 역사는 결코 만들어질 리가 없다. 통일을 말하지만 정작 통일은 북한 체제의 붕괴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로 다가 올 것이다.

객관적 사실은 우리 민족은 여전히 우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부족한 민족이다.

한 세기 전, 구한말 일제시대를 살다간 사람은 많지만 우리가 기억하고 다시 찾는 인물은 항일의 최전선에 섰던 인물들이다. 모든 사회는 당대의 시대사적 과제를 안고 있다. 시대사적 과제에 가슴이 식은 민족과 나라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세계 주요 나라에서 생활하는 코리안들은 '독립운동'이라고 검색하면 현지 코리안 커뮤니티의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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