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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책을 사서 베개로 쓰고 있는 한국 독자들은…"

[기타] | 발행시간: 2012.04.21일 03:04
'스티브 잡스의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 인터뷰

필터 없는 남자, 스티브

난 절대 아이폰 못 만들지만 굼뜬 수퍼마켓 점원한테 그처럼 저주도 못 퍼부어

그가 이 책을 남긴 이유

아빠가 왜 그렇게 바빴는지 대체 어떤 일을 했었는지… 아이들이 알아주길 바랐다

이 사람은 하버드대와 옥스퍼드대를 졸업하고 타임지 편집장과 CNN 대표이사를 지냈다. 30년 가까이 저널리스트로 일한 그는 작년에 펴낸 책 한 권으로 일약 세계적 유명인사가 됐다. 스티브 잡스 전기였다. 월터 아이작슨(60)은 이미 벤저민 프랭클린과 아인슈타인, 헨리 키신저의 전기를 썼으나, 작년 이후로는 오직 '스티브 잡스의 전기작가'로 불려왔다.

어떤 드라이버로도 열어볼 수 없는 아이폰처럼 사생활을 밀폐시켰던 스티브 잡스는 아이작슨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공개했다. 잡스와 2년에 걸쳐 50차례가량 인터뷰를 하고, 그의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와 빌 게이츠를 포함한 비즈니스의 적(敵)들까지 100명 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쓴 아이작슨의 책 '스티브 잡스'는 작년 10월 출판된 뒤 전 세계 독자들의 엄청난 반향을 얻었다. 한국에서만 55만부가 팔려나갔다. "누구에게나 잔인하게 솔직했던(brutally honest) 스티브는 자신의 전기에도 잔인하게 솔직했다"는 아이작슨을 지난 10일 그가 대표로 있는 미국 아스펜 연구소(The Aspen Institute) 사무실에서 만났다. 미국의 정책과 교육을 연구하는 이 연구소는 워싱턴 DC에 있었다. 감색 정장과 푸른 셔츠, 끈 매는 구두를 신은 아이작슨은 키가 170㎝로 서양인치고는 작은 편이었다. 그는 "스티브 잡스 전기 덕분에 세계 언론들과 50번 넘게 인터뷰를 했다"며 웃었다.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잡스의 요청을 처음 받았을 때를 기억합니까.

"스티브가 전화를 건 게 2004년 초여름이었어요. 나는 그전에 타임지와 CNN에서 일하면서 그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2003년 아스펜 연구소를 맡으면서 뜸하게 됐죠. 스티브는 아스펜 연구소 얘기를 먼저 꺼냈습니다. 내가 '콜로라도에서 열리는 연구소 여름학교에서 특강을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선뜻 그러겠다고 하더니 '강연이 아니라 산책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 스티브와 수많은 '산책'을 하게 된 것이죠."

―산책할 때 그의 차림새는 어땠습니까.

"검정색 터틀넥 스웨터와 청바지, 그리고 운동화였습니다."

―잡스에게 한 마지막 질문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가 죽기 얼마 전 캘리포니아 그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계단을 오를 힘도 없어 1층에 침대를 놓고 누워 있었죠.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려고 하니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마지막 질문은 그 슬픔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신처럼 철저히 사생활을 감추던 사람이 지난 2년간 이 책을 위해 모든 것을 공개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답했습니다. '내 아이들이 나에 대해 알았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어요. 아버지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알아줬으면 합니다.'"

―충분한 대답은 아니었던 것 같군요.

"스티브는 스스로를 역사에 남을 인물(historic character)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이 하나의 객관적인(independent) 기록으로 남길 원했습니다. 생전에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했던 그는 이 책에 관한 한 어떤 통제도 하지 않았습니다."―통제를 한 것이 있긴 하죠.

"표지 말인가요? 그는 애초 표지 디자인을 보고 '멋대가리 없고 멍청한(ugly and stupid)' 표지라고 했어요. 책 제목도 내가 '아이 스티브(iSteve)'를 제안했다가 면박만 받았습니다."

잡스는 책 표지에 실린 사진을 직접 골랐다. 이 사진은 2006년 포천지(誌)에 실렸던 것이다. 이 사진을 찍은 작가 앨버트 왓슨은 "그 사진을 보면 강렬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누구라도 이 사진을 보면 '정말 똑똑한 사람이구나' 하고 느끼길 바랐다"고 말했었다.

―그가 그토록 솔직했던 것이 곧 세상을 떠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늘 자신이 암을 이겨내리라고 생각했거든요. 한번은 대화 도중 나중에 전기를 한 권 더 펴내야겠다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그가 솔직했던 것은 역시 이 책이 사료(史料)처럼 쓰이길 원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자신이 대표로 있는 아스펜 연구소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월터 아이작슨. 그는 "당신의 전기를 쓴다면 누구에게 맡기겠느냐" 는 질문에 "나는 남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일 뿐 누구를 시켜 내 이야기를 쓸 만큼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했다. / 워싱턴DC=김태원 프리랜서

"잡스는 자신이 역사에 남을 걸 알아… 그래서 잔인할만큼 솔직했다"

잡스의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

美 명예의 전당 오를 인물들_ 토머스 에디슨, 헨리 포드

월트 디즈니 다음은 잡스 세상 바꾼 위대한 혁신가들

그 창의력의 원천은 일탈_ 마약ㆍ로큰롤ㆍ저항 문화…

70년대에 성장기 보낸 잡스 자신을 '부적응자'라 여겨

癌 이길거라 믿었는데…_ 나와 태연히 속편까지 논의

그를 좋아하냐고? 모르겠다, 그러나 존경한다

―당신은 잡스를 “토머스 에디슨, 헨리 포드, 월트 디즈니와 나란히 미국 역사의 전당에 설 인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모두 새로운 것들을 발명했습니다. 에디슨은 축음기를 발명해 음악산업을 변화시켰고, 스티브는 아이팟과 아이튠스를 만들어 음악산업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들은 늘 새로운 것을 상상하는 위대한 혁신가들이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위대한 혁신가로 만들었습니까.

“모두 상상력이 풍부했습니다. 스티브가 말한 것처럼 다른 것을 생각했고(think different)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들 고도의 집중력을 보여준 사람들이었습니다. 산만하지 않고 무엇이든지 단순화해서 집중했던 사람들입니다.”

―잡스는 매우 가혹하고 야멸찬 사람이었다고 했는데, 그가 좀 더 친절한 사람이었어도 애플은 위대한 회사가 됐을까요.

“나 역시 책에서 그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는 꼭 그렇게 사납고 야멸차고 종잡을 수 없었어야(tough, rough and petulant) 했나?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었겠지요. 그러나 점잖고 친절한 리더가 늘 부하들의 지지를 받는 것만도 아닙니다. 스티브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자기만의 방식을 갖고 있었고 부하들이 믿고 따르게끔 만드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물론 나는 이 책에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라’고 권한 게 아닙니다.”

―잡스 외의 당신이 전기를 쓴 프랭클린, 아인슈타인, 키신저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그들 모두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는 미국의 외교정책과 베트남 전쟁에 관심을 갖다가 키신저 전기를 쓰게 됐습니다. 키신저 덕분에 프랭클린에게도 관심을 갖게 됐죠. 프랭클린 역시 외교관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나의 관심은 아인슈타인에게 옮겨갔는데, 과학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창의적인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군요.

“나는 단지 똑똑한(smart) 게 아니라 창의적이고 독창적인(creative and ingenious) 사람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아이작슨은 작년 10월 29일자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빌 게이츠는 대단히 똑똑한(super―smart) 사람이지만, 스티브 잡스는 대단히 독창적인(super―ingenious) 사람이다”라고 썼다.

―잡스 전기를 위해 만난 수많은 사람 중 인터뷰가 까다로운 사람도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스티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했고, 다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평생 경쟁자였던 빌 게이츠조차 선뜻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스티브는 매력적이고 흥미로운데다가 의지가 강한(fascinating, compelling and strong―willed) 사람이었으니까요.”

―잡스가 당신에게도 욕설(four―letter words)를 했습니까.

“물론입니다. 자주 한 편이지요. ‘아이스티브’ 같은 책 제목을 들었을 때도 그랬고….”

아이작슨은 잡스의 다혈질 성격을 수시로 목격했다. 이를테면 ‘홀 푸즈(Whole Foods·유기농산물을 주로 파는 수퍼마켓)’ 음료 코너에서 스무디를 주문했는데, 직원의 동작이 굼떠 시간이 오래 걸리자 바로 온갖 모욕적인 말로 그 직원을 비난하는 식이었다. 아이작슨은 “사람들은 보통 그럴 때 속에서 ‘짜증내지 말자’라는 필터가 작동하는데, 스티브에겐 그런 필터가 아예 없었다”며 “나는 절대로 아이폰을 발명하지도 못하겠지만, 수퍼마켓에서 스무디를 만드는 직원에게 화를 내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비범한 사람이 젊은 나이에 죽는 걸 보는 느낌은 어땠습니까.

“그런 천재가 암과 마지막 사투를 벌이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고 여러 가지 면에서 존경했기 때문이지요.”
아내 로렌 파월과 함께한 생전의 스티브 잡스. 그는 아내를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꼽았었다. / 민음사 제공

―인생무상(人生無常) 같은 걸 느꼈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스티브 역시 ‘우리 모두 여기에 잠깐 머물다 가는 것’이라고 늘 말했습니다. 50년, 어쩌면 100년을 산다 해도 무척 짧은 시간입니다. 우리는 선대의 사람들이 이룩해놓은 것을 거저 얻어서 쓰다가 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후대를 위해 뭔가 이뤄놓아야 합니다.”

―당신은 스티브 잡스를 좋아했습니까.

“‘좋아한다(like)’는 무척 흥미로운 단어입니다. 감정적으로 복잡한 단어죠. 나는 그를 존경하고 존중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다정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편하고 친절하고 단순한(easy, kind and simple) 사람은 아니었죠. 그러나 분명히 내가 만나본 사람 중 가장 흥미로운(fun to be around)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그에게 압도당했다(mesmerized)고 할 수 있죠.”

―한국과 중국, 일본에도 독창적인 사람은 있습니다. 미국의 어떤 힘과 문화가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을 만들었다고 봅니까.

“그가 자라던 1970년대 미국엔 반항문화(rebellious culture)가 있었습니다. 반문화(counter―culture)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마약과 로큰롤, 시위문화가 있었지요. 그는 종종 자신을 부적응자(misfit)로 생각했고 히피로 여겼습니다. 권위에 도전하고 반문화와 저항을 꿈꾸던 시대를 거치면서 스티브는 자연스레 다른 것을 생각하게 됐을 겁니다.”

―마약 같은 일탈행위로부터도 배울 점이 있다는 뜻인가요.

“때로는 삶에서 저항적인 자세가 유용합니다. 스티브가 젊은 시절 마약을 하거나 구루(guru)를 찾아 인도에 간 것 같은 경험이 그의 상상력을 키웠습니다. 마약을 권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스티브는 분명히 자신의 그런 경험들이 훗날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조지 W 부시, 힐러리 클린턴,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중요한 자리에 임명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민주당과 공화당 양쪽으로부터 중용됐습니까.

“나는 정파적 인간(partisan person)이 아닙니다. 게다가 내가 그들에게서 요청받은 자리들은 외교정책이라든가 교육문제, 또는 허리케인 피해복구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위치였습니다. 이런 것은 공화당 또는 민주당의 문제가 아니라 초당적인 이슈들입니다.”

―아인슈타인 전기 맨 앞장에 “이 책을 아버지에게 바친다”고 썼지요.

“아버지(어윈 아이작슨)는 올해 86세로 생존해 계십니다. 전기 엔지니어였던 아버지는 매우 점잖고 도덕적인 분이었습니다. 과학과 예술, 특히 음악을 사랑하셨지요. 아버지가 내게 아인슈타인의 존재를 알려주셨습니다. 아버지는 누구나 과학과 엔지니어링을 알아야 한다고 믿었고, 내게 과학에 감사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나는 함께 단파 라디오를 만들고 사진을 인화했습니다. 아인슈타인 전기는 아버지로부터 영감을 얻어서 쓴 책입니다.”

―당신은 타임지 편집장을 했으면서도 경력을 말할 때 타임지는 ‘내가 일했던 곳’이라고만 한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타임지에서 20년간 일했고 편집장으로는 잠깐 일했을 뿐입니다. 그 표현은 겸손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타임지가 나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나는 타임지가 정말로 위대한 출판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잡스가 당신을 전기 작가로 택했을 때, 당신이 “사람들의 입을 열게 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했다던데요.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내겐 쉬웠어요. 나는 역사가의 일도 좋아했습니다. 자료와 보고서들을 역사적 맥락에 맞게 엮는 일이죠. 스티브는 저널리스트이면서 역사가인 사람을 원했습니다.”

―초년 기자 때 ‘남의 이야기를 듣는 법’에 대해 깨달은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첫 직장이었던 ‘뉴올리언스 타임스―피커윤(New Orleans Times―Picayune)’에서 인턴기자로 일할 때였습니다. 첫 취재는 어린 소녀가 살해당한 사건이었는데, 그 부모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그 집 문을 두드리기가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회사로 돌아왔더니 선배가 ‘다시 가서 이야기도 듣고 아이 사진도 얻어오라’고 했습니다. 다시 그 집으로 가서 ‘괜찮다면 아이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나는, 내가 들을 준비가 돼 있다면 사람들은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들을 준비가 돼 있어도 말 안 하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은 만난 적이 없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에 늘 놀라곤 합니다. 비결 같은 건 없습니다. 때론 조용히 앉아서 참을성을 갖고 기다립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인종 갈등이 심했던 미국 남부에서 자란 경험이 당신의 세계관에 영향을 미쳤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렸을 때 나는 인종문제에 매우 민감했습니다. 사람마다 각각 다른 인종, 종교, 배경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됐고 독창성으로 가득 찬 뉴올리언스의 재즈와 크레올 문화, 음식문화가 온갖 사람들의 혼합에서 비롯됐음을 알게 됐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것이 바로 벤저민 프랭클린이 말하고자 했던 것이며, 미국에서 산다는 것의 요체입니다. 우리는 가끔 그 사실을 망각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미국이란 태피스트리(tapestry·여러 색깔의 실로 짠 장식용 천)는 미국 대륙에 모인 사람들의 아름다운 결합입니다. 그것이 미국을 강하고 생기 넘치고 창조적인 사회로 만들었습니다. 타인의 종교와 피부색을 존중하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들이 왕왕 있지만, 그것은 미국의 가치에 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뉴올리언스에서 자라면서 배운 것입니다. 미국의 힘은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사실 말이지요.”

그가 2009년 펴낸 책 ‘아메리칸 스케치스’에는 자전적 내용이 포함돼 있다. 아이작슨은 여섯 살 때 흑인 가정부, 그 아들과 함께 공원에 갔다가 놀이기구서 ‘백인 전용’이라는 글귀를 보고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고 했다. 그들은 놀이기구를 타지 않았다. 아이작슨은 “그때 ‘왜 그래야 하는가’라고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인종과 종교문제로 갈등하고 있잖습니까.

“세계는 그 문제로 5000년 이상 투쟁해 왔습니다. 내가 런던에서 ‘선데이 타임스’ 기자로 일할 때 북아일랜드 갈등을 취재했습니다. 그때 나는 신교도 청년과 구교도 청년을 구분할 수 없었어요. 그들은 생긴 것도 말투도 똑같았습니다. 그들끼리는 말하지 않아도 누가 신교이고 누가 구교인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늘 싸웠지요. 지금도 여전히 민족 간, 인종 간, 부족 간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프랭클린은 모든 인종과 종교의 사람들이 함께 사는 법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것이 미국이란 나라를 정의하는 것이며, 아스펜 연구소에서 주장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인종과 종교가 다른 것은 축하하고 기념할 일이지, 우리를 갈라놓는 이유가 돼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종교를 갖고 있습니까.

“나는 종교에 대해서 말을 아끼는 편이지만, 종교는 갖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를 포함해 당신이 전기를 쓴 사람들 모두 종교를 명백히 주장하지 않았다는 공통점도 있군요.

“프랭클린, 아인슈타인, 잡스 모두 영적(靈的)인 것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특정 종교의 도그마를 믿지는 않았지요. 한 종교만이 진실이고 나머지는 허구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종교는 깨달음으로 가는 문이며, 그 깨달음은 인생의 가장 큰 미스터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전히 취재와 자료 조사를 직접 한다면서요.

“도대체 다른 사람이 취재해 온 것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직접 인터뷰하고 자료를 찾고 아카이브에 가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지요? 조수를 두고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가 있다고 하는데, 남을 시켜서 취재를 하면 뭔가 직접 발견하는 재미는 없는 거잖아요.”

―한국에서 스티브 잡스 전기가 55만부나 팔렸습니다. 그런데 책을 다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베개로 쓰고 있다’는 농담도 합니다. 그런 독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이 책은 흥미로운 인물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소설에 가깝습니다. 그의 인생이 워낙 독특했고 드라마틱했기 때문이죠. 스티브 잡스는 참을성이 부족하고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점점 더 현명해진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미(美)와 예술에 대한 사랑을 테크놀로지에 대한 사랑과 결합하려고 애쓴 사람, 무엇인가 완벽하게 창조하려 했던 사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스티브의 인생에서 배워야 할 교훈입니다. 그는 우리 시대의 가장 흥미로운 비즈니스 리더였습니다. 우리 시대에서 어떻게 발명이 완성될 수 있는지 직접 보여준 사람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회로판과 아름다운 디자인을 결합했고 뛰어난 마케팅을 시도했으며,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어 그들이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영감을 주었습니다.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위대한 회사를 만드는 것, 그 회사가 창의력과 기술을 결합한 위대한 제품을 끊임없이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스티브는 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미치게 만들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이끌고 간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독자들은 ‘이것은 내가 닮아야 할 점이군’, ‘이런 점은 스티브처럼 하지 말아야겠군’하며 스스로 교훈을 이끌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스티브가 이 책을 내게 쓰도록 한 이유이며, 결국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이유이기도 합니다.”

조선경제 한현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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