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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손매돌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04.26일 08:35
/글 안수복(화룡)

딸이 음식가게를 오픈하자 시골에 있는 친정엄마는 당신이 한평생 쓰던 손매돌을 몸소 가져왔다. 손님들이 즐기는 초두부와 콩장을 해보라면서. 엄마의 손맛일가? 손매돌의 매력일가?

스위치만 누르면 밤새 퍼질대로 퍼진 누런 두부콩이 잠간새에 보드랍게 갈려 나오는 콩가는 기계를 두고 하필이면 한참이나 시대에 떨어진 손매돌로 괜히 고생을 사서 한다고 생각하였는데 그것이 아니였다. 30평방도 되나마나한 간이음식점이 고객이 날마다 초만원을 이루고 장사진을 이루었다. 세월은 류수같다더니 어머님이 돌아 가신지도 어느덧 10년, 가게를 경영한지도 20년 가까워오니 나이 먹은 탓인지 아니면 늦게 헴이 들어서인지 언제부터 문득문득 어머니가 그리워지고 손매돌이 소중해졌다.

난 마치 친정엄마를 만나기라도 하듯 우리집 명줄이고 보배인, 력사의 뒤안길로 언녕 멀리 사라진 손매돌을 가게에서 제일 잘 눈에 미치는 환한 곳에 자리를 찾아 정중히 모셨다. 그리고 엄마의 손 때 묻은 닳을대로 닳아서 얇아진 손매돌의 반질반질한 나무쪽자루를 매만지며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순간 하얀 광목저고리에 물 난 검정치마를 받쳐 입은 어머니가 눈앞에 서계셨다.

7남 일녀의 막내며느리로 들어온 어머니는 팔촌까지 한 구들에서 먹고 자는 세월을 만나 하루도 편안한 날을 보내지 못하고 시집살이가 심했다고 한다. 우로는 시부모님들과 일곱이나 되는 시형과 시누이, 동서와 매형이 있는데다가 아버지의 사촌형제들까지도 남자형제만 해도 일곱이라 하루라도 손 매돌을 돌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게다가 어른, 아이들까지 한집안식구가 3,40명도 넘다보니 아버지의 말을 빌면 콩 한말(15근)을 볶아도 한줌씩 얻어먹을수 있었다고 한다. 거기에 또한 손님이 빌새 없는데다가 윗사람이건 아랫사람이건 술을 좋아하다보니 반찬없는 세월에 매일과 같이 이어대는 두부앗기가 진정 어머니의 고역이였다.

난 어릴 때 늘 손매돌을 돌리는 엄마를 도와 손매돌을 돌렸는데 키가 작아 무릎을 꺾고 앉아 돌리다나니 무릎이 닳고 팔이 시큰해나 자주자주 두 손을 바꾸어가며 돌렸으나 엄마는 씽씽 돌아가는 손매돌임에도 놋숟가락에 콩 절반 물 절반을 담아 작은 손거울처럼 동그란 매돌의 입구에 퍼넣었는데 콩알 한알 흘리지 않고 정확하게 척척 퍼 넣어 어린나이에도 엄마는 이 세상 무슨 일이나 못하는것 없는 신비한 신선이나 요술쟁이 같아보였다. 두부앗기가 아니여도 생활의 필수품인 손매돌은 엄마에게서 청춘과 젊음, 싱싱함과 풋풋함을 갉아먹으며 엄마의 분결같이 통통하고 야드르르한 손바닥을 앙망으로 만들어놓았다.

퍼지운 쌀이나 콩은 그래도 잘 갈기지만 퍼지우지 않은 굵은 강냉이쌀은 매돌이 드르릉 드르릉 울리면서 디스코 춤을 춰대는데 팔목과 손까지 진동을 받아 공중전을 하면서 손바닥에 물집이 생겼던것이였다.

엄마는 잘게 마사져 나온 강냉이쌀을 밥 짓는데 쓰고 굵은 쌀은 붉은팥이나 열콩을 넣고 화로불에 생산대 건조실 재더미에서 주어온 콕스를 놓고 맛나는 강냉이죽을 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엄마가 만들어준 밥감주가 제일 맛있었던것 같다. 엄마는 보리싹을 맞춤히 키워 햇볕에 말린 다음 손매돌로 보드랍게 갈아서 잘 보관해두었다가 여름에 밥이 쉬면 보리싹을 떠 넣고 밥감주를 만들었다.

딸은 엄마의 팔자를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되도록이면 듣기만 해도 신물나는 엄마의 팔자를 면하자 던 나였는데 엄마처럼 딱 7남일녀의 막내며느리-일곱째며느리로 들어갈 줄이야! 그것도 여섯 시형님들과 한분밖에 없는 매형이 술고래인것도 모자라 쩍하면 큰집에 모여 개추렴, 순대놀이, 천렵 지어 돼지를 통째로 잡는것도 모자라 매일과 같이 물만두를 빚고 두부앗기를 해야 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두부는 조선족음식에서 각광을 받는 손꼽히는 음식인데다가 술안주로도 최고음식이였으니깐.

일남4녀의 셋째딸로 부모님과 두 언니의 사랑에 받들려 곱게 자란 나는 팔자에도 없는 일곱째며느리배역을 하는것만 해도 힘에 부치는데 결혼하여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고스란히 식당을 경영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것도 매일 날이 밝기전부터 일찍 일어나 듣기만 해도 귀찮은 번다하기 그지없는 초두부와 콩장을 만들리라고는 더구나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때로는 손매돌로 두부앗기가 귀찮아 스위치만 누르면 우유처럼 새뽀얀 콩물이 쏟아져 나오는 기계를 사놓을가 하다가도 도리머리를 젓는다. 옛날 우리어머니들의 고유한 맛을 살릴수 없을가봐.

엄마의 손맛이라고 기계로 콩물을 받아 첨가제를 넣고 한 두부는 눈속임으로 두부발과 모양은 일품이지만 그 맛은 건강도 해치려니와 엉망이다. 비록 힘들지만 손매돌로 두부콩을 갈아 앗은 두부는 최고맛이다. 난 지금도 옛날 엄마처럼 날이 휘붐이 밝아오면 남편과 함께 쇠가마우에 솥뚜껑을 엎어놓고 손매돌을 놓은 다음 두부콩을 갈고 재래식방법대로 두부를 앗고 있다. 초두부는 보드랍게, 콩장은 절반은 보드랍게 절반은 세게 가는데 사전에 살짝 콩을 삶는다. 다음 초두부는 큰 대구쇠가마에 쏟아넣고 한번 끓인다. 다음 새하얀 헝겊주머니에 넣어 맑은 물이 나올때까지 두세번 비틀어 짠 다음 다시 쇠가마에 넣고 한식경 끓이다가 다 끓은 비지를 옛날 나무함지대신 백광대야나 납대야에 담아놓고 서너번 나누어 정성껏 식용서슬을 친다. 두부가 잘된 표준은 많이는 서슬을 치는 기량에 달린다.

콩장은 초두부와는 생판 달라 살짝 데친 배추나 시라지를 느긋한 불에 콩기름을 조금 넣고 달달 볶다가 갈려나온 살짝 삶은 콩을 넣고 맞춤히 물을 붓은 다음 한식경 푹 끓이면 엿처럼 달여지는데 그 맛이나 영양가가 일품이다.

기나긴 19년 세월, 식당을 경영하면서 매일매일 번다하고 조금만 소홀하여도 콩 비지 탄 남새가 나는 까다로운 초두부, 콩장을 할 때마다 난 사실 엄마를 떠올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눈길도 미치지 않은 주방 한쪽 구석에 고스란히 놓인 엄마의 손매돌, 이전에는 정녕 몰랐었다. 그것이 한낱 엄마가 걸어온 인생이고 생계의 원천이고 생활의 필수품이고 가족의 식탁이고 우리민족 녀인들의 운명이고 삶이였다는것을.

철모르는 그 때는 엄마가 원해서 하는 줄로, 손님접대로만 알았었다. 손매돌에 엄마의 여린 손바닥이 썩살이 박히고 물집이 생겨도 반창고나 붙이고 이남박에 쌀을 일다가다 한식경씩 팔을 주물러 대는 엄마를 멀거니 바라볼 뿐이였지 쌀독이 굽나 소리가 날세라 손바닥으로 박박 긁어 진지를 손님상에 올리던 엄마의 마음을 알려고도, 생각해 보지조차 않았었다.

그뿐이면 몰라도 무우밥이나 푸대죽(쌀을 조금 넣고 푸성귀 따위를 많이 넣어 끓인 죽)은 먹지 않겠다고 투정 부리면서 평소에도 상 밑에 놓고 찬밥이 좋다면서 때시걱이면 거의 묵은 밥으로 끼니를 에우던 엄마를 아주 당연한것으로 받아들였다.

난 가끔씩 아니, 매일매일 손매돌로 두부콩을 갈아 손님들이 즐기는 두부를 앗고 있다. 소문을 듣고 린근은 물론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도 자가용을 리용하거나 놀러도 올겸 시골행차를 한다면서 두부맛을 보고는 “엄마의 손맛”이라면서 엄지손가락을 내민다.

난 오늘에야 내가 걸어온 걸음걸음마다 엄마의 정성과 사랑, 엄마의 손길과 손맛이 지켜주었다는것을 느끼게 되었다.

전에는 내가 그냥 내가 운이 좋아서, 능력이 있어서 일이 잘 풀리고 장사가 잘 되고 손님이 문전성세를 이룬다고만 착각하고 있었다. 난 요즈음 집안에서 특이한 광채를 내뿜는 어머니의 손매돌 옆에 시골에서 얻어온 박 바가지에 샛노란 두부콩을 한 웅 큼 담아두면서 다지고 다졌다. 아무리 비싼 값이라도 고물장사군한테 넘겨주지 않는다고.

비록 숨결도 없는, 엄마의 청춘과 한생을 악착같이 갉아먹은 닳을 대로 닳은 한낱 손매돌이지만 거기에는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우리어머니들이 걸어온 인생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을뿐만 아니라 손매돌처럼 온 가족이 둥글게 모여 혼자보다는 두 사람이 돌리면 더 잘 돌아가듯이, 서로 손잡고 화목하게 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우리민족 어머니들의 고매한 넋이 깃들어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엄마가 더 보고파진다. 아마, 너도나도 출국 붐에 휘말려들어 흥성하던 가게가 썰렁해진것도 있겠지만 많이는 엄마의 손맛이라며 찾아들던, 두부를 좋아하는 조선족들의 그림자를 찾아보기 힘든 탓인것 같다.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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