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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을 그리며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6.02.26일 16:49
2015년 12월 24일(음력 11월 14일)은 어머니 출생 107돐이 되는 날이다. 나는 어머니를 그리며 남편과 함께 어머니 명복을 빌었다.

어쩐지 이날따라 유달리도 착잡한 심정이였다. 80여년간 부동한 사회, 부동한 시기마다 어려운 역경속을 헤쳐나아가며 삶을 살아온 어머님, 그의 강직하고 외유내강의 성격으로 공부뒤바라지를 잘 한덕에 우리는 공부할수 있게 되였고 문화가 있는 공민이 되였다. 초불처럼 그 한몸을 고스란히 불태우고 가정과 남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 오늘과 같은 행복한 나날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며 애절한 심정을 표한다.



어머니는 1909년 한 빈곤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나 7세때에 아버지를 여의고 뒤이어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마저 여의고 외롭게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러다 19세 나이에 한 중매군의 소개로 결핵병이 있는줄도 모르는 채 한 남성과 결혼했다.

시어머니는 아들의 병이 악화될가봐 신혼부부를 동침하지 못하게 하였다. 결혼해서 1년도 안돼 남편이 사망하자 어머니는 20세 꽃나이에 생과부가 되였다. 시어머니는 결혼때에 중매군에게 준 경제대가로 홀로 있는 어머니를 머슴처럼 꼬박 3년이나 부려먹었다. 3년동안 갖은 천대를 받으면서 베를 짜서 시어머니의 상수까지 전부 마련해놓은후에야 자유의 몸이 되였다.

그런데 어머니 삶은 왜 그렇게도 기구한지 타인의 소개로 만난 두번째 남편은 11세나 이상이고 전처 자식이 둘이며 농사일은 커녕 오뉴월에도 버선도 벗지 못하는 중한 위병환자였다. 그가 바로 나의 아버지였다.

결혼해서 사흘되는 밤, 남편의 앓음소리에 어머니는 큰 심리충격을 받았다 한다.

어머니는 봉건례의습관에 깊이 물든 시부모를 모시고 전처의 아들딸을 키우고 5년 동안 시동생 부부와 함께 살았다. 게다가 다섯살 이상인 시동서의 천대와 기시를 받으면서 온갖 시집살이를 다했다.

시동서는 시형이 아파서 일하지 못한다고 얄미워하며 시형을 존경하기는커녕 저녁이면 시형의 머리맡에 요강을 놓고 소변까지 봤다. 어머니께서 첫 아이를 낳고 산나물을 캐서 팔아 아이에게 꽃신 한컬레를 사온적이 있다 한다. 그런데 시동서가 심술부리면서 그 꽃신을 모기불에 태워버리기도 했다 한다. 멸시속에서도 어머니는 말없이 시부모를 잘 모시고 병든 남편을 잘 돌보았는지라 어머니의 처사에 크게 감동된 나의 할아버지는 며느리를 불러놓고 “자네 고생을 내가 다 아네. 내 며느리라면 좀더 참아주게”라고 해 조금은 위안이 됐다 한다. 시아버님의 믿음에 큰힘이 되였다 한다.

어머니는 가정형편때문에 공부는 못했지만 명석하고 사리가 밝았다. “마음을 바로 먹어야 옷깃이 바로 선다”, “솥이 검다고 밥도 검겠는가”.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하면서 마씨 가문의 어려운 환경에서 자기의 의지를 굳히고 책임을 다했다.

농사일은 더 말할것 없이 잘했고 밤잠을 설치며 베를 짜서는 온 가족의 옷을 해결했다. 무더운 여름철 이른새벽부터 일어나 밤낮으로 삼을 삼아 실을 뽑고 베를 짰다. 이 일은 실로 간고한 로동이고 지루한 일이였다.

어머니는 무더운 여름철에 베틀에 앉아 베를 짰는데 하도 고달파 서글픈 눈물도 많이 흘렸다. 땀에, 눈물에 온 얼굴이 범벅이 되였다. 코에 생긴 땀종이 감염되면서 코가 빨갛게 부어오르더니 코가 헐어서 떨어질 정도였다. 린근에 인물 고운 마씨 가문의 각시로 불리웠던 어머니의 코가 땀종으로 하여 보기 흉한 빨간코로 변했다. 그리고 땀띠로 인해 엉덩이피부도 염증이 생겼다. 그 염증으로 하여 상처흔적이 움푹 패였다.

어머니는 마씨 가문의 며느리로, 자식들의 어머니로, 한 남편의 안해로 직책을 다했으며 전처의 자식들을 친자식보다 더 살뜰히 보살펴 주었다. 진심으로 키워준 보람으로 딸은 “우리 어머니 같은 계모는 세상에 둘도 없습니다”고 감격해 한다. 자기의 친자식들에게는 낡은 옷을 기워입혀도 전처의 두 자식들한테는 산나물을 캐 팔아서라도 계절따라 새옷을 해 입히군 했다.

전처 딸이 시집가던 날, 어머니는 손수 짠 베천을 마당에서 집문턱까지 펴놓았는데 마을 사람들은 “경숙이의 엄마를 어찌 계모라 하겠소!” 라고 못내 감탄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무던한 인품이 널리 알려지게 되기까지 어머니의 고생이 얼마나 많았으랴. 아버지는 감사할 대신 오히려 어머니를 못믿어 감시까지 했다. 자기보다 열한살이나 아래고 또 이쁘고 젊은 안해인지라 배반할가 걱정했던것이다. 멀리 떠나지 못하게 한것은 물론 동네집에도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게 구속했다.

나의 할아버지는 마씨 가문의 둘째이지만 무슨 영문인지 족보도 할아버지가 소지하고있었다. 그러다나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제사요 생일이요 하며 모든 군일을 우리 집에서 치렀다. 어머니는 몸이 아파도 누워있을 틈도 없었다. 몸과 마음이 고달퍼서 금방 태여난 나의 친오빠를 업고 강변에 나가 치마를 거꾸로 쓰고 깊은 물에 몸 던질 생각도 한적이 있었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한적도 있었다. 그러다 선량한 부모님께 화를 끼치고 죄없이 태여난 생명을 앗아간다는것이 용서되지 않아 되돌아섰다고 했다.

속담에 쥐구멍에도 해빛이 드는 날이 있다더니 어머니의 눈앞에 광명의 새날이 올 때도 있었다.

“8. 15” 해방과 더불어 우리 집도 토지를 분배 받고 어머니도 무거운 봉건쇠사슬에서 벗어나게 되였다. 중병으로 앓는 아버지때문에 다른 집에 비해 어렵게 생활하지만 정치적인 해방을 받고나니 상쾌한 기분이였다. 1951년 7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서 년로하신 할머니와 로소 여섯식솔의 생활을 맡아야 했다.

이른봄 논갈이로부터 시작해 가을탈곡까지 어머니는 하루도 쉴새없이 별을 이고 밭에 나가서는 별을 지고 집에 돌아왔다. 논갈이 때 소가 없어 어머니는 한삽, 두삽 며칠이고 아픈 허리를 펼새도 없이 논밭을 번졌으며 때로는 젖먹는 내 동생을 어린 나에게 업혀놓고 일하러 나갔다.

막내 동생을 낳아서 이레만에 조이밭가을을 하러 허리를 넘는 강물을 건너가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과로를 걱정하여 사망하기전에 나를 불러놓고 소학교는 졸업했으니 중학교는 가지 말고 어머니를 도와 집에서 농사를 지으라고 했다. 가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몰래 중학교진학시험을 쳤는데 45명 졸업생중 5명 합격자의 한명으로 되였다.

어느날, 어머니가 시에서 소집한 회의에 갔다오더니 글을 모르니 아무도 할수 없더라며 나더러 계속 중학교에 다니라 했다. 나는 학교를 다니는 한편 농망기에는 청가를 맡고 어머니 농사일을 돕군 했다. 연변사범학교를 다녔던 오빠도 종종 친구들을 데리고와서는 집일을 도왔다.

어머니께서 악착같이 살아온 보람으로 오빠는 1950년도 연변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연변에서 근무하다 길림조선족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였다. 나중에 어머니는 연변1중에서 공부하는 나를 남겨두고 두 어린동생을 데리고 길림시에 있는 오빠네 집에 가게 되였다.

그때 벌써 어머니는 백발이 되였지만 가사일을 담당하고 손군 다섯을 키워 젊은이들이 시름놓고 일하도록 했다.

어머니는 “웃물이 맑아야 아래물이 맑다” 고 하면서 이신작칙하여 가정화목을 도모했다. 1970년 우리 가정은 “길림시 5호가정” 영예를 받아안았다.

젊은시절 쌓이고 쌓인 로고때문에 어머니는 나이 들면서 잘 걷지 못하는 불치병에 걸려 고생하다가 1988년 7월 80세를 일기로 세상떴다.

/장춘 마경옥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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