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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하늘’을 비추는 공중실험실

[기타] | 발행시간: 2016.06.19일 10:35
[한겨레] 남북극 오존 구멍, 빙하 연구하는

대기과학의 최전선에 선 항공기

장애물 피해 ‘곡예비행’하고

빙빙 돌며 ‘업 스파이럴'도

창문 개조해 바깥공기 끌어와

바로 옆 측정장치에서 분석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은

미세먼지의 하늘을 날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용 항공기 디시(DC)-8의 내부 모습. 대기 측정장치를 관리하는 중앙통제실(왼쪽) 뒤로 다양한 대기 측정장치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배치되어 있다. 9일 DC-8은 서울~진도를 네 번 왕복하며 다양한 고도의 대기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나사 DC-8 탑승기

공항에 가면 각자 비행기가 몰고 온 대륙의 냄새가 난다고 영국의 작가 알랭 드 보통이 말한 적이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용 항공기 디시(DC)-8이 미세먼지를 분석하기 위해 5~6월 한반도 상공을 날아다녔다. 남·북극에서 차가운 바람과 빙하 냄새를 몰고 온 DC-8이 이번에는 중국의 고비사막, 충남의 석탄화력발전소, 서울 도심의 경유차 등 온갖 배출원에서 내보낸 미세먼지를 들이마시고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내년 6월께 연구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고도 낮음, 전방에 장애물!”(Too Low, terrain!)

조종석 창문 바로 앞에 초록 산이 솟아 있었다. 추락사고가 날 때나 울리는 자동경고음은 벌써 몇번째 울어대고 있었다. 조종간을 움켜쥔 미 항공우주국 소속 비행사 루스벨트 윌리엄스의 주먹에 핏줄이 솟았다. 지난 9일 ‘디시(DC)-8’은 경기 광주의 야산과 송전탑, 낮은 빌딩과 골프장 사이를 헤쳐나갔다. 해발 200~300미터로 저공비행하는 이유는 저고도의 대기를 분석하기 위해서다.



서울 앞두고 ‘업 스파이럴’

이 항공기의 공식 명칭은 ‘DC-8 공중실험실’이다. 환경부와 미 항공우주국(NASA)의 공동 프로젝트로 한반도의 미세먼지를 분석하기 위해 지난 10일까지 20차례 한반도 상공을 날았다. 나사는 1985년 맥도널더글러스사로부터 이 비행기를 도입해 ‘하늘 위의 실험실’로 개조했다. DC-8 기종은 네 개의 엔진을 달고 최고시속 907㎞로 12시간을 주파하며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중형 항공기다. 나사에 들어와선 남극 대륙을 비행하면서 기후변화에 따른 빙하의 후퇴를 관찰했고, 북극 상공을 가로지르며 오존구멍의 변화를 살피기도 했다. 민항기라면 진즉에 퇴역할 나이지만, 대기과학자들은 극지를 오가며 잔뼈가 굵은 이 늙은 비행기를 한번이라도 타보고 싶어한다. DC-8은 최저 200m에서 수천m까지 오르내리며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어서, 짧은 시간에 광범위한 지역의 대기를 수집할 수 있다. 수십개의 지상 대기관측소가 수집할 수 있는 정보를 비행기 하나로 넘어서는 것이다.

DC-8은 어떻게 대기를 수집할까? 밖에서 보면 이 비행기는 ‘날아다니는 연통’이다. 원리는 간단했다. 창문을 하나 뜯어내고 거기에 기체가 들어오는 연통을 달았다. 이것을 ‘인렛’이라고 부른다. 비행기 창문 두 개에 하나마다 인렛이 꽂혀 있었고, 날개와 꼬리날개 등에 부착된 것까지 합쳐 모두 25곳에서 기체를 수집했다. 수집된 기체는 비행기 안에 설치된 20여개의 측정장치로 들어왔다가 다시 밖으로 배출됐다. 측정장치 앞에는 한명씩 연구원이 앉아 있었다. 김동욱(25·광주과학기술원)씨는 모니터에 나오는 수치와 그래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채집된 기체의 파장을 분석해 글리옥살과 미세먼지의 관계를 연구하는 프로젝트에 소속되어 있다.

이날 DC-8 공중실험실은 서울 동쪽과 수도권, 충남, 호남 서부 지역의 기체를 수집하는 임무를 띠었다. 경기 여주 상공에 도착하자 DC-8은 고도 200m에서 2000m까지 나선형으로 돌면서 고도를 높였다. 손에 잡힐 듯 가까웠던 남한강 이포보가 성냥갑만큼 작아졌다. 미세먼지의 연직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항공기는 이날 이런 ‘업 스파이럴’(up-spriral)을 네 차례 했다.

대기 성분은 실시간으로 표시됐다. 연구원들은 노트북 모니터를 켜놓고 자신이 연구하는 성분을 체크하면서 채팅창을 열어놓고 토론을 했다.

jackdi**: 광주가 300m 상공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네.

AVOC**: 작은 산이 있는데, 그래도 꽤 평평해.

jackdi**: 평평해, 근데 깨끗하지 않군.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미세먼지에 대해 모르는 것들

한반도는 어떤 의미에서 대기의 시궁창이다. 편서풍이 실어온 중국발 오염물질이 도착하고, 많은 인구와 산업시설, 자동차가 밀집해 오염물질을 뿜어댄다. 대기가 정체될 경우 미세먼지 농도가 치솟는다.

미국의 사막이나 극지에서 대기를 연구해온 외국인 연구자들에게 한반도 상공이 깨끗하게 느껴질 리 없다. 이날도 연구원들이 ‘이벤트’라고 부르는 현상이 있었다. 이륙 전 브리핑의 예고대로 비행기는 중국에서 온 먼지덩어리 속을 통과했다. 실시간 측정치를 바라보던 연구원들은 “알킬질산에스테르류가 200ppb를 찍었다”며 놀라워했다. 이 물질에 대해서 이차생성된 미세먼지의 지표가 될 수 있느냐를 가지고 학계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미세먼지가 이슈가 된 건 오래되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까지의 대기 정책은 오염물질이 광화학반응을 보이면서 높아지는 ‘오존’을 잡는 정책이었다. 2000년대 후반 들어선 기후변화가 이슈로 떠올랐다. 온실가스 저감 대책이 추진됐고, 휘발유차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최신 경유차에 ‘저공해차’ 인증을 해주고 혜택을 부여했다. 미세먼지가 논란이 된 최근에는 경유차가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 환경기준을 대폭 강화한 ‘유로6’ 경유차가 실제 도로에서는 미세먼지의 생성 원인이 되는 질소산화물을 5~6배 넘게 배출하는 현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진 것 같지만, 이는 미세먼지가 이슈가 되면서 일어난 착시효과에 가깝다. 미세먼지(PM10) 농도는 2006년 59㎍/㎥에서 2015년 48㎍/㎥로 줄었다. 문제는 2005년부터 ‘수도권 대기환경관리 기본계획’ 등 미세먼지 저감 대책이 시행됐음에도 2010년대 들어 50㎍/㎥ 안팎에서 정체 상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규제 완화로 늘어난 경유차와 전력위기로 증설된 석탄화력발전소가 원인으로 꼽히지만, 아직까지 명쾌한 과학적 검증은 나오지 않았다. 확인되지 않은 통계도 언론에 거듭 인용되면서 혼란을 부추겼다. ‘수도권 미세먼지 발생량의 40% 이상이 경유차에서 나온다’는 주장에 대해서 환경부는 13일 해명을 해야 했다. 이날 열린 언론사 부장 간담회에서 나정균 기후대기정책관은 “40% 수치는 비산먼지와 생물성 배출원을 제외한 1차 배출원 중 경유차 배출 비중만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고,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그동안) 해명하지 않고 가벼이 대응”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새로 내놓은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 미세먼지(PM2.5)에 대한 경유차 기여도는 29%다.



‘DC-8 공중실험실’은 200~300m의 저고도비행을 주로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호남평야.

사실 미세먼지의 배출원과 배출량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건 불가능하다. 생각해보라. 지금 당신이 숨 쉬고 있는 공기 중 어느 정도가 중국에서 왔는지, 당신 앞을 지나간 경유차에서 온 건지, 휘발유차에서 온 건지, 서울 종로의 고등어구잇집에서 왔는지 알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배출원 분석은 모델을 통해 산출해야 하는데, 아직 그 정확도를 신뢰할 정도는 아니라고 말하는 과학자도 상당수다. 이번 공동연구 기간 중 서울 올림픽공원 대기관측 지점에서 ‘오존 폭탄’이 감지된 ‘이벤트’에 대해서도 한·미 연구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이강웅 한국외대 교수(대기화학연구실)가 말했다.

“오존이나 미세먼지는 보통 온도가 높고 광량이 많은 오후 3~4시에 최고값을 보입니다. 그런데 이날은 저녁 6시 넘어 5분 동안 30ppb나 올라갔어요. 오존 농도와 미세먼지 농도가 동반 상승한 이례적인 케이스여서 섣불리 원인을 추정하기 힘들지요.”

연구자들은 이런 미스터리를 하나씩 정복하면서, 미세먼지의 발생 기작을 밝혀나간다. 각 배출원별 배출량, 미세먼지의 이차생성 메커니즘에 드리워진 무지의 영역을 밝혀내고, 기압 및 온도, 풍향 등과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 파악해야 한다. 환경부와 나사는 이번 결과를 토대로 인공위성에서 측정한 미세먼지 값을 보정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할 예정이다. 인공위성 측정치는 상대적으로 부정확하다고 알려져왔다. 이날 공중실험실 DC-8은 하루 종일 서울과 전남 완도 상공을 네 차례 왕복 비행했다. 시커먼 먼지를 뒤집어쓴 비행기는 지난 10일 마지막 비행을 끝으로 한반도에서 조사를 마쳤다.

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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