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창립60돐 기념 특별기획 60주년에 만나본 60인] - 기획보도(19)
중국 첫 로인협회 초대회장 황종원로인을 만나
황종원 프로필:
84세, 룡정시 동성용진에서 출생
1956년도 입당
동불사 소학교교원, 동성용정부 문화, 교육, 위생 조리원 겸 동성용농업중학교 교장, 동성용인민공사 당위 선전위원, 조직위원, 동성용인민공사 농기관리소 소장 등 직을 력임
1981년부터 동성용향 리퇴직인원관리를 하면서 60세 정령퇴직때까지 동성용인민공사 로인협회 제1임 회장을 겸직.
조선족로인협회는 조선족 특유의 민간조직으로서 전국의 모범사회단체로 장기간 사회주의건설과 민족사회 건강한 발전에 큰 역할을 해왔다. 지금은 조선족사회 보존과 발전에 더욱 크고 대체할수 없는 역할을 하면서 《조선족사회의 파수군》, 《조선족농촌의 파수군》, 《대도시 조선족사회 구심점》 등 높은 평가를 받고있다. 당과 조국에 대한 사랑, 민족의 보존과 발전에 대한 사명감, 높은 기여정신과 집단정신...그야말로 조선족로인협회는 모두들 두손 들어 찬성하는 모범단체라고 할수 있다.
지금 연변에는 향진, 촌급에 100%로, 도시 사회구역, 기업사업단위 할것없이 로인협회가 설립되여있다. 당면 연변에는 1663개의 로인협회가 있고 로인협회마다 기본상 자체의 활동실을 보유한 상황, 회원이13만명 (실제 60세이상 로인대오는 26만명)에 달한다. 로인협회사업의 중심은 조직건설, 경험모색이라고 할수 있다. 《기층로인협회사업조례》도 제정, 실시하여왔다.
불완전한 집계에 따르면 연변을 중심으로 촌, 사회구역, 구 , 시급 조선족로인협회가 2000여개 된다고 한다. 조선족로인협회는 길림성외 북에서부터 보면 크게 수하, 가목사,할빈, 계서, 계동, 밀산, 목릉, 해림, 녕안, 라북 등 지역에, 료녕성에는 심양, 대련, 영구, 철령, 단동, 개원에, 멀리로는 심수, 상해, 교주, 청도, 위해, 연태, 천진 등지에 조선족로인협회가 시급, 구급 혹은 사회구역별로 설립되여있다.
따라서 조선족로인협회는 광의적인 의미에서 현재 중국의 최대 조선족단체라고 할수 있다.
어떻게 로인협회와 로인절이 나오게 되였는가? 공화국 창건 60년, 로인절 27돐을 맞으면서 기자는 로인협회 설립에 주요한 역할을 한 분들을 만나보았다.
첫 로인협회 초대회장 황종원로인 《그때의 감격의 순간 잊을수 없수다》
1981년 룡정시 동성용인민공사(당시는 인민공사, 오늘의 향 혹은 진에 해당)서 중국의 첫 로인협회가 설립되였다.
당시 초대회장이 아직 건재하신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고 달려갔다. 84세, 아직 사유가 명석하고 시청각이 밝은 정정하신 분이셨다. 동성용진 평안촌에 사시다가 지금은 연길시 남산기슭의 재천아빠트구역에 사시는데 매일 집남쪽 야산길 따라 등산까지 하신다고 한다.
60세이상이여야 로인협회에 가담할수 있었지만 첫 회장직이라 당시 다방면을 고려하여 수년간 당위 ,정부 기관에서 사업하시다 금방 2선에 물러나 동성용인민공사의 리퇴직인원관리를 맡게 된 54세의 《젊은》 자신이 《조직의 배치대로》 로인협회 회장직을 맡게 되였다고 한다. 《조직의 배치니까 맡아한거지요.. 특별히 한것도 없는데…》라며 로인은 기자의 취재에 황송해 하신다.
그때를 회상하면서 로인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우리 민속에 60돐에 회갑을 쇤다 했었지만도 셈평도 좋지 못하고 또 문화대혁명의 미열도 크고 해서 당시 회갑을 못쇠는 로인들이 많았어요 . 그때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식솔이 많은 때라 2대, 3대가 같이 사는 집들이 푸술했는데 로동력을 상실한 로인들이 집에서나 밖에서나 대우를 받기가 쉽지 않았지요. 그러다가 로인협회가 서고 8월15일이 로인들의 명절로까지 정해지자 로인들이 반가와하시던 일이 어제 일인듯 잊어지지 않지요…》
《1981년 8월15일이였는데 그날 동성용인민공사에서 로인협회 설립 및 매년 그날을 로인들의 명절-로인절로 정한다고 선포하고 로인협회 가입년령을 남성은 60세이상, 녀성은 55세이상으로 정했으며 촌, 집체기업, 정부에서 힘을 합쳐 60세이상 로인들에게 단체로 회갑상을 차려드리고 촌마다에서 축수문예종목까지 만들어 정말로 처음으로 로인들이 명절다운 명절을 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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