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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락연을 연구하고 홍보하는 신기점이 되기를

[기타] | 발행시간: 2017.02.23일 11:41
-중국사회과학원 아세아태평양 글로벌전략연구원 당위 위원이며 연구원인 박건일교수

“충혼의 넋 예술인생- 《한락연을 기리며》 도서출판 좌담회”에서 박건일교수는 한락연의 5개 면에서 "첫사람"임을 그의 생평에 따라 알기쉽게 나누어 설명해주었다.

강연을 하고있는 박건일교수

1898년 12월 8일 룡정시 지신진 공농촌의 한 조선족가정에서 태여난 한락연(원명 광우)은 해 계몽교육과 제국주의와 일제를 반대하는 애국주의교육을 받았다.

박건일교수는 이 유년기를 거쳐 한락연은 1919년 울라지브스또크를 거쳐 상해에 거쳐 대한민국림시정부에 가담했으며 1922년에 중국공산당에 큰 호감을 가지고 접근하기 시작해 1923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한것은 바로 조선족으로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첫사람임을 증명하는 력사사실이라고 말했다.

한락연은 1924년에 봉천(심양)에 도착해 염보항(阎宝航)과 친숙하게 지냈고 1925년에 임국정(任国祯), 오려석(吴丽石) 등과 함께 봉천의 첫 당지부를 설립했는데 봉천의 당조직설립에 가입한 첫 사람이였다.

그리고 1925년 할빈에 도착한 한락연은 할빈, 가목사, 목단강 등 지역에서 사진관을 엄페장소로 하는 정보소를 설립했고 1928년 주은래 등 중공6차 대표대회 대표들이 안전하게 통과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고 박건일교수는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빠리에서 류학생들과 함께 양호성 장군을 배동해 귀국하는 장면

한락연이 국제반파쏘전쟁에 참여한 첫사람임은, 1929년 프랑스 빠리미술학원에 입학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프랑스의 공산당조직에 가담한 것과 1936년 “전 구라파화교 항일련합회”에 참가했고 1937년 양호성장군을 배동해 중국으로 돌아온 과정에서 있은 사실들이 증명한다고 말했다.

박건일교수는 또 한락연은 또 1937년 무한에서 동북구국총회사업에 참가했고 1938년 곽말약 등 동지들과 함께 연안을 방문해 모택동의 접견을 받았으며 1939년에는 당의 파견을 받고 리제심(李济深)이 책임진 국민정부전장(战地)당정위원회에 가담해 소장지도원으로 있었다. 이는 조선족으로서 첫 장군임을 증명하는 력사사실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1939년 한락연과 류옥하부부의 결혼사진

그 뒤로 한락연은 류옥하녀사와 결혼하고 1940년 국민당헌병대에 체포되였다가 1943년 리제심 등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석방되였으며 감옥에서 자화상을 그리기도 했다. 1944년 서북 란주에 정착해서 케질(克孜尔) 천불동을 고찰하는 등 문화보존사업에 정력을 기울였으며 1947년 7월 우루무치에서 20차 그림전시회를 마쳤다. 7월 말 국민당군용비행기로 란주로 돌아가는 길에 비행기가 추락되여 조난당하였다.

《한락연을 기리며》 초판본과 재판본

박건일교수는 한락연은 중국조선족 혁명가이며 인민예술가이며 사회활동가이며 정보전선에서 걸출한 전사로 평가받는다고 말하면서, 도서 《한락연을 기리며》의 서문을 쓴 루이 애리( 路易·艾黎)의 농축된 평가는 “한락연은 중국공산당 당원이다.”라는 단 한마디이며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자인 성성(盛成)교수는 “한락연은 중국의 피카소”라고 평가했다고 지적했다. 박건일교수는 또 두 화가를 비교하는 것은 두 화가의 화풍을 비교하는 것처럼 오해받는 부분이 있는데 사실상 피카소와 한락연을 비교한 것은 예술인으로서 공산당조직에 적극 접근하고 활동을 해온 것들에 대한 평가라고 지적했다.

한락연동상이 모셔져있는 케질에서 박건일교수와(맨 오른쪽) 한락연의 딸 한건립녀사

따라서 이러한 생평과 무궁무진한 매력을 지닌 한락연에 대한 연구와 홍보는 새로운 기점을 맞아 더욱 깊이있고 활성화되기를 바랐다. 전정옥 기자

출처:료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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