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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연인들, 이 책 '절대' 보지 마세요

[기타] | 발행시간: 2012.06.13일 14:22
속았다. 한국의 인기 소설가 정이현과 프랑스의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이 공동으로 기획해 펴낸 소설 <사랑의 기초>(<연인들><한 남자> 합본 총 2권, 톨 펴냄)를 읽고 든 생각이다.


달달한 소설일 줄 알았다. 두 남녀 작가가 교류하며 펴낸 '로맨스' 소설이라니, 사춘기 시절 눈물을 훔치며 읽었던 <냉정과 열정사이>가 먼저 떠올랐다. 사랑에 대해 현실적이고, 심지어는 냉소적이기까지 한 정이현의 전작들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사랑의 기초>라는 제목과 '첫 사랑도 마지막 사랑도 아닌, 바로 지금 우리의 사랑'이라는 표지문구는 '정이현이 이번엔 혹시?'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기 충분했던 것이다. 게다가 올해는 <건축학 개론><내 아내의 모든 것>과 같은 달달한 멜로 콘텐츠가 전례 없는 흥행을 거둔 해 아닌가.


그러나 '혹시'가 아닌 '역시'였다. <사랑의 기초>는 달콤하지 않았다. 오히려 냉소적이었다. 아니, 차라리 도발적이었다. 그러면서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현실적이라, 소설을 읽으며 '멘붕'이 올 지경이었다.낭만적 사랑, 지속될 수 없는 건가요?

사랑에 대한 정이현의 언어는 언제나 현실적이었다. 때론 정도가 지나쳐 우울해질 정도로. 그는 데뷔작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서 '차가 없는 남자애는 피곤하다'며 투스카니를 모는 남자친구를 불러내고, '진정한 승부사는 건곤일척한다'는 경구를 되새기며 '부유한 집 막내아들'이자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로스쿨 학생'에게 순결을 바치는 20세기 말의 (일반적인) 여성을 그렸다.


또 드라마화되어 인기를 끌기도 했던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는 제목과 달리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은, 결혼적령기 여성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사랑의 기초 : 연인들>도 다르지 않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소설을 읽고 '로맨스 없는 로맨스 소설'이라 평했다. 정말 그랬다. 나를 혹하게 만들었던 표지의 한 마디, '첫사랑도 마지막 사랑도 아닌, 바로 지금 우리의 사랑'은 결코 달콤한 말이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바로 지금' 우리의 사랑을 그렸다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사랑에도 기승전결이 있다. 정이현은 이렇게 쓴다. "연애의 초반부가 둘이 얼마나 똑같은지에 대해 열심히 감탄하며 보내는 시간이라면, 중반부는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를 야금야금 깨달아가는 시간이다"라고. <연인들>은 이 '사랑의 기승전결'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민아와 준호를 이어주는 것은 '우연'이다. 정이현이 쓴 대로, 둘은 서로가 얼마나 '같은지'에 대해 끊임없이 감탄한다. 그들은 사는 동네가 같고 좋아하는 음악이 같으며, 심지어는 우연히 동네의 도서 대여점에서 마주치기까지 한다. 이 부분에 작가가 붙여놓은 소제목, 이름하여 '기적의 비용'.


둘은 불타오른다. 준호의 말을 빌리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이 행운아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어느 연인들처럼 둘은 모텔에서 사랑을 불태우고, 수시로 전화를 걸어 사랑을 확인한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사소하지만 현실적인 몇 가지 오해들(작가는 이를 '사소한 그림자'라는 소제목으로 표현했다)로 둘은 차츰 멀어지고, 급기야는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 헤어짐에 대해 정이현은 짧게 덧붙인다.


"눈물은 오래지 않아 마를 것이고 그들은 머지않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것이다. 다시 사소하게 꿈꾸고 사소하게 절망하고 사소하게 후회하기를 반복하다보면 청춘은 저물어갔다. 세상은 그것을 보편적인 연애라고 불렀다."


결혼은 사랑의 완성? 낭만 대신 '현실' 택한 책


자신을 행운아로 지칭했던 <연인들>의 준호는 민아와 멀어지자 이런 생각을 한다. '연애의 종착역이 결혼이어야 할까? 통념상으로야 그럴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조금 비틀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 연애의 종착역이 결혼인가, 라고 한다면 말이다'라고. 그렇다면 연애의 종착역인 결혼에 이르면, 과연 거기엔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까.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소설 <한 남자>를 통해 이를 부정한다. <한 남자>는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한' 남자, 벤의 이야기를 다룬다. 정이현이 <연인들>을 통해 커플들의 사랑과 이별, 그러니까 '보편적인 연애'를 그렸다면, 보통은 '사랑의 완성'이라 불리는 결혼을 그려낸 셈이다.


공동 작업자이자 최초의 독자인 정이현은 이 소설을 '판도라의 상자'라 표현했다. 낭만적 사랑의 영속성을 굳게 믿고, 그 꿈에서 영원히 깨고 싶지 않다면 이 소설을 열지 말라는 뜻이다. 그의 말마따나 소설 속에서 낭만은 찾을 수 없다. 낭만 대신 소설을 채우는 것은 권태와 회의다. 그리고 정이현과 보통은 이것이 '진실'이라고 말한다.


주인공 벤은 런던에 거주하며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39살의 중년 남성이다. 그는 한 술집에서 아내 엘로이즈를 만났다. 그리고 그는 '사랑의 존재'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으며, 엘로이즈가 곁에 없다면 다시는 삶의 의미와 기쁨을 알 수 없으리라는 생각까지 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유쾌하지 못한 결혼 생활과 권태 속에서 그는 결국 깨닫게 된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고 그 사람을 소유할 수 있으리라는, 연인들의 첫 번째 기대가 실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깨닫는 순간, 그 사랑은 최대의 시련과 맞닥뜨린다는 것을."

두 권의 책은 모두 짧다. <연인들>이 200페이지를 조금 넘는 수준이고, <한 남자>는 소설 부분만 따지면 150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짧은 분량에 비해 내용은 묵직하다. 마치 돌직구인냥, 우리가 알고, 또 믿고 있던 사랑에 잔잔한 균열을 낸다.


읽는 내내 씁쓸했다. 두 작가가 그려낸 주인공이 단순히 소설 속의 인물이 아니라, 현실 속 우리와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정이현은 "글을 쓰면서 계속 고민한 것은 평범한 이십대 남녀가 나누는 가장 보통의 연애는 어떤 모습일까"였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연인들> 속의 두 남녀는 지극히 평범하다. 직업도 무난하고, 성격도 모나지 않다. 그야말로 '바로 지금 우리'의 연애를 그려낸 것이다.


<한 남자>의 주인공 또한 마찬가지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영국이지만, 마치 한국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주인공은 아내와의 섹스 때문에 고민하고, 죄책감을 느끼면서 약간의 외도도 저지르나, 끝내는 이 '지극히 평범한 삶'을 꾸려나가는 일이 최대의 용기임을 깨닫는다. 한국의 평범한 중년 가장이라면 누구나 해봤을 생각 아닌가.


주인공이 평범하기에, 이 두 개의 소설은 보편성을 획득한다.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너희들의 사랑도 결국엔 이렇게 끝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런 소설에 붙여진 제목이 <사랑의 기초>라니, 그것 참 아이러니하고도 우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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