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가도 달리는 조선족 3세 이야기
청도해승전자 리영남 리사장
(흑룡강신문=하얼빈) 리수봉 김명숙기자 = 두개 대학졸업, 4년 공무원 생활, 현재 청도서 두개 회사를 경영하는 연변 화룡시 출신인 리영남 리사장(42세, 사진)은 청도 즉묵시 정협위원, 월드-옥타 청도지회 수석부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리씨는 "능력이 안되면 기회를 잡아도 성공 못한다"며 "자기 자질을 높이는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청도에 진출하여 한 한국회사의 부총경리로 근무했는데 "네가 하는데 내가 왜 못하겠나"하는 오기로 빈주먹으로 2003년 창업의 길에 나섰다. 당시 집을 사겠다고 돈 20만원을 예금해 두었는데 그가 그 돈에 손을 대려고 하자 안해가 만류했다. 리씨는 '리혼 하겠다'는 각서까지 쓰고 창업을 시작했다. 그의 '옹고집'을 이기지 못한 안해는 결국 두손을 들고 말았으며 통장을 남편 앞에 내놓았다.
리씨는 한국회사에 근무하면서 '가장 훌륭한 직원'이 되겠다며 성실하게 일했던 덕분에 많은 기업인들과 친분을 쌓았었다. 그는 사람들을 불러 놓고 창업 '신고식'을 올렸다."저 리영남은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 왔습니다. 저를 믿는다면 래일 다시 찾아와서 도와주십시요. 돈 있는 사람은 돈을 , 오다 있는 사람은 오다를 , 경험이 있는 사람은 경험을 주십시요. 후날 꼭 보답하겠습니다"
이틑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오다를 주고, 자금지원을 약속하고, 외상으로 물자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그가 경영하는 청도해승전자는 이렇게 고고성을 울렸다.
그도 처음부터 순탄한 길을 걸은 것은 아니다.원자재는 현찰을 주고 사는데 반면에 생산한 전자제품은 납품해서 4-5개월후 결제를 받았다. 자금 압박이 커서 고리대를 쓴적도 있었다. 원자재 결제와 직원들의 봉급을 주기 위해서 였다.
"바다에 걸어 들어간적도 있고, 베란다에서 담배 피우다 뛰여내리고 싶은 충동도 받았다. 후에 마누라가 눈치채고 베란다를 봉해버렸다"며 초창기의 어려움을 실감있게 설명했다.
리영남과 안해의 피타는 노력으로 '바다에 떠오르는 기업'이라는 이름을 가진 해승(海升)전자는 어려운 고비를 한번 또 한번 넘겼다. 창업 3년만에 매출액을 3천만으로 올렸으며 2007년에는 자동화설비회사를 설립했다. 이젠 고정자산이 2천만원, 직원이 150명되는 기업으로 자리 매김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영향으로 매출이 2천만원으로 떨어졌는데 올해 목표는 3천만원으로 원상복귀시킨다는 것이다.
리씨는 "조선족기업은 핵심기술이 없다. 자세를 낮추고 열심히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조선족들 고생 못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돈을 쉽게 벌려하고, 금형설계나 화공 등 기술개발에는 관심이 적다고 덧붙였다.
리씨는 조선족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앞으로 월드-옥타를 통해 한국 중소기업의 기술을 이전하는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또한 "청도조선족사회의 변화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