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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은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2.06.26일 15:59
세월이 류수라고 내가 고향 떠나 청도에 온지도 만 5년이 되였다. 그간 산천초목도 푸르렀다 누르기를 몇번 했고 나도 중한합자기업에서 일개 없어서는 안될 중역으로 자리매김하여 아름다운 청도— 내 삶의 터전 《청도신생활》에서 멋지게 나이 들어가고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기업이란 《기》자도 모르던 아녀자가 산설고 낯선 타고장에서 고독과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여기까지 걸어오기에는 실로 설음의 스토리가 많지만 그래도 한마디로 말해 도전은 아름다운것이고 도전하는 녀자는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듯싶다.

  2006년말, 기관사업단위로부터 《앞당겨 직장을 물러나 휴양》(提前退养)하는 정책이 있었다. 즉 년령이 50세이고 사업년령이 30년인자는 본인신청, 단위에서 심사비준하면 5년 앞당겨 퇴직할수 있다는 정책이였다. 그 당시 이 정책을 선택하기란 나로서는 엄청난 고민이였다.

  왜냐 하면 대학을 졸업한후 줄곧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직에서 근심없이 근무하던 나였고 또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직업이 어떻게 나를 기다릴지 언약없는 도전이였기 때문이다. 보금자리 떠나자니 아쉽고 두려웠고 또 남아있자니 기회는 두번다시 나를 기다릴것 같지 않았다. 그때 류학을 준비하는 아들애의 뒤바라지 하더라도 나에겐 새로운 도전과 분투가 필요했다.

  몇날 며칠 고민끝에 나는 끝내 《박수 칠 때 떠난다!》는 비장한 결심과 《나는 할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운명의 갈림길에서 《하해》를 선택하였다. 당시 연변TV방송국 보도국 주임기자로, 연변라지오텔레비전방송국 선전처 처장으로 16년간 정들었던 연변제1매스컴을 떠난다는것은 자그만치 《뉴스》였다. 《얼마나 더 좋은 자리가 있기에 저 녀자가 떠날가?》 《나이 반백에 뭘 해보지도 않던 일 시작하냐?》 두고보자는 사람, 걱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사람이 살다보면 참 인연이란 따로 있는가보다. 선택의 첫발작은 그나마 용케 내디뎠지만 정작 맘에 드는 리상적인 일터를 찾기란 생각보다 그리 쉽지 않았다. 내가 한창 망설이고있던중 어느날 존경하는 한 지인으로부터 현재 신생활그룹중국유한회사의 안봉락회장님을 알게 되였다. 중국에 진출한 10여년래 화장품업계에서 중국녀성들의 건강과 아름다움을 위해 연구와 생산 판매를 일체화한 우수기업의 총수인데 중국정부의 존경과 인정은 물론 중국 내수판매시장에서 수천수만의 막강한 한족녀성 마케팅팬들을 보유한 성공한 한국사장이라는것이다. 그러면서 또 석자 이름에서 어쩌면 한글자 틀린 동성 부동명이라는것이 참 재미있는 인연이 될줄도 모른다는것이다. 생애에 몇번 없는 그 훌륭한 멘토를 만나는 행운이 아닐가 싶었다. 나는 무작정 심양에 계시는 회장님 본사 사무실을 노크했다.

  당시 회장님은 나의 리력서를 훑어보시더니만 《찾아주셔 고맙습니다.신생활본사에서도 수요됩니다만 지금은 청도에 갓 설립한 자회사가 더 근사히 딱인듯하네요. 청도는 좋은곳이죠. 헌데 초창기라 많이 어려우시겠지만 우리 함께 잘 해봅시다!》

  조용하면서도 믿음과 예지로 빛나는 깨끗한 모습과 《우리》라는 그 말씀이 마음에 와닿는 순간 나는 흔쾌히 《예!》 하고 대답해버렸다.

  말그대로 청도는 아름다웠다. 푸른 하늘 붉은 기와 파란 바다- 삼면에 산이 에워싸고 한면이 바다가 보이는 로산구 청정지역에 자리잡은 청도신생활생물과기유한회사는 더욱 아름다웠다. 빨간 들장미, 파란 잔디풀, 록화가 잘 어우러진 정원… 회사는 마치 아늑한 휴원지를 방불케 한다. 신생활그룹산하 제1생산기지로서의 청도신생활은 건강보건식품, 생활용품, 위생용품 등 다양한 제품생산을 위주로 하는 중한합자기업이다. 여러 생산부서들의 생산을 에워싸고 행정인허가 인사, 재무, 총무, 후근지원을 담당하는 종합부문- 지원부 과장이 바로 나란다. 《아, 신생활이란 삶의 현장에서 내 인생의 제2막이 시작되는구나!》 2007년 가을, 나는 부푼 마음 안고 첫 출근을 하였다

  그런데 바로 입사 첫날, 나를 반겨준것은 아름다운 회사가 아니라 볼품없이 박산난 유리창문, 자동을 잃은 고급유리출입문, 산산 유리쪼각으로 포장된 출입구… 아수라장 참상 그 자체였다. 동네 촌사람들이 곡괭이며 쟁기를 둘러메고 공장에 쳐들어와서 공장의 생활오수가 자기 동네우물을 오염시켰으니 돈을 배상하라는 협박이였다.

  난생처음 이런 참상앞에서 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더우기 새로 부임돼온 과장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냐 지켜보고 있는 한국사장님들의 안타까운 눈빛과 직원들의 당황한 표정에서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다. 《어려움》이란 바로 이런 치욕을 당하면서도 속수무책, 당하기만 했던 지난날의 과거사였구나! 이 문제의 해결여부가 앞으로 나의 회사생활의 운명과 직결됨을 느끼는 순간 나의 눈앞에 무서운것이 없어졌다. 나는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오기로 문제해결에 나섰다.

  우선 상황파악이다. 알고보니 우리 회사는 로산구 초상인자유치로 당시 물공장으로 설계된 한 대만기업을 인수매입했는데 공기 좋고 물 맑은 청정지역이였으나 건설생산이나 생활의 기반을 형성하는 중요한 구조- 물, 통신, 상하수, 오수처리 등 인프라가 구전하지 못했다. 거금을 투자하여 기본시설들을 재인테리어하고 GMP개조로 공장 내부시설들을 완벽화하였지만 원체 담벽 하나를 사이두고 낮은 지역에 위치한 동네 사람들과 린접해있다보니 생산중 혹시 도관파렬로 약간의 물이 담밖으로 흘러새여도 촌사람들은 벌둥지 쑤신 격으로 란리였다. 회사에 쳐들어와 손해배상하라고 물의를 일으켰고 그럴 때마다 뜯어간 돈액수만도 적지 않다는것이다. 외지 기업이 본토배기들에게 당하는 어쩔수 없는 서러움이다.

  촌민위원회를 찾아가 협상했다. 우선 미안하다 사과하고나서 생산하다보면 본의 아닌 그럴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런 인위적인 파괴행위는 절대 용서할수 없다는것과 위법했으니 손해배상은 당연하지 않냐고 부드러우나 강하게 초점을 세웠다. 때는 한창 촌위원회 기바꿈 선거 직전이라 돈이 최고였고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촌사람들에게는 도리가 통하지 않았다.

  나는 또 현지 파출소를 찾아 법적처리를 강경히 요구했다. 또 로산구 물가국에 찾아가 현장 손해상황을 조사하고 정확한 손해배상비를 책정해줄것을 청구했다.

  주모자를 영창에 집어넣을뿐더러 2만 1000원 손해배상비를 받아내고야말겠다는 드센 잡도리에 촌령도는 그저 넘어갈수 없음을 느꼈는지 협상을 요구해왔다. 돈은 배상하되 사람만 영창에 구치말자는것이였다. 기바꿈 선거를 앞두고 영향면을 고려해서란다. 한동네에서 지내야 할 먼 후날을 감안해 법적으로는 가지 않되 손해배상비만은 절대 넘어갈수 없다고 딱 잘랐다. 드팀없는 태도에 촌민위원회에서는 량해각서에 지장 찍고 배상비 지불에 동의했다.

  그런데 말로는 대답했으나 피일차일 미루면서 진전이 없었다. 아무날 아무시까지 파출소에 이 돈을 입금시키지 않을 때 그 후과를 전적 책임지라는 최후통첩에 그들은 약 달포만에 끝내 항복하고야말았다. 2만 1000 원이란 손해배상비가 고스란히 신생활에 입금되였다. 당하기만 하던 력사가 역전되는 순간이다. 이 사건 이후로 당시 회사 린근에서는 《신생활》에 보기에는 부드러우나 아주 무서운 조선족 녀과장이 왔다는 소문이 쪼-옥 퍼졌다.

  또 한번은 퇴근해서 저녁 8시쯤, 회사 경비실로부터 이름없는 은밀한 메시지가 날아왔다. 《회사의 후근창고로부터 물건을 막 도적맞히는중》이라는 도난사건보고였다. 당장 달려가자니 회사가 집에서 10여킬로 떨어져 먼것도 있겠지만 현장에서 도적을 잡지 못할바에는 아예 사람 놀래워 사건파악에 불리할듯했다. 대체 도적이 누구라는 단서는 알고있는듯했다.

  일단 경비를 단단히 단속해놓고 이튿날 날이 밝기를 고대해서 첫사람으로 출근했다. 우선 메시지를 보내온 폰 임자를 확인하고 그 애 입을 여는것을 돌파구로 삼고 조용히 사무실에 불렀다. 보복이 두려워 입을 열지 않았다. 내심한 설복끝에 이 사건이 보안대장과 련루되고 한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보안대장을 불러 전날 당직상황과 도난사건이 대체 어찌된 일인가 꼭 찍어 캐여물었다. 무슨 증거가 있느냐 하면서 좀처럼 승인하지 않았다. 친히 수사할수밖에 없었다.

  휴식시간 보안대원들이 밥 먹으러 간 틈을 빌어 경비실의 감시카메라를 감쪽같이 차에 실어 사무실에 놓고 전날 저녁 사건조작 시간대에 맞춰 추적검사하였다. 제아무리 망을 보고 카메라 작동을 정지시켜놓고 사건을 조작했다지만 앞뒤 꼬리가 깔끔하지 못했다. 감시카메라가 작동을 멈춘 앞뒤 몇초간 삼륜차를 몰고 회사에 들어와 창고 물건을 싣고 도망가는 어슴푸레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승인할수밖에 없는 증거앞에서 보안대장은 후근부 림시 창고보관 모모가 촌의 로동자 모모의 꾀임에 들어 퇴근후 술과 고기를 사주면서 눈 감아달라 하여 봐준거란다. 처음에는 생떼질이던 미련한 두 인간도 인증 물증 앞에서 창고의 낡은 모터며 쇠붙이를 훔친 사실을 낱낱이 실토했다.

  《닭을 잡아 원숭이한테 피 보이기》다. 절도에 가담한 로동자에게 손해배상 처벌을 안김과 동시에 즉각 퇴사시키고 보안업체도 정규업체로 갈아버렸다. 한동안 회사내에서는 잃어버린다는 소문이 잠잠해졌다.

  재밌는것은 그후 4개월이 지난 어느날, 로산구 로동중재위원회로부터 웬 기소장이 날아왔다. 《신생활》 로동자 모모가 로임배상건으로 법정소송을 걸어왔으니 재판에 나오라는것이엿다. 알고보니 절도사건으로 사퇴시킨 로동자중의 한 촌사람이 그 돈이 아까워 부끄러운줄 모르고 회사를 고소했던것이다. 도적질한 전과있는 사람의 부당한 리익을 지지할수 없다는 회사의 단호한 태도에 법정에서도 기소를 철소하고 사과를 해왔다.

  기업이란 사람이다.

  기업관리란 결국 부동한 사람에 대한 부동한 관리기술인데 내가 산동반도에 와서 어려웠던 또 하나는 산동사람들의 《관계문화》였다. 무던히도 듬직한 산동사람들과 교섭하자면 웬간한 인내심과 끈질김이 없이는 먼저 지치기마련이다. 원칙과 령활성 앞에서 관계가 괜찮으면 그나마 어려운 일도 통과시켜주는데 그렇지 못할 때엔 미련할 정도로 《참답다》. 또 관계가 그닥잖아도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받으면 그만큼 일처리를 해준다. 그러니 공상, 세무, 소방, 위생, 제품검사… 한해에도 수많은 대관업무 처리에서 쉽게 일 보려면 선물 없이는 어렵다는 당연한 생각으로 고정된 직원들이였다.

  물론 인지상정으로 리해는 되지만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건 납득되지 않았다. 어떻게 좋은 대인관계를 만들어갈것인가? 어떻게 적은 비용 야무진 실력으로 실무효률을 최적화할것인가?

  담당자들이 주인공 의식과 기죽지 않고 당당히 일하도록 자부심을 키워주었다. 즉 《기업인들의 납세금으로 공무원들이 살아가는만큼 주인은 기업인이고 영웅도 납세인들이다.》 다음 실무간담, 경험교류 등 유익한 모임을 마련하고 담당자들간의 실무처리 노하우를 공유하였다. 또 의리를 중히 여기는 산동 사나이들의 개성에 맞춰 해마다 음력설과 추석때면 어김없이 고마웠던 관계단위친구들을 한사람씩 찾아다니면서 회사제품을 선물하고 우정을 돈독히 하였다. 산동사람들은 점차적으로 《정직 인화 창조》란 신생활 문화를 리해하기 시작했고 신생활 대관업무에 적극적인 협조를 보내왔다.

  기업이란 문화이다.

  우리 기업은 다국적 다문화 가족이다.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서 어떻게 서로 잘 맞물려 돌아가면서 상호보완 시너지 효과를 낼것인가? 이는 기업발전의 엔진과도 같다. 천성이 어질고 친화력이 좋아 어떤 사람과의 교제도 무난하다고 늘 엔진으로 자부해왔던 나였건만 《신생활》 안봉락회장님을 알게 되면서부터 긍정의 힘, 경청의 힘, 포용의 힘의 진가를 더 알게 되였다. 나는 《따제(大姐)》다운 너그러움으로 여러 부서 사장님들과 임직원, 로동자지간의 소통과 단합을 위해 주도적으로 친목의 장을 만들어갔다.

  상대를 인정하고 말하기를 절제하며 겸손하게 리해하는 경청실천행동도 게을리지 않았다. 또 해마다 봄이면 사업부 여러 사장님들과 함께 신생활 가족 전체를 이끌고 푸른 산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로산 등산활동을 조직한다. 해마다 년말이면 뜻깊고 다채로운 송구영신 총화표창모임을 마련하여 한해를 마감하고 래일을 충전한다. 일은 관리하고 사람은 임파워해주기라고 애사심이 커가고 단체심이 커가니 생산량이 늘어나고 매출액도 부쩍 상승했다.

  이 몇년래 우리 회사는 련속 4년간 당지 정부로부터 《경제발전 선진기업》으로, 《산동성 식품A등급 단위》로, 《납세중점보호기업》으로, 《소방안전 표준기업》으로 거듭났고 나 자신은 지난해 정협 로산구 제11기 위원으로 당선되여 참정의정 민주감독의 사회무대에서 현지인들과 어깨 나란히 책임과 의무를 다해가고있다.

  기업이란 자아실현의 광장이다.

  고향 떠나 이 몇년간 신생활은 실로 나에게 진정한 자유란 무엇이며 참다운 삶이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있다면 밥 먹는 일도, 돈 버는 일도 아닌 사람의 마음을 얻어내는 재간일것이다. 신생활은 나에게 이 재간도 가르쳐주었다. 나는 늘 나는 왜 채용되였는가? 내가 만약 일에 대한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면 어떤 리유가 있을가?가장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나만이 할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가장 좋은 시간 사용법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으로 자기발전을 약속한다.

  삶은 경력이 아니라 사명이다. 나는 가을의 들국화를 사랑한다. 우리 신생활회사의 《사화》여서뿐만 아니다. 가을서리를 이겨내고 의연히 꽃을 피우는 그 의연함이 좋아서이다. 나는 가을의 들국화마냥 내 인생의 가을에서 시련을 이겨내고 더 많이 리해하고 더 많이 배려하며 넉넉한 마음으로 아래우 사람들을 포용함으로써 나이 듦이 얼마나 멋진지를 보여주며 살아가고싶다. 오늘도 나는 도전앞에서 자기를 찾고 자신의 이름으로 삶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생각은 젊게, 일은 열심히 하고있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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