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북한에 적십자회담과 군사당국회담을 동시 제안한 것을 두고 미국 일본과 중국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중국은 즉각 환영 입장을 냈지만 미·일은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한국정부 남북관계 개선의 첫발을 떼자마자 한반도 주변국 사이의 전략적 입장 차이를 조율해야 하는 난제에 직면하게 됐다.
숀 스파이서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17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정부의 대북 제안 관련 질문에 “한국 정부가 답변해야 할 문제”라면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조건을 명확히 밝힌 바 있다. 지금 상황이 그런 조건과 거리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도 별다른 논평 없이 “한국 정부에 물어보라”고만 답했다.
스파이서 대변인의 발언은 한국 정부의 대북 제안을 직접 언급했다기보다는 북·미 간 대화 조건을 재차 확인한 것으로 일단 해석된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는 것은 명확하다. 미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로 문재인정부와 마찰을 빚을 때도 “한국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절제된 논평을 냈었다.
일본도 비슷한 반응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뉴욕 방문 중 기자들과 만나 “한·미·일 정상회의 때 대화와 압박이 모두 중요하지만 지금은 압박해야 할 때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기자회견을 통해 “(회담 제안은) 한·미·일의 대북 압박 기조와 모순되지 않는다”며 수위 조절에 나서는 모습도 보였다.
이에 반해 중국은 훨씬 긍정적이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8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국제사회가 남북 대화 재개와 관계 개선을 지지하고 한반도 문제 해결에 건설적인 역할을 맡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루 대변인은 “한반도 문제 관련국은 (남북관계 개선을) 이해하고 지지해야지 방해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중국은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강조해 왔다. 루 대변인의 발언도 중국 당국의 전통적 입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반면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극도로 민감한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의 대화에 거부감이 강하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북 제안으로 한·미·일 공조에 ‘엇박자’가 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18일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 화상상봉장 벽면에 붙어 있는 이산가족들의 희망 메시지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우리 정부의 적십자회담 제안에 대해 이날까지 뚜렷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뉴시스
한국 정부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한국 통일부 당국자는 “이번 제안은 초기 단계의 남북 접촉일 뿐 본격적인 대화가 아니다”면서 “한·미 간 큰 입장 차는 없다”고 했다. 이 당국자는 “제안 전에 미국에 외교 경로로 설명했고 미국도 이해를 표시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문상균 한국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아직 북한에서 나온 반응은 없다”며 “북한의 반응을 보면서 (적대행위 중단 등) 추가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18일자에서 미8군사령부 평택 이전을 격렬히 비난했을 뿐 별다른 대남 메시지는 내지 않았다.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