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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권 쟁탈전…잡혀 사느냐, 잡고 사느냐

[기타] | 발행시간: 2012.07.02일 15:20

얼마 전 소파에 누워 tv채널을 돌리다가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하나 보았습니다. 여러 명의 주부들이 나와 ‘아내가 잡고 사는 것이 나을 것인가 잡혀 사는 것이 나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설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패널로 나온 한 사람은 부부 주도권의 확인지표는 아침밥을 누가 차려주는가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아침밥을 차려주면 ‘잡혀 사는 여자’랍니다. ‘잡고 사는 여자’의 집에서는 남편이 출근 전에 아내가 먹을 아침밥을 차려놓는다는군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주도권 쟁탈에 무척이나 예민한가봅니다. 결혼 전의 젊은 남녀들을 위해서는 연애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테스트하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개발자는 테스트 결과에 따라 주도권을 빼앗아올 수 있는 특별한 팁까지 알려준다고 설명합니다.

최근에는 베이비트리에 올라온 글들을 읽던 중 마음에 남는 댓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양육의 주도권을 잃지 않고 훈육하는 방법을 알려 달라는 글이었습니다. 부부 주도권, 연애 주도권에 이은 ‘양육 주도권’입니다. 유치원, 어린이집,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아이들과의 주도권 쟁탈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요. 결혼생활이나 연애관계에서처럼 학년 초에 기선을 제압해놓지 않으면 일 년 내내 아이들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교실 주도권’입니다. 선배교사들은 후배교사들에게 이런저런 조언들을 합니다. 표정과 말투로 카리스마를 뿜어내야 한다는 둥, 한 녀석을 잡아 혼쭐을 내어 다른 아이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한다는 둥...

이처럼 ‘주도권’이라는 말은 주동적인 위치에서 어떠한 일이나 상황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권리나 권력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애와 부부생활, 교육이나 양육 상황에서 모두가 주동적인 위치만을 점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될까?’하고 말이죠. 많은 교육학자들은 성장기 동안 양육자 및 교육자로부터 어떻게 대우를 받았는가, 그리고 그들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자랐는가는 성인이 됐을 때 그 사람이 가지는 인격, 가치관, 공감능력, 사회성, 쾌활함 등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이들의 역할이 공동체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이 만들어 놓은 규율이나 규칙의 복종이냐, 아니면 공동체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일이냐에 따라, 그리고 무언가를 배운다는 일이 이미 만들어 놓은 지식이나 관습을 정해진 틀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냐, 아니면 세상에 대한 새로운 경험과 연습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은 크게 달라진다는 겁니다. 존중받아보지 못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기는 어렵습니다.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자라난 아이들이 커서 가정폭력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처럼요. 존중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소통’이겠지요. 그것이 어른이든, 아이든 간에 서로가 나이나 권위로 주도권을 잡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의견과 의사를 나누면서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나가는 것. 그런 학습과 훈련이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한 교실에서 배우는 협동이니 인성이니 하는 말은 한낱 공허한 수사에 불과합니다.

제가 유학시절 ‘하이스코프’라는 유아교육 프로그램에서 얻은 가장 큰 삶의 교훈 중의 하나는 주도권은 빼앗거나 빼앗기는 것, 얻거나 잃는 것이 아닌 ‘기꺼이 나누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내가 인도자, 안내자가 되고, 때로는 상대방이 그래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 구성원(그 중에서도 특히 연장자)의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주도권은 ‘나누는 것’이어야한다는 생각은 적절한 때 밀고 당겨야하는 기싸움의 심리에너지 소모를 줄여주고, 좀 더 즐겁고 행복하게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지요. 가족 공동체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에게도 기꺼이 주도권을 나누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즐겁고 행복한 육아의 시작입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먼저 어른들은 아이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면서 그들에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가르쳐서 길러야한다는 생각을 버려야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에는 아직 어른들도 배워야 할 것들이 무궁무진하며, 이 모든 것들을 아이와 ‘함께’ 배운다는 생각을 가져야합니다. 아이들에게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을 때에는 통제하고 가르쳐야한다는 생각보다는 인생의 선배로서 경험을 나눈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어른들 역시 기쁜 마음으로 아이들로부터 그들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어 받습니다. 존중과 즐거움이 바탕에 깔린 양육태도는 우리 아이들을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며, 당당하고 행복한 아이로 키웁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과의 생활이 항상 기쁨이고 즐거움일 수만은 없지요. 어쩐지 우리네 삶이란 갈등과 대립의 연속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해야 하는 양치질은 왜 때마다 안 하겠다는 것인지, 기를 쓰고 차려놓은 밥상 앞에서 투정은 무슨 태도인지, 자기가 어질러 놓은 장난감은 도대체 누구더러 치우라는 것인지...양육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일상에서 나타나는 소소한 갈등을 줄이기 위한 매우 중요한 대책 중의 하나가 바로 ‘체계’, 즉 ‘시스템’입니다. ‘시스템’은 비단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지요. 가정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칼럼(“엄마 나 이제 뭐해?”엄마 꼭두각시 안녕~(2012년 2월 14일자))에서 설명 드린 ‘나’와 ‘우리’가 살아있는 예측 가능한 하루일과와 사람, 물건, 상황에 대한 구체적 설명, 그리고 그것들을 고려한 선택과 자율의 권리 등은 가족 구성원이 주도권을 나눠가지며 살 수 있는 ‘체계’입니다.

주도권을 기꺼이 나눠가질 수 있는 양육자는 또한 아이들의 행동을 ‘발달의 과정’ ‘성장의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아이들의 실수나 실패를 걱정하고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실수나 실패, 시련을 통해 아이들이 얻게 될 경험의 가치를 믿고 존중하기 때문이지요. 베이비트리 <책, 육아를 부탁해>에 소개된 책 ‘야누스 코르착의 아이들’에도 나와 있듯이 아이들에게는 실수할 권리, 실패할 권리도 그리고 지금 그 모습 그대로 소중하게 생각될 권리도 있습니다. 현명한 양육자는 아이들과의 대립과 갈등을 ‘위기’로 생각하지 않고 ‘배움의 기회’로 삼습니다. 세상과 세상살이를 경험으로 배울 수 있는 아주 소중한 기회인 것이지요.

삶 속에서 부딪치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부모의 모습은 우리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마음속에 품게 될 내 부모의 모습이자 그 아이들이 살아갈 삶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먼 훗날, 내 아이의 마음속에 자신과 자식 모두를 존중하고 사랑한 부모로 남고 싶으시다면, 그리고 내 아이가 ‘나’와 ‘너’, ‘우리’를 모두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 건강한 인간으로 자라길 바라신다면 주도권은 우리 모두의 것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 한겨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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