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이기기 쉽지 않은 의료소송에서 한 평범한 주부가 한의사를 상대로 민사는 물론 이례적으로 형사 소송에서도 이겼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지숙(53.여.가명)씨는 지난 2010년 피부염을 앓고 있는 21살 딸을 위해 한의원에서 한약을 지어먹였다. 그런데 약을 먹기 시작한 지 두 달 째 되던 날 황달 증세가 왔다.
급히 찾은 대학병원에서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딸의 간기능이 10%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황급히 대학병원에 입원하려 했지만 한의사는 입원을 만류하며 오히려 자신이 딸을 회복시켜주겠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이 씨의 딸은 증세가 호전되기는 커녕 점점 악화됐다.
이 씨가 간 이식까지 해줬지만 이미 때는 늦어 딸은 그 해 7월 결국 숨지고 말았고, 이 씨는 한의사 A씨를 상대로 의료소송을 시작했다.
◈ '일단 증거부터 확보하라'...과실인정 녹취록이 가장 유리
이 씨는 "의료진이 과실을 인정하는 내용의 말을 할 경우, 이것을 녹취해 두는 것이 가장 유리한 증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황 중에 녹취를 못한 이 씨는 진료기록을 확보해 분석에 들어갔다. 한의사가 한약의 부작용에 대해 주의를 주지 않은 점, 또 황달이 왔는데도 입원을 만류한 점 등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딸의 몸 상태를 찍어둔 사진도 재판에 큰 도움이 됐다. 이 씨는 "혹시나 몰라서 준비해던 자료나 사진들이 큰 도움이 됐다"며, "사고 즉시 녹음을 하지 못했다면 고소를 하기 전에 의료진을 찾아가 잘못을 인정하는 부분을 확보하라”고 조언했다.
고소를 당한 뒤부터는 누구라도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잡아뗀다는 설명이다.
황달이 왔는데도 한약을 계속 먹인 사실과 간 기능이 10%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병원을 옮기지 못하게 한 한의사의 잘못을 입증해낸 이 씨는 결국 재판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해당 한의사가 이 씨 등 유족에게 2억 6,000만 원의 손해 배상을 해야한다고 판결했다. 또 한의사에게는 1년 금고의 실형이 내려졌다.
길게는 2년 이상 걸리고, 민사에서도 이기기 쉽지 않은 의료분쟁에서 이례적으로 6개월 만에 형사 소송에서도 이긴 것이다.
◈ '나홀로 소송'을 해도 전문가 도움은 필수
피해자들은 소송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길 수 없다는 두려움에 체념하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에는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하는 판례가 늘고 있다.
강태언 의료소비자 시민연대(의시연) 사무 총장은 "민사소송에서는 산부인과를 제외하고 피해자가 일부 승소하는 경우가 40%까지 늘어났다"고 말했다.
의료사고는 '의학'이라는 전문 분야이고 의사의 잘못을 피해자들이 입증해야하기 때문에 반드시 의료 전문 변호사나 시민단체의 실무적인 협력을 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당부했다.강 총장은 "많은 피해자들이 비용에 부담을 느껴 혼자 소송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초기비용을 아끼고 소송에서 지는 것보다 처음에 돈이 조금 들더라도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한다면 많게는 억대까지의 배상을 받을 수 있다"며 신중한 판단을 조언했다.
- 노컷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