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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48] 가슴이 뭉클한 모성애 (박영옥편 5)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20.06.24일 13:40
엄마는 어릴 때 야학교에 며칠만 다녔지만 아주 당당하고 명지하고 감사할 줄 아시는 분이다.

내가 1학년을 마치는 날 엄마가 학교로 오셨는데 과자 한봉지를 선생님 품에 안겨주셨다. 사탕 한알이라도 생기면 쪼개서 나눠먹던 그 때 세월에는 귀한 선물이였다.

“아니, 이건…”

담임선생님이 놀라하면서 그 과자를 나의 손에 쥐여주려고 했다.



두만강변에서 엄마와 함께

“선생님께서 바로 걷지도 못하는 우리 딸 때문에 수고 많았습니다. 선생님 덕에 일찍 소선대에도 들고 우수학생도 되였지요.”

그렇다. 소선대에는 열살이 되여야 가입하는데 나는 파격적으로 아홉살에 가입했던 것이다. 확실히 담임선생님의 덕이 많았다. 애들이 늘 놀려줘서 선생님은 그걸 말려야 했고 내 공부에 특별히 신경을 써주셨다.

하학 후면 동네애들이 여러가지 놀음을 노는데 다들 나하고는 놀기 싫어했다. 그럴 때면 난 한쪽켠에 우두커니 서서 눈물을 흘렸다. 이를 보아내신 엄마는 그 어려운 살림을 하시면서도 명월진에 다녀오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줄뛰기를 사주셨는데 농촌에서는 처음 보는 모양이 예쁜 줄뛰기였다. 량끝에 손잡이가 달렸고 알락달락 여러가지 색상의 천으로 만든 것인데 집집마다 곤난해서 줄뛰기란 고작해야 바오라기 아니면 새끼줄로 놀던 세월에 이 같이 사치스런 줄뛰기는 처음 보는 애들이다. 그리고 헌 고무신을 곱게 오려서 고무줄 놀이기구와 제기, 그리고 딱지도 가득 만들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의 호주머니에는 늘 누룽지가 있었다.

식량이 모자라서 쩍하면 죽을 쑤어 먹는 세월이였지만 엄마는 죽을 다시 가마에 쏟아넣고는 불을 피워 누룽지를 만드셨다. 그것을 본 동생들이 먹겠다고 떼질 썼으나 엄마는 무작정 내 호주머니에 넣어주셨다.

“엄마 미워, 왜 언니만 주는 거야?”

동생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막 터졌다.

“너 언니는 다리가 아프잖아? 이 누룽지를 언니가 먹으면 다리가 안 아파해”

처음에 나도 딱 곧이 듣고는 누룽지를 먹고는 걸어보았다.

후에 안 일이지만 엄마는 내 곁에 많은 친구를 불러오느라고 그랬던 것이다.

다른 애들한테 없는 것이 나에게 다 있게 되자 애들이 욱 하고 날 찾았다. 그 럴 때면 나는 마치 자신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라도 애들과 함께 노는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되였다.

마당에서 애들과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엄마는 이렇게 자애로우시면서 나를 강한 성격과 감사함을 아는 마음을 가지도록 키워주셨다.

소학교에 다닐 때 겨울철에 학교를 다니는 게 매우 어려운 일과였다. 그때 우리 집은 학교에서 3리가량 떨어져있었는데 절반거리를 줄이기 위해 고동하라는 큰 강을 가로질러 다녔다.

3학년 때의 어느 날,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진종일 그칠 줄 몰랐다. 하학 후 교문을 나서니 엄마가 보였다. 나는 제꺽 엄마 등에 업혔다. 엄마 등은 여전히 포근했다.

날 업은 엄마는 강 건너 언덕까지 가시더니 날 내려놓으셨다. 아마도 잠간 쉬려는가부다. 그런데 엄마 입에서 이런 말이 불쑥 나올 줄이야.

“내 먼저 올라가마. 넌 절로 천천히 올라오거라.”

“나더러 혼자서 어떻게 올라가라고? 넘어지라고 그래요?”

나는 대뜸 기겁한 소리로 물었지만 엄마는 이미 거의 올라가고 있었다. 그 언덕은 아주 높은 데다 꽤나 가파로왔고 또한 여기저기에 얼음이 깔려있었다. 나는 마지 못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지가 펀펀한 사람도 오르기 힘든 언덕인데 나야 더 말해 무엇하랴.

몇발자국 오르던 나는 휘청대다가 미끌어 넘어지면서 아래로 굴러내려갔다. 나는 일어설 념도 하지 않고 언덕 우에 서 있는 엄마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엄마는  달려내려와 부축할 대신 도리여 그 자리에 선 채로 나를 꾸짖는 것이였다.

“넌 어쩌면 그렇게도 용기가 없느냐? 넘어지면 절로 일어설 줄 알아야지. 넌 인제는 어린애가 아니다. 어서 다시 올라와.”

나는 속으로 엄마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다른 때는 날 업고 걷는 엄마가 땀 흘리는 걸 보고 내려놓으라고 해도 그냥 고집을 부리던 엄마가 오늘은 웬 일일가? 나는 엄마가 미워났다. 나는 저도 모르게 눈물까지 흘렸다. 그러면서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넘어지면 일어서고…자꾸만 넘어지게 되자 아예 벌벌 기여서 올랐다. 그렇게 나는 끝내 오르고야 말았다. 처음 내 힘으로 올라보았다. 나의 얼굴에 어느새 웃음꽃이 피여났다. 엄마의 얼굴도 환해졌다.

“너 오늘 참 장하구나. 마음을 먹으면 세상에 못해낼 일 없단다. 너의 인생은 너절로 살아가야 해. 오늘 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간신히 걸어올라오는 걸 보고 내 가슴은 찢어지듯이 아팠다. 하지만 너의 의지를 키우기 위해서 부득불 모진 마음을 먹게 된 거다.”

말을 마친 엄마는 손등으로 눈굽을 찍었다. 그 때는 엄마가 한 얘기가 무슨 뜻인지 잘 깨닫지 못했지만 어른이 된 후에 그 때의 엄마가 얼마나 고마왔는지 모른다. 그 어떤 보물에도 비길 수 없는 엄마가 동년에 나에게 주신 이 선물로 해서 나는 그 후에 끊임없는 불행앞에서도 쓰러지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3학년에 진학하자 한 마을의 한 학급에서 공부하는 박련화, 최금주, 김순일(고)등 애들이 학교에 오갈 때 가방을 메다주기도 했다. 세상물정 모르는 난 아침에 학교에서 볼 책을 가방에 넣으면 엄마가 야단치셨다.

“너 그 두꺼운 책까지 넣으면 가방이 무거워서 그 애들이 힘들어하니 책은 두고 가거라.”

그래도 나는 고집을 꺾지 않을 때가 많았다. 내 가방을 멘 그 애들이 무거운  가방 때문에 한쪽 어깨가 처지는 걸 볼 수도 있었지만 그 때는 왜 그렇게도 천진했던지…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상대방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고 내 욕심만 차렸던지…

이외에도 내 추억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겨울이면 담임선생님이 날 집에까지 업고 갈 때가 있었는가 하면 한 마을인 고급학년 친구들이 하학만 하면 날 업겠다고 서로 당기는 장면도 있었는데 김춘옥, 지화자, 리옥금 등 고급학년 언니들은 한두번도 아닌 수십번이나 추위 속에서 손까지 얼구면서 날 업고 다녔다.

또한 학교에서 집에 돌아올 때 길가에서 날 만나면 몰고 가던 소수레를 세우고는 날 안아서 수레에 앉히던 한 마을의 학철이 아버지, 한패의 애들이 내 뒤를 따르며 놀려주는 걸 보면 그 애들을 쫓아주던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날 보면 집에까지 태워다주던 동네의 여러분들 하나하나가 오늘도 나를 울먹하게 만든다. 인제는 모두가 고인이 되여서 하늘나라로 갔다. 생전이라면 술이라도 대접하겠건만…

엄마는 감사함을 잘 표현하시는 분이다. 겨울에 학교로 오갈 때 날 업고 다닌 고급학년 언니들에게, 내 가방을 메여다준 친구들에게 엄마는 구차한 살림이라 돈이 없었지만 맛 나는 음식을 만들어서 가져다 주었고 실로 장갑을 떠 주기도 했다.

엄마가 이렇게 인사를 할 때마다 그 집 부모들이 야단이다.

“한 마을에서 살면서 서로 돕는 건 응당한데 우리 애가 조금 도왔다고 이렇게 꼭 갚다니? 어서 도로 가져가오.”

조롱조롱 자식을 가득 키우면서 돈 한푼도 쪼개 쓰는 형편이지만 엄마는 이렇게 처사해오셨다.

내가 초중 1학년 때의 겨울방학에 아버지가 출근하는 량식관리소에서 사람을 고용하여 집 지을 나무껍질을 벗기게 하였는데 한대에 10전이였다. 이 정보를 알게 된 나는 즉시 같은 학급에 다니는 친구 셋을 불러서 뚝딱 해치웠다.

돈을 나눌 때 엄마는 돈을 나보다 그 애들에게 조금 더 주었다. 나는 입이 잔뜩 나온 채로 엄마와 걸고 들었다.

“왜서 같이 일했는데 돈은 똑 같게 나누지 않는가요?”

“얘야, 넌 가만히 앉아서 손만 놀려서 큰 힘이 안들었지만 그 애들은 벗길 나무를 메여오고 다 벗긴 다음 또 메여가고 거기에다 네 앞의 나무까지 메여 날랐으니 일을 더 많이 한 게 아니냐? ”

어찌 보면 딸한테 자비감을 주는 것 같지만 ‘일 많이 한 자가 더 얻기’ 법칙에 부합되지 않을가? 그 때 만약 그 돈을 똑 같이 나누었다면 그 시각은 기분이 좋았겠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미안함이 남아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이렇게 사심이 조금도 없는 명지한 분이셨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고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서 배운 감사함을 나는 오늘 실천하고 애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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