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에 탄생한 요극(姚剧)은 당시 여요탄황(余姚滩簧)으로 일컬어지며 소흥, 상해에까지 전파되면서 인기를 구가했다.
특히 19세기 중엽부터 민국시기 초기에 이르기까지는 여요탄황의 전성기로 볼 수 있는데 관련 민간극단만 50개가 있었단다.
어지러운 시국을 비판하고 혼인자유를 추구하는 등 내용으로 인해 공연금지를 당하면서 한동안 저조기를 겪다가 1956년 9월에 여요요극단이 설립되고 1979년 6월부터 심수량(沈守良)이 단장직을 맡으면서 비교적 빠른 발전을 가져오게 됐다.
현재 여요시에서는 요극을 보다 잘 보호하고 전승하기 위해 요극 공연시장의 공고와 확대 그리고 요극의 창작을 격려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해마다 근 20개 극의 160번에 달하는 공연이 진행되고 있으며 2년에 하나씩 창작극을 선보이고 있다.
아울러 절강성문화청에서는 요극양성반을 세워 관련 인재를 양성해내는 데 한몫 했다.
한편 요극은 2008년 6월에 제2패 국가급 전통희곡류 무형문화재 종목으로 평의됐으며 대표적 전승인은 심수량이고 보호단위는 여요시요극보호전승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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