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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회장, 소프트뱅크 “세계 톱10으로 키우겠다”

[기타] | 발행시간: 2012.10.12일 17:52
소프트뱅크의 손 마사요시(한국명: 손정의, 55세) 대표이사 회장은 무슨 일이든 대충하는 법이 없다.

그런 손 회장이 소프트뱅크를 앞으로 최소 300년 동안 생존하는 회사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실제로 2010년에는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 물색에 나서면서 당시 4,0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리기도 했다(당시 손 회장은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다).

한번은 손 회장이 일본 정보통신부를 찾아가 특정 규정에 대한 개정을 요구하며 분신 자살을 하겠노라며 협박을 한 적도 있었다. 일년 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졌을 때에는 회사 이사진들을 모아 놓고 소프트뱅크에서 완전히 물러나서 에너지 문제를 위해 일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원전사고 문제에 상당히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손 회장은 지난 3월에 열린 한 대체에너지 회의에서 “당시 이사회 회의에서 흥분한 나머지 테이블까지 두드리며 ‘말리지 마라. 누가 뭐래도 (회사) 관둘 것’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사회의 설득으로 계속 회사에 남았다.ZUMAPRESS.com

손 마사요시(한국명: 손정의) 소프트뱅크 대표이사 회장

만약 소프트뱅크가 스프린트넥스텔 인수에 성공한다면 최근 손 회장이 발표한 초특급 목표는 실현 가능한 것이 될 수도 있다. 회사를 세계 “톱10” 반열에 올려놓겠다는 야심찬 포부 말이다. 손 회장은 30년 뒤 영업이익 최소 128억 달러, 시가총액 2조6,000억 달러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 업적은 손 회장의 자수성가 스토리에 대미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 한국계 일본인인 그는 무일푼으로 시작해 일본에서 두 번째 부호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포브스 지에 따르면 손 회장의 순자산은 72억 달러이며, 현재 일본 최고 부자는 유니클로로 유명한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다다시 대표이사다.

2010년 손 회장은 자신의 향후 30년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나는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뭐든지 다 하겠다는 각오로 사업에 뛰어 들었다”고 밝혔으며, 또한 “이 작은 나라를 벗어나 미국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손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일본에서 매우 보기 드문 사례다. 일본의 경영자들은 내성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다, 일본 사회에는 소수민족에 대한 편견이 깊게 뿌리 박혀 있어 비지니스 세계에서 성공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2010년 프리젠테이션 자리에서 손 회장은 판자촌에서 자란 얘기도 들려 줬다. 판자촌은 일본 북서부 사가 현의 철도 인근에 있는 불법 주거지역이다. 그는 한국인 이민자였던 자신의 할머니가 자신을 나무 통으로 된 수레에 태우고 이리저리 끌고 다녔는데 그 통은 집에서 키우던 돼지에게 먹일 식당 음식물 쓰레기를 얻어올 때 쓰던 것이었다며 어려웠던 시절에 대해 회고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십대 시절에는 자신이 한국계라는 사실이 부끄러워 할머니를 많이 원망했다고도 말했다. 또 “할머니를 보면 김치가 떠올랐고 내게 김치는 곧 한국이었다”면서 “우리는 일본 이름 속에 우리의 정체성을 숨기고 다녀야 했는데 그것이 내 열등감을 키웠다”고 털어놨다.

버클리에 있는 캘리포니아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손 회장은 지금의 실리콘 밸리가 있는 지역에서 혁신이 제조되는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그후 일본으로 돌아와 1981년 소프트뱅크를 설립해 소프트웨어사업을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일본 시장에 도입하는 데 일조한 것도 바로 소프트뱅크였다. 1990년 대 후반 무렵 손 회장은 도쿄에 대저택을 소유할 만큼 이미 부호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저택 지하에는 계절별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골프연습장까지 있었다.

손 회장의 동료 및 경쟁자들은 그가 가진 매력과 불굴의 의지를 성공의 열쇠로 꼽았다. 손 회장은 크게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고, 주위에서 미쳤냐는 비난이 쏟아져도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타입이다. “동키호테가 따로 없었다.” 2000년 대 초반 일본 내 광대역 통신망 구축 사업에 입찰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회사는 재정도 어렵고 사용자 한 명 없는 상태였는데 손 회장은 백만 명의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관련 장비 구축에 돈을 쏟아부었다. 손 회장은 2003년 월스트리트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내 친구가 그 일을 하겠다고 했다면 하지 말라고 말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결단력 때문에 손 회장은 매우 집요하고 끈질긴 감독자 유형이라고 그와 일해 본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가령 프로젝트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손 회장은 담당자들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를 걸어 일의 진행사항을 예의주시할 타입이다. 그런데도 발전이 없다면? 담장자들 사무실을 어슬렁 거리며 감시할 지도 모른다. 일례로 2000년 대 초반 데이터전송 표준 문제로 분쟁에 휘말리자 손 회장은 해당 사건을 담당하고 있던 산업 단체 회장에게 매일같이 전화를 걸어 댔다. 결국 그 회장은 몸져 눕더니 사임하고 말았다고 당시 사건을 지켜본 관계자들은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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