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의 반란 … 안보 불안감 자극 받아 ‘노풍’ 불었다
박근혜 승리 요인 분석
숨어 있던 보수표 뭉치고
휴전선 인근 지역 표차 벌려
3김 맞먹는 개인 브랜드 통해
19일 인천시 용현동 용현여자중학교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18대 대통령 선거 투표율은 75.8%를 기록해 16대 70.8%, 17대 63%보다 높았다. [인천=연합뉴스]
승리는 결국 산업화 세력에 돌아갔다. 산업화 세대의 후예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화 세력을 대표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정면 승부 결과다.
박근혜 당선인의 승인(勝因)은 먼저 5060 이상의 압도적 지지에서 찾을 수 있다. 중·장년층의 ‘반란’이 박 후보를 도왔다는 분석이다. 유권자의 40%에 이르는 50대 이상 장년층은 평소 인터넷 댓글이나 SNS 활용도가 떨어져 2030세대에 비해 여론 형성 능력이 뒤진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인터넷 포털, 트위터 등에선 으레 2030의 의견이 주류를 이뤘고, 이게 종종 전체 국민여론으로 오인되는 일이 잦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가 정면으로 맞붙은 이번 선거에선 그동안 온라인 여론을 지켜만 보던 50대 이상이 위기감을 느끼고 투표소에 몰려나와 박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다. 이들은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국내외 위기상황을 헤쳐나가려면 정치 초년병인 문 후보보다는 박 후보의 검증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정치컨설팅 업체인 상상이상의 김희경 대표는 19일 “숨은 보수의 표심이 그동안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중앙포토]
박 당선인은 선거 이슈에서도 장년층의 선호에 맞는 쪽에 섰다. 대표적인 게 외교안보, 대북 정책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의혹, 북한 장거리 로켓 발사 등 안보 문제를 적절히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선거전문가들은 승부처인 경기·인천에서 박 당선인이 예상보다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은 안보 이슈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본다. 그는 경기 부천·광명 등 도시 지역에선 문 후보에게 밀렸지만, 평택·파주·포천·연천 등 북부 접경지역이나 군사시설 밀집지역에서 문 후보를 큰 표차로 따돌렸다.
과거 3김(金)과 맞먹는 박 당선인의 강력한 개인 브랜드도 주요 승인이다. 18일 실시한 리얼미터 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25.6%에 불과했다. 현 정부의 정치적 기반이 이렇게 허약한데도 여당이 대선에서 이긴 것은 박 당선인이 이 대통령과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문 후보 측이 ‘이명박근혜’라는 슬로건으로 현 정부의 실정에 박 당선인이 공동 책임이 있다고 집중 공격했지만 박 당선인이 비껴갈 수 있었던 이유다. 캠프의 핵심 참모는 “박 당선인이 무리한 정치공학을 멀리하고 원칙주의 노선을 고수했던 게 결과적으로 유권자들에게 어필한 것 같다”며 “야권 단일화 바람을 막기 위해 캠프에선 개헌론 제기 등 여러 가지 승부수를 건의했지만 박 당선인은 ‘그런 건 민생 우선에 맞지 않는다’며 끝내 수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역별로는 박 당선인의 정치적 근거지인 대구·경북(TK)이 예상대로 똘똘 뭉치면서 박 후보 당선의 1등 공신 지역이 됐다. TK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향수가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박 당선인 측은 당초 TK에서 투표율 80%, 득표율 80%라는 목표를 세웠는데 거의 달성한 셈이다. 또 그동안 새누리당의 불모지였던 호남에서도 처음으로 두 자릿수 득표율을 기록했다. 지역주의의 두터운 벽을 다소 낮춘 것도 그의 득표에 보탬이 됐다.
1987년 이후 최초로 ‘보수대통합’을 박 당선인이 이룩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승인이다. 캠프 관계자는 “이회창·이인제 의원 영입이 오히려 젊은층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내부 우려도 있었지만 박 당선인은 한 표라도 도움이 되는 분들을 다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박 당선인이 공언한 국민대통합 시대를 만들려면 문 후보를 지지한 절반에 가까운 유권자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야 할 것이란 지적이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상대 진영의 혼선과 전략 미스도 빼놓을 수 없다. 새누리당 핵심 당직자는 “사실 문 후보가 아니라 안철수씨가 야권 단일 후보가 됐다면 구도상 박 당선인이 중도층 흡수에 애를 먹었을 텐데 친노 진영이 안씨를 밀어내면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선거 막판 민주당이 승부수로 던진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헛방으로 기운 것도 박근혜 지지층의 투표율을 높였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