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서남부에 펼쳐진 나미브 사막의 붉은 황야 위에는 ‘요정의 원’이라 불리는 기이한 문양들(사진)이 있다. 땅에 마름병이 퍼진 것처럼 건조한 풀밭에 모랫바닥을 드러낸 구멍들이 번져있다. 이름부터 신비한 이 점 문양은 앙골라에서 나미비아를 지나 남아프리카 북쪽까지 1900㎞ 이상 이어진다. 지역 원주민 힘바족은 원시 조상 ‘무쿠루’가 만들었다고도 하고, 신의 발자국이라고 믿기도 한다. 땅 속에 사는 용의 숨구멍이라는 신화도 있다. 일부 과학자들도 유독가스가 올라온 지점의 풀이 말라 죽은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동안 수많은 가설을 만들어낸 이 원들이 사막 흰개미의 작품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독일 함부르크대 노르베르트 위르겐스 생태학 교수는 수년간의 분석을 통해 흰개미들이 한해살이 풀의 뿌리를 갉아먹은 부분이 구멍이 됐다는 논문을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인터넷판에 29일 실었다.
개미가 식물을 죽인 것은 물 때문이다. 비가 잘 내리지 않는 사막에서 풀은 물의 증발을 가속화시킨다. 식물을 없애면 물은 지표면 밑에 오아시스처럼 모이게 돼 개미들은 계속 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 또 물이 모인 구멍 가장자리에는 다년생 식물이 자라는데, 사막이 더 건조해졌을 때 이를 먹을 수도 있다. 특히 흰개미가 계속 생존하면 도마뱀과 두더지, 땅돼지, 자칼, 거미 등 다른 사막 생물체의 훌륭한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위르겐스 교수는 “직선의 강을 댐 기능을 하는 호수로 바꾸는 비버처럼 흰개미는 건조한 사막에서도 영속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오아시스 역할을 하고 있다”고 BBC에 말했다.
경향신문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