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정현수 기자][왜곡된 결제시장의 주범으로 꼽혀온 밴 수수료…자율경쟁 체제로 변경]
신용카드 밴(VAN·Value Added Network) 수수료 체계는 줄곧 국내 결제시장을 왜곡시키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소액결제가 많은 중소가맹점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반면 대형가맹점들은 밴사로부터 리베이트까지 받으며 반사이익을 누렸다. 금융당국이 밴 수수료 체계를 개편하려는 정책의지를 갖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단독] 신용카드 '공공 밴' 설립 추진한다
밴 수수료 개편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지난해 12월이다. 당시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밴사에 지불하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퇴임을 앞뒀던 김 전 위원장이 밴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그만큼 문제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밴 사업자들은 신용카드 결제 과정에서 카드사와 가맹점의 승인업무를 중계한다. 카드 전표 매입 업무와 신용카드 단말기를 설치·관리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밴사는 승인과 매입 업무를 대행하고 카드사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1000원을 결제하든 100만원을 결제하든 밴 수수료는 평균 120원으로 책정된다. 23년째 이어져온 구조다.
밴 수수료는 가맹점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카드사들은 밴 수수료를 감안해 가맹점 수수료를 결정한다. 비용이 많이 발생할수록 가맹점 수수료를 높게 책정하는 구조다. 상대적으로 소액결제가 많은 중소가맹점에 높은 수수료가 부과되는 이유다. 밴 수수료를 낮추면 중소가맹점도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 3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가맹점 수수료 개편이 소상공인에게 실질적 혜택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질문에 "밴 사업자 부문에서 신용카드 원가를 낮추는 방안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밴 수수료를 낮춰 가맹점 수수료를 추가로 인하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겠다는 답변이었다.
금융당국의 이 같은 의지와 함께 카드업계와 밴업계는 지난 2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밴 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KDI는 연구결과를 오는 11일 공청회에서 발표한다. 가맹점에서 밴사를 직접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다. 일종의 자율경쟁을 도입하는 것으로, 이 과정에서 밴 수수료가 자연스럽게 내려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번 개편안이 대형가맹점과 대형 밴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협상력이 강한 대형가맹점은 상대적으로 낮은 밴 수수료를 이끌어낼 여지가 크다. 대형 밴사 역시 시장점유율을 더욱 독식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KDI는 '공공 밴' 설립을 제안한 상황이다.
금융위는 공청회 결과를 바탕으로 밴 수수료 체계 제도화에 나설 예정이다. 카드사들은 밴 수수료가 실제로 인하되면 이를 반영해 가맹점 수수료도 손보게 된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말 가맹점 수수료가 개편되기 전에 밴 수수료를 먼저 개편했어야 하는데 순서가 뒤바뀐 측면이 있다"며 "다소 혼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