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내가 조심할 수밖에”
(흑룡강신문=하얼빈)10년전 한국에 ‘코리아 드림’꿈을 안고 온 김씨는 “한국서 돈 벌려면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살아왔기에 그동안 돈은 벌었지만 마음 한구석은 서운한게 많았다. 최근 한국매체는 중국 동포건설노동자 김씨의 속마음을 들어봤다.
중국 옌볜 옌지 출신 동포 김철씨(58)는 10년 전 한국에 와서 처음 들어간 레미콘 회사에서 3개월간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 일요일 근무는 물론 비가 와서 다른 한국인 노동자들이 모두 쉬는 날에도 우비를 입고 혼자 일했다. 사장은 “네가 중국인이기 때문에 이걸 견딜 수 있는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두 딸의 아버지인 김씨는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라는 욕을 들으며 사무실 청소부터 미장일까지 도맡았다.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밤에는 야간 경비도 섰다. 그렇게 2년간 일하면서 한 달에 쥔 돈은 130만원이었다. 근로계약서나 4대 보험에 대해서는 몰랐다.
김씨는 “내가 돈을 벌어야 딸들이 중국에서 공부를 할 수 있으니까, 여기서 싸우고 해고라도 되면 다 끝난다고 생각했기에 견뎌왔다"고 전했다. 그땐 다른 데 취직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해서 무조건 내가 져야 한다고 스스로 되뇌었다. 먼저 한국에 돈 벌러 갔다 온 이웃들도 “한국 가면 중국보다 대여섯배는 돈을 더 벌 수 있다. 다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사가 현장 노동자나 직원을 함부로 대하는 건 중국 문화에서는 낯선 일이다. 김씨는 “중국에서의 경험, 상식을 모두 버리고 다 참았기 때문에 살 길이 트였다. 조선족 차별에 불만을 가지면 한국에서 지낼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첫 직장을 나온 뒤 한국 서울과 경기 인근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다. 어디라도 위험한 일, 귀찮은 가욋일은 자연스럽게 중국동포에게 떨어졌다. 그럴 때마다 김씨는 인정받기 위해 일부러 나섰다고 했다. 최근 몇몇 공사현장에서 중국인 작업자들이 안전사고로 죽었다는 뉴스도 봤지만 “나만 조심하면 괜찮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중국에서부터 평생 공사장 미장일을 하면서 일반 작업자들보다 많은 월급을 받았던 김씨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기대를 버렸다. 현장소장이 월급을 나눠 주면서 “중국사람은 한국에서 일해도 중국에서 받는 만큼만 받아야 한다”고 비아냥거려도 못 들은 체한다.
지난 10년간 김씨 덕분에 두 딸은 대학을 졸업했다. 오는 12월 두 딸과 아내도 한국으로 올 예정이고, 김씨는 가족과 함께 여생을 한국에서 보낼 생각이다.
김씨의 고향은 ‘코리안드림’ 열풍으로 거의 비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 생활이 나쁘다고 생각 안 한다”면서도 “하지만 한국에 올 아내와 딸들이 이곳에서 나와 같은 일을 겪어야 한다면…”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그렇지만 살아 남으려면 무조건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