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스며드는 시장경제] [上] 김정은의 분배 확대정책 이후
성과 따른 생산물 분배 강화에 일부지역 농업생산 10% 증가
'金 거래 땐 총살형' 엄포에도 암거래商 통한 매매 활발
북한에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자국 화폐보다 달러를 더 신뢰하고 실제로 통용하는 현상)'이 급속히 진행 중인 것은 주민 생활 저변에 퍼져 있는 시장의 영향력과 무관치 않다. 북한에는 이미 휴대전화 가입자가 200만명을 넘어섰고 평양에는 까르띠에·샤넬 등 명품을 파는 상점도 등장했다. 주민들은 당국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금(金) 거래에 나서고 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집권 후 이른바 '6·28 조치'(2012년)를 통해 성과 분배에 시장경제적 요소를 일부 도입하고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친(親)시장파'라는 이유로 내쳤던 박봉주 내각 총리를 재기용한 것도 "시장의 힘을 사후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 집권 후 시장 친화책 도입
김정은은 지난해 4월 제4차 노동당 대표자 대회를 통해 노동당 제1비서에 오르면서 공식적으로 집권했다. 그는 이후 내각에 "경제 관리 방식의 개선을 준비하는 소조(태스크포스)를 구성하라"고 지시했다. 2개월 후인 작년 6월 28일 북한은 '새로운 경제관리 체계' 또는 '우리식 경제 관리 방법'이라고 불리는 조치를 내놨다. 농업과 공업 분야에서 성과에 따라 생산물 분배를 강화하는 것이 이 조치의 핵심이었다.
협동농장에서는 분조 규모를 20~30명에서 4~5명 선으로 줄여 사실상 '가족농'이 가능하도록 했다. 북한은 생산물을 6(국가) 대 4(농민) 또는 7 대 3의 비율로 분배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탈북자에 따르면 "황해도 일부에서는 작년에 식구 5명인 한가족이 땅 4정보(약 1만2000평)를 경작해 쌀 4t을 가져갔다고 한다"며 "식구 5명이 1년에 900㎏이면 먹고 산다고 할 때 3t 이상의 쌀은 개인적으로 챙겨서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이 조치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올봄 일부 지역에서 농산물 생산량이 10% 정도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공장이나 기업소도 초과 생산분만큼 봉급을 더 많이 주거나 노동자들이 이를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현재 일부 농장과 공장에서 시범 실시 중인 이 조치를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실각했던 박봉주를 올 4월부터 다시 총리로 기용했다.
북한은 이후 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를 상당 부분 완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시장 친화적 조치 도입은 이미 어쩔 수 없게 된 현실을 사후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정권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활용해보고자 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성과는 아직 미지수
하지만 이 같은 조치들이 성공할지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우선 북한 군부 등 강경파의 입김이 건재하기 때문에 이를 계속 추진하는 데 내부 갈등 요소가 상존해 있다.
북한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이른바 '우리식 경제 관리 방법'은 작년 6월 발표됐지만 이후 일부 보수적 변경이 있었고, 실제로 시행되기 시작한 것도 올해부터로 추정된다"며 "그만큼 북한 내부에 갈등이 있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또 농장이나 공장에 경영상의 자율권을 부여하더라도 이를 활용할 자본 및 경영 능력이 부족한 점도 문제로 꼽힌다. 자본주의식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도 이를 시행할 주체들이 훈련이 돼 있지 않아 성과를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정은의 경제 개혁 조치가 성공하려면 군사비와 우상화·특권층을 위한 비용 등 비생산적 비용을 줄이고 국제적 신뢰를 회복해 해외 자본을 유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6·28조치는
북한이 농업과 공업 등 각 분야에서 성과에 따라 생산물을 분배하도록 한 조치. 일부 협동농장, 공장·기업소 등에서 시범 실시 중이며 농민·노동자가 생산량의 일정 부분을 국가에 내면 나머지는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도록 했다. 작년 6월 28일 발표됐다는 점에서 ‘6·28 조치’로 불린다.
[황대진 기자]
[안준호 기자]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