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마운드에 오르는 임창용 (사진제공: 포커스케이닷컴)
수 없이 상상해 본 장면, 제가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는 꿈이 실현됐습니다.
9월 7일 토요일(한국시간 9월 8일 일요일)은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될 겁니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지만 메이저리그 데뷔전은 분명 제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처음 오르면 가슴 벅찬 느낌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럴 틈이 없었습니다. 뛰어가듯 정신없이 마운드에 올랐거든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전 8회쯤 마운드에 오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7회 두 번째 투수 부룩스 데일리가 밀워키 선두타자 로건 셰퍼를 플라이로 잡았는데, 데일 스웨임 감독님이 마운드에 올라가더군요. 그러더니 투수교체 사인이 난 것입니다. 몸을 완전히 풀지 않은 상황에서 얼떨결에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등판 타이밍에 대해 커뮤니케이션이 정확히 되지 않은 것이죠. 앞으로 신경을 더 써야 할 부분입니다.
게다가 당시 스코어는 3-4, 불과 한 점 차이였습니다. 제가 실점하면 우리 팀의 역전 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죠. 맞습니다. 안 그럴 줄 알았는데 긴장이 좀 되더군요. 모든 게 제가 예상했던 첫 등판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임창용 선수의 유니폼을 입고 리글리 필드를 찾은 한국 팬 (사진제공: 포커스케이닷컴)
이제 시작입니다. 초구는, 물론 직구였습니다. 포수 미트 한가운데를 보고 힘차게 던졌는데 뭔가 밸런스가 맞지 않더군요.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볼이 될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 공 역시 직구였습니다. 모처럼 짜릿한 손맛을 느꼈습니다. 그건 제대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이후엔 컨트롤이 잡히지 않아 션 홀튼을 볼넷으로 내보냈습니다. 다음엔 야쿠르트에서 함께 뛰었던 아오키 노리치카였습니다. 바깥쪽 직구를 잘 밀어 안타를 때리더군요.
1사 1,2루에서 진 세구라를 병살타로 잡았습니다. 홀튼에게 던진 2구째처럼 몸쪽 직구가 잘 먹혔습니다. 제가 맡은 이닝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더그아웃 앞에 팀 동료들이 나와 제 첫 등판을 축하해줬습니다. 기쁘기보다는 사실 창피했습니다. 아웃카운트 2개를 깔끔하게 잡지 못한 게 머쓱해서요. 그래도 다들 참 고마웠습니다. 아직 이름도, 얼굴도 다 모르지만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뛴다는 건 그런 의미인 것 같습니다.
피칭 중인 임창용 선수 (사진제공: 포커스케이닷컴)
첫 등판이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경기를 마치고 한국식당에 가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이제 시작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당장 다음 등판은 어떨지, 내년엔 어떨지 저도 궁금해졌습니다. 마이너리그에서 뛸 때는 사실 힘들고 고생스럽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꿈꾸던 마운드에 서니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뱀직구'라는 별명을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뱀처럼 휜다면 직구는 아니죠. 패스트볼의 움직임이 좋을 때 뱀이 꿈틀거리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칭찬입니다. 근데 사실 제 눈으로 '뱀'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아무리 잘 던져도 공은 똑바로 가는 걸로 보이거든요. 경기가 끝나고 영상을 확인할 때야 공이 휘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토요일 밀워키전에서 제가 던진 공 14개(직구 13개) 중 2개 정도가 제 맘에 들었습니다. 홀튼에게 던진 2구째, 세구라에게 던진 14구째입니다. 겨우 아웃카운트 2개를 잡고 메이저리그가 어떻다는 말은 하지 못할 것 같아요. 더 던져보고, 더 편해져야 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 공을 던지면 된다고 믿습니다. 제 눈엔 보이진 않지만 ‘뱀직구’를 던질 수 있다면 해볼 만할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뒤 많은 팬들의 응원을 받았습니다. 아직 보여드린 것도 없는데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 더 힘차게 던져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