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급호텔의 꽃장식이나 와인 등 예식상품 끼워팔기 관행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개선 권고에도 불구하고 각종 추가비를 대며 수천만원대의 부대상품을 강매하고 있다. 정부 당국도 실효성 없는 '권고'만 남발할 뿐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호화·사치 결혼문화를 선도하는 호텔 예식상품에 실질적인 제재를 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꽃장식'은 부르는 게 값…호텔예식 거품의 주범
호텔 예식상품에서 꽃장식과 식사는 전체 비용의 약 80% 이상을 차지한다. 이 가운데서도 꽃장식은 뚜렷한 가격 기준이 없어 부풀리기 쉬운 항목으로 지목된다. 지난 5월 공정위가 조사한 서울시내 21개 특1급호텔 꽃장식 최저비용은 평균 712만2000원. 호텔 결혼식비용은 다른 일반 예식장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을 고려하면 호텔이 거품을 조장해 가격과 물가상승을 주도한다는 해석이다.
가격이 높은 이유는 호텔 직영 및 협력업체에서 정해놓은 고가의 꽃장식 상품을 강매하기 때문이다. 이에 공정위는 자체조사를 벌여 지난 7월1일 해당 특급호텔의 예식상품 끼워팔기 관행을 자진 시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머니투데이가 서울의 유명호텔에 문의(6일~10일)한 결과 비용추가 없이 꽃장식 외부반입을 허용한 곳은 20곳 중 2곳뿐으로 확인됐다. 대다수는 꽃장식을 외부에서 반입할 경우 대관료 등 명목으로 수백만원에서 최대 2200만원을 추가 부과하는 '꼼수'를 부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5곳은 꽃장식 외부반입을 불허했다. 와인의 경우 외부반입시 관례적으로 3만원 이상의 서비스비용을 받았다.
호텔 측은 결혼식을 치를 경우 여전히 일정 수 이상의 식사와 꽃장식과 음주류를 필수항목으로 소개했다. 꽃장식의 외부반입 가능 여부를 묻자 계산기를 두드려 전체 단가 대비 추가비용을 불렀다.
A호텔 관계자는 "꽃 외부 반입은 가능하지만 홀 대관료가 추가된다"며 "꽃 완성품뿐 아니라 기물 일체, 무대장식을 들여와야 하며 준비와 철수 시간을 충분히 내주기 어렵고 사고를 책임져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꽃장식과 주류 외부반입을 불허한 B호텔 관계자는 "'식사·음료·꽃'을 하나의 기본세팅으로 본다"며 "저희 홀만의 특장점을 살리기 위해 외부진행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꽃장식 종류 세분화를 통한 가격하락을 유도했지만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확인됐다. 21개 호텔 꽃장식 최저가는 420만~2200만원. 평균 874만원이다. 실제 판매가는 최저가에 비해 높게 형성되고 있다.
지난달 C호텔에서 결혼한 정모씨(28·여)는 꽃장식에만 1000만원을 썼다. 정씨는 "견적서상 최저가는 500만원이었지만 몇 송이 되지 않아 상담 중 가격이 올랐다"며 "꽃은 가격이 비싸도 원래 비싼 건지 알 길이 없고 신부 입장에선 깎았다가 혹시 한번뿐인 결혼식을 망칠까봐 호텔 제시안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D호텔에서 결혼한 이모씨(28·여)는 "생화는 부르는 게 값이라 바가지가 심했다"며 "수국과 장미, 백합만 해도 400만~500만원을 부르는데 연예인이 했다는 히야신스나 작약 같은 수입 꽃이라도 들어가면 가격이 수직상승했다"고 귀띔했다.
◇시민단체 고발에도 당국 개선의지 없어
'호텔의 꽃놀이패'가 신랑·신부의 가슴을 멍들게 하지만 정작 이를 감시할 정부 당국은 알면서도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7월 1일 서울시내 특급호텔 예식상품 불공정 판매관행을 발표하면서도 법적 제재가 아닌 '자진 시정'을 권고했다. 소비자의 충분한 사전선택 기회, 패키지 예식상품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기호 등을 고려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해 10월 공정위에 결혼식 비용 거품을 고발한 서울YMCA 시민중계실 관계자는 "특급호텔이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등을 위반했지만 검찰 고발이나 과징금 부과 없이 자진시정에 그치는 건 봐주기식 조치"라고 밝힌 바 있다. 현행법상 공정거래법은 공정위에 전속고발권이 있다.
서울YMCA 관계자는 "특급호텔 20곳은 다른 예식장도 따라갈 수밖에 없는 본보기로 끼워팔기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며 "호텔 고객층이 돈이 많다고 끼워팔기가 정당화될 순 없다"고 지적했다.
고병희 공정거래위원회 서울사무소 경쟁과장은 "편법 운영이 신고되면 조치하겠다"면서도 "호텔예식은 남들과 차별화된 예식서비스를 제공받으려는 소수를 위한 결합상품으로 명품의류, 고급자동차와 같이 법적으로 제재하기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호텔 견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곳을 가면 되기 때문에 독점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자혜 소비자시민모임 회장은 "모방소비로 초호화 결혼식이 중류층까지 확산되고 있는 추세라 호텔예식의 이용층을 소수로 볼 수 없다"며 "당국은 시정조치가 실제 비용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