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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분노로 묻는다 “어른들은 왜” 지금 단원고에선…

[기타] | 발행시간: 2014.04.30일 04:59

뒤집힌 팔(八)자로 치켜 올라간 눈꼬리와 쐐기 모양으로 앙다문 입. 수십 개의 얼굴들은 잔뜩 성이 나 있었다. 몇 명은 주르륵 눈물을 쏟았고 ‘각성하라’는 머리띠와 팻말을 든 왼편 여학생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정면의 플래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무능력한 정부는 각성하라!-벌써 열흘이 넘었다…살아 있던 사람도 죽겠다!!!!!’

지난 28일 밤 안산 단원고 앞 카페에서 정운선 경북대 교수(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는 그림 한 장을 보여줬다. “지금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라”는 말에 아이들이 만든 것 중 하나였다. A4 용지에 볼펜으로 쓱쓱, 분노한 자신들의 얼굴을 가득 그려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단원고는 사고 13일째인 지난 28일 1학년과 수학여행을 떠나지 않은 2학년 13명이 합류하면서 전 학년 수업이 재개됐다. 교육부 산하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장을 맡고 있는 정 교수는 3학년이 등교한 24일부터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위기학생 교육 기관인 위(Wee)센터 상담사들과 함께 학생들의 트라우마를 최소화하기 위해 상담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화가 났다, 이런 얘길 하는 거예요. 어른들한테. 이 애들한테 지금 어른들은 완전히 ‘아웃’이에요. 불신이 극에 달해 있어요. 정부에도, 언론에 대해서도.” 정 교수가 말했다. “미안해” 어른들이 해야 할 말

수업 재개 첫날 단원고에 간 외부 전문가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사과였다. 3학년 반을 돌며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사과는 엉뚱하게 실내화로부터 시작됐다.

학생들은 현관 입구에서 실내화로 갈아 신은 뒤 교실에 들어간다. 실내화를 잊은 아이들은 맨발로 걸었다. 단원고 구성원 모두가 아는 이 규칙을 몰랐던 건 아이들 상처를 치료해 주겠다며 흙발로 몰려든 소위 ‘전문가’들이었다. 정 교수는 “아이들 맨발과 우리 구두를 내려다보고 아차, 싶었다”고 말했다.

상담보다 사과가 먼저였다. 실내화를 준비하는 동안 몇몇 정신과 전문의들과 상담사들은 짝을 지어 교실 문을 두드린 뒤 “너희들 공간에 마음대로 신발 신고 돌아다녀 미안하다”고 말했다. 사과는 상담 내내 이어졌다. 허락 없이 학교에 들이닥쳐서, 너희들 공간을 침범해서, 마음을 묻고 하기 싫은 말을 하게 해서 미안해. 그리고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해.

“사과를 하니까 그제야 애들이 기분 나쁘다, 그래요. 실내화 안 신은 것도, 낯선 어른들이 학교에 막 들어와 돌아다니는 것도 싫대요. 우리가 5층 독서실에 상담실을 만들어 숨어 있겠다고 하니까 어떤 학생이 이래요. 눈에 안 띄게 숨어 있는 거면 괜찮다고.”

정 교수는 “미안하다”가 지금 단원고에 가장 필요한 말이었다는 걸 하고 나서 알게 됐다고 했다. 돌아와야 할 아이들, 못 돌아오는 아이들

28일 오후 장례를 치른 유가족 5명이 단원고 교무실에 들이닥쳤다. 교문을 지키던 경찰이 출동해 말렸지만 흥분한 유가족들은 고함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우리 아이는 죽었는데 왜 학교는 벌써 멀쩡히 돌아가느냐. 학교 폐쇄하고 1·3학년 학생들은 다른 학교 가서 수업 받게 하라.” 유가족들은 일상으로 돌아온 듯 보이는 학교를 못 견뎌 했다. 세월호에서 구조된 교사들의 사진과 주소, 전화번호도 요구했다. 유가족들은 학교 앞에서 시위를 하겠다고 말한 뒤 돌아갔다. 어떻게든 학교를 정상화하기 위해 애써온 정 교수 팀은 당황했다. 아이들에게는 슬퍼할 건 슬퍼하되 웃어도 좋다고, 산 사람은 사는 거라고 말해줬다. 하지만 아직 유가족들은 웃는 아이들을 참지 못했다.

유가족과의 문제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고대안산병원에서 치료 중인 생존 학생 75명은 30일 퇴원한다. 그들을 언제, 어떻게 학교로 받아들일 것인가. 어른들은 고민하고 있었다. 생존 학생 상당수는 빨리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반면, 학부모들은 반대하고 교육청은 망설인다. 살아남은 소수의 아이들이 다수의 빈자리를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스러워서였다. 생존 학생들이 유가족이나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게 될 일도 불안했다. 퇴원한 아이들은 학교와 동네를 오가며 죽거나 실종된 친구의 부모, 형제·자매와 끊임없이 마주칠 수밖에 없다.

생존 학생을 치료하고 있는 고대안산병원 고영훈 교수는 “산 사람들은 살아서 기뻐해야 하는데 오히려 살아서 고개를 못 들게 돼 버렸다”고 말했다. 정 교수도 “내 아이가 유가족으로부터 ‘우리 애 손 붙잡고 같이 나오지 왜 너만 살아왔느냐’는 말을 듣게 되는 것, 그게 생존 학생 부모들이 갖는 가장 큰 공포”라고 전했다.

정 교수는 “진짜 가해자는 따로 있는데 피해자들끼리 서로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면서 상처를 덧내는 일이 재난 현장에서는 종종 벌어진다”며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에 대한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살아줘서 고마워”

그래도 할 말을 잊지 않은 건 아이들이었다. 단원고 학생들은 살아 돌아온 2학년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치유와 위로의 메시지를 남겼다. 아이들이 정 교수를 통해 “언론에 보도해 달라”고 요청한 편지들은 생존자들에게 한결같이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얘들아, 아직까지 현실 파악도 안 되고 안 믿기지? 나도 그래. 나보다도 너희들이 더 힘들겠지. 애들 좋은 곳 갔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너네 상처받지 말고 건강히 있어주고, 아프지 말고, 밥도 꼬박꼬박 먹고, 잠도 푹 자고, 울지 말고 있어….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사랑하구 고마워 아이들∼♡♡♡-단원고 일동.”(생존한 아이들에게)

“저는 선생님들이라도 사셔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좋다고 가셔서 울면서 오시고 안타깝습니다. 저희가 지금 정부랑 대통령이랑 언론한테 따지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 빨리 나으셔서 복귀하시고, 보고 싶어요∼∼. 선생님 사랑해요♡♡.”(생존 교사들에게)

단원고 아이들 눈에 비친 세상

하고 싶은 일을 적어보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정말 많은 얘기를 했다. 남학생 가운데는 “몸을 움직이고 싶다” “땀을 흘리고 싶다”는 아이가 많았다. 여자아이들 다수는 “친구들이랑 수다 떨고 싶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축구를 하고 싶다”던 한 남학생이 덧붙인 말도 전해줬다. 지금 아이들이 세상에 느끼는 마음이 아프게 전해졌다.

“우리가 지금 밖에 나가서 축구하면 언론에서 벌떼처럼 나서서 미친 사람들이라고 하겠지요? 헬기 띄워서 운동장 찍고, 쟤네들 제정신이 아니라고, 친구들 죽었는데 축구한다고 그러겠지요? 하고 싶어도 안 해요. 유가족들한테 미안해서 안 해요.”

안산=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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