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문화/생활 > 문학/도서
  • 작게
  • 원본
  • 크게

.수필. 황토길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4.06.20일 15:12
  (연길) 전춘식



  하루 일을 마친 해가 서산에 비딱히 걸렸습니다. 하늘 한자락이 오렌지빛으로 물들어갑니다. 도심에서 버스를 타고 약 20분가량 가다가 도보로 다시 산쪽으로 약 10분정도 걸으면 저만치 언덕받이에 구불구불 뻗어간 길이 보입니다. 그 길은 아직은 현대인들의 손맛을 보지 못한 태초의 향이 물씬 풍기는 황토길입니다.

  멀리에서 보면 할머니의 가리마처럼 반듯하고 어여쁩니다. 흰댕기가 나붓기는듯, 백룡이 고개를 넘어가는듯 보이기도 하는데 바로 이 길을 따라 저녁무렵이면 산책하는 사람들이 늘어서군 합니다. 아무런 약속도 없이 시내에서 왔거나 저 아래마을에서 왔거나를 막론하고 서로가 만나면 알은체 하며 수인사도 건네입니다. 그처럼 여유롭고 그처럼 평화로운 저녁은 다름이 아닌 바로 이 황토길우에서만이 향유할수 있습니다. 그동안 안보이더니 어데로 갔다왔느냐고 그새 몸이 많이 좋아진것 같다며 서로가 고개라도 끄덕여 보이며 간단한 관심을 보일수도 있는 말과 말들이 황토길에서 자연스레 오고가고 합니다. 수식도 없고 그저 스쳐가는 말 같기도 하지만 그 말 한마디에서도 충분히 대방의 마음을 읽어낼수 있습니다. 그런 말을 엿듣는 내 마음마저 어쩔수 없이 황토길처럼 순수해지고 하야말쑥해지는 순간입니다.

  황토길을 걷다보면은 할아버지의 짚신처럼 소박하고 유정하다는 감수가 찐하게 가슴을 울려줍니다. 황토길은 현대적 부(富)와 귀(贵)의 도금칠에도 미련 없이 고집스레 황토길로 남아있습니다. 벤츠도 심지어 그럴사한 구두 한번 등에 업어 보지 못했습니다. 먼 옛적 어느 나무군이 아니면 어느 길손이 지름길로 택하여 한번 또 한번 걸어서 내여진 길인지는 알수가 없습니다만 그 길은 분명 오늘에 이르러 현대인들까지 즐거이 찾는 명상으로 통할수 있는 길로 되여졌습니다.

  내 앞에서 걷는 저 젊은이는 요즘 들어 보이지 않더니 오늘은 애를 데리고 저렇게 나왔습니다. 산나물 채집을 하느라고 그새 안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야만 이 애한테 소비돈이라도 쥐여주고 새옷이라도 철 바꾸어 입힐수 있다면서 젊은이는 싱긋 웃어보입니다. 이 애는 그의 아들이 아닙니다. 형네 애인데 형수는 어데론가 4년전에 종적을 감추었고 한국으로 돈 벌러 떠났던 형은 병만 잔뜩 짊어지고 돌아왔고... 허다보니 자기가 조카애를 맡아서 키우게 된거랍니다. 애는 삼촌의 손을 쥐고 엄마처럼 아빠처럼 졸졸 따르며 때로는 깡똥대며 재롱을 부리기도 합니다.

  애의 손을 꼭 쥐고 노을 깔린 황토길을 걷는 그 젊은이가 마치도 한폭의 유화처럼 보여옵니다. 아직도 그 젊은이가 애를 키워내려면 얼마만한 머나먼 길을 걸어야 할지가 묘연합니다. 그나마 젊은이는 걷다가 애를 훌쩍 안아서 어깨우에 가볍게 얹기도 하는데 보매 그 걸음걸이는 그처럼 온당합니다. 아마 그 젊은이는 자기의 어깨에 놓인 무게에 대해 미처 계산이 안된 모양입니다. 어쩌면 저렇게 태산앞에서도 태연자약할수 있는지 도저히 리해가 안갑니다. 아마도 오지랖이 넓은 사람은 짚신을 신은듯 걸음걸이가 거치장스럽지 아니하고 거뜬거뜬 가벼울수가 있나 봅니다. 내 문턱만 닦고 쓸고 하면서도 삶이 힘들어 죽겠노라고 아우성을 치며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이키니 어처구니 없고 미안쩍고 한편 부끄럽습니다.

  황토길은 명상으로 가는 길이여서 좋습니다. 눈을 살풋이 감고서 자박자박 걸어봅니다. 시끌벅적한 시내에서는 절대적으로 명상에 잠긴다는것이 불가능합니다. 황토길은 오가는 길손들에게 여하한 구속이나 격식도 없이 나름대로 명상을 펼칠수 있는 자유자재의 공간을 제공합니다.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수도 그리고 자아성찰을 할수 있는 그런 사색적인 분위기도 오로지 이 황토길만이 연출해낼수 있습니다. 내 뒤에서 걷는 이 아줌마는 금년에 막 잡아 나이가 예순을 갓 넘었습니다. 마흔두살 파란 나이에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의 병시중을 들어온지도 어언 스무해가 넘었습니다. 누운둥이로 바깥 출입마저 못하는 남편을 위해 그녀는 자신에게 차례진 보라빛 청춘을 달가이 불사르며 참담한 중년의 고개에 올랐습니다. 그녀는 늘 그러하듯 두손을 합장하고 말없이 걸음을 옮깁니다. 혹여나 남편의 병세에 기적이나 아니면 신화라도 나타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비나 봅니다. 가끔씩 그녀가 길녘의 잔꽃들을 따서 조심스레 비닐봉다리에 넣는걸 볼수 있습니다. 그녀는 이런 풀꽃들을 남편한테 보이면서 철의 바뀜을 알린다고 합니다. 부부정이 백지장처럼 엷어져가지 않나싶은 오늘속에 이같이 황토같이 노랗게 익은 참사랑도 어느 한구석에 숨겨져 쌕쌕 살아 숨쉬고있다는 그 엄연한 사실이 내 눈가에 눈물을 그득 물리웁니다.

  황토길에서는 초저녁의 시원한 바람 한자락이 슬밋슬밋 고개를 쳐듭니다. 고마운 바람입니다. 갑갑하게 닫겼던 이내 마음방 속속들이 식혀주면서 소리솔솔 미약하게 착하게 끊었다가 이어지고 이어지다가 끊기기도 합니다. 바람은 사람을 가리지 아니 합니다. 고운 얼굴 추한 얼굴 편견마저 없이 하나 하나의 얼굴들을 부드러이 애무를 해줍니다. 까닭 모르게 덮치던 불안과 그리고 번거로움과 권태로왔던 이런 저런 일들이 가슴속에서 서서히 지워지고있습니다. 마치도 모래불우에 씌였던 락서의 흔적들이 바다물에 씻겨가듯 바람도 그런 묘한 공능을 갖고있다는걸 인제야 금세 깨친듯 합니다.

  길량켠에 뉘연히 펼쳐진 풀밭과 가담가담 동화속 푸른 집처럼 안겨오는 나무들 한그루 한그루가 내 망막속으로 빨려 들어와 내 맘속에 화려한 꽃집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그 꽃집은 아무것도 가진것 없는 헐렁한 마음의 령지에만 앉힐수 있는거라 그러한 자리부터 마련함이 우선일겁니다. 늘 뭔가 부족하다고 불평이 잦았던 생각자투리들이 토막토막으로 잘려져 형체도 없이 바람따라 날려가고있습니다.

  황토길에는 어느새 명상에 잠겨 걷는 이들이 장사진을 이루어갑니다. 그들속에는 이런 저런 아픔에 시달리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뿐만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이 황토길에 자신의 발자국을 찍어가며 그렇듯 담차게 앞으로 앞으로 주근주근 내처 발자국을 찍어가고만 있는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앞서겠다는 그런 야심마저도 그들에게는 사치한 넋두리에 불과합니다. 내가 너보다 더 낫다고 으스대며 어깨를 살리는 그런 본새도 여기 황토길에서는 격에 맞지 않는 비난받을 거동입니다. 황토길에는 황토길에 걸맞는 자세와 그리고 사색거리들만 용납이 되는겁니다. 황토길에서 마음을 수련시키며 황토길의 가르침을 받고저 합니다. 이것이 나 혼자만이 아닌 대개 여기 황토길을 찾는 사람들의 공동한 리유가 아닐가고 나름대로 점지해보기도 합니다.

  황토길과 거리를 보다 가까이 하려고 신을 벗어 두손에 쥐고서 맨발 바람으로 사분사분 걸어봅니다. 금모래알들이 발바닥을 간지릅니다. 황토길이 나한테 건네이는 최상의 “안마”입니다. 뻣뻣하고 무거이 경직되였던 어깨가 한결 시원해지고 놀리기가 편해집니다. 이번에는 풀밭쪽으로 들어서서 걷습니다. 명주같이 말끈거리는 풀들이 내 발밑과 발등을 폭신하게 감싸줍니다. 아, 나는 지금 도시에서 옮아진 부질없었던것들을 훌훌 벗어버리고 청순한 마음의 경지를 찾아 가려 한사코 애쓰고있는중입니다. 내 자신마저도 가늠키 어려웁고 내 의지로도 임의로 움직여갈수 없던 멍에 같은 부담스러웠던것들을 만약 이 황토길이 날 도와 벗겨줄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리 하고 싶은데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황토길에 차츰 어스름이 내리 덮습니다. 고요와 적막도 각일각 짙어갑니다. 이제 이 길에는 무수한 별들이 쏟아져 내려 할머니의 하얀 가리마를 빛나게 하고 할아버지의 짚신을 옛말로 두런거리며 래일의 이야기에 연장선을 달아갈것입니다. 황토길은 저 건너산 기슭으로 아니, 어둠속으로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꼬리를 사려갑니다. 래일도 이 황토길에서는 예의제 없이 낯익은 얼굴들과 낯설은 얼굴들의 만남이 이루어질것이고 그에 따라 황토길을 닮은 이런 저런 마음들과 사연들이 줄줄이 줄쳐서리라 굳이 믿고싶습니다.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여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 관련 태그 기사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4월 29일, 기자가 중국철도할빈국그룹유한회사(이하 '할빈철도'로 략칭)에서 입수한데 따르면 '5.1' 련휴 철도 운수기한은 4월 29일부터 5월 6일까지 도합 8일이다. 할빈철도는 이사이 연 301만명의 려객을 수송하고 일평균 37만 6000명의 려객을 수송해 동기대비 3.2%
1/3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공개하자마자 좋아요 1만 개” 임영웅, 상암콘서트 포스터 공개

“공개하자마자 좋아요 1만 개” 임영웅, 상암콘서트 포스터 공개

가수 임영웅(32) 이달 말 공연을 앞두고 있는 가수 임영웅(32)이 상암콘서트 포스터를 공개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앞서 임영웅의 소속사 물고기뮤직은 지난 5월 1일(수)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을 통해 임영웅의 상암콘서트 포스터를 공개했다. 이번 콘서트의 타이틀

“열심히 준비했다” 하지원, 정호철 커플 결혼식서 생애 첫 주례

“열심히 준비했다” 하지원, 정호철 커플 결혼식서 생애 첫 주례

배우 하지원(45) 배우 하지원(45)이 코미디언 커플인 정호철(36), 이혜지(31) 커플의 결혼식장에서 생애 처음으로 주례를 맡았던 사연을 공개했다. 하지원은 지난 5월 1일(수) 오후 8시 10분에 처음으로 방송된 채널A의 새 프로그램 ‘인간적으로’에 첫 게스트로 출연했

"임영웅 효과" 정관장, 광고모델 바꾸자마자 멤버십 2만명 신규 대박

"임영웅 효과" 정관장, 광고모델 바꾸자마자 멤버십 2만명 신규 대박

정관장 "8일 만에 멤버십 신규가입 2만명…임영웅 효과"[연합뉴스] KGC인삼공사는 가정의 달 프로모션 시작일인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1일까지 8일간 정관장 멤버십에 새로 가입한 멤버스 고객이 2만명을 넘었다고 2일 밝혔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는 작년 가정의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