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칼럼 > 칼럼
  • 작게
  • 원본
  • 크게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5.01.07일 09:50
작성자: 김혁

(흑룡강신문=하얼빈)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윤동주의 시 "흰 그림자"의 전문이다.

  1942년 저 유명한 "참회록"을 읊조리고는 현애탄을 넘은 윤동주의 일본유학시절 첫번째 작품이다.

  편편마다 훌륭해 "옥석"을 가리기 힘든 윤동주의 시 중에서 양띠해를 맞아 특별히 이 시를 뽑아 읊어 봤다.

  시를 보면, 화자는 하루 종일 황혼이 짙어지도록 어떤 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고 있다. 시에서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인 "흰 그림자"는 즉 시인을 괴롭게 만든 수많은 고민이며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은 어두운 곳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선 상황을 은유하는듯 하다.

  화자는 마음 깊숙이 이런 고민을 갈무리하고 선택의 갈림길에서 괴로워 한다. 드디여 시인은 "하루종일 시들도록 귀"를 기울인 끝에 이제 어리석지만 늦게나마 모든것을 깨닫고 오래 마음 깊은속에 괴로워하던 해결할수 없는 고민들을 하나, 둘 버리기 시작한다. 그 동안 연연하면서 사랑하기까지 했던 그 고민들을 돌려보낸 뒤에 "땅거미"를 옮길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의젓하게 풀을 뜯기시작하고 있는것이다.

  2015년 새해는 을미(乙未)년 양의 해다. 새로운 문턱을 넘는 섣달 그믐의 밤에 모두 밝은 꿈을 꾸었기를 바래본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초야에 묻혀 지내던 시절 꾼 꿈은 바로 양 꿈이였다고 한다.

  이성계가 꿈속에서 양을 보았는데 양의 뿔과 꼬리가 떨어지는 바람에 그만 놀라 잠에서 깼다. 꿈자리가 요상해서 무학대사를 찾아가 꿈 이야기를 했더니 대사는 곧 임금에 등극할 것이라고 해몽했다. 한자의 "양(羊)"에서 뿔과 꼬리에 해당하는 획을 빼내면 "왕(王)"자만 남게 되니 곧 임금으로 등극할거라는 풀이였다. 이로서 양 꿈은 길몽, 양은 상서로움의 상징이 됐다.

  여기서 상서로움의 "상(祥)"자를 보면, 왼쪽의 보일"시(示)"자는 원래 "신(神)"을 뜻하는 글자이다. 그러니 신이 양을 만나면서 상서로움을 뜻하는 "상(祥)"이 된것이다. 음(音)으로는 밝은 양(陽)과 같아 더욱 길상의 의미가 있다.

  아홉 번 굽어진 양의 창자처럼 세상이 복잡해 살아가기 어렵다는 구절양장 (九折羊腸)이라는 말이 있다. 올해의 수호신 양이 어떤 기운을 몰고 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앞길이 아홉번 굽어진 길이 주어질지라도 양처럼 깊은 생각, 인내로 그 위기를 넘어야 할것이다.

  그러할진대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조용히, 서두르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조화롭게 적응하는 양의 이미지는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빨리 달리기에만 급급해 하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교훈과 계시를 준다.

  "잎새에 이는 바람"속에서도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주어진 길"을 걸어갔던 윤동주님의 시를 다시 읊어 보는 을미년의 첫 아침이다.

  을미년, 푸른 풀밭의 양떼처럼 모두가 행복하고 길상스러운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여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 관련 태그 기사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영원한 '오빠', 그리고 '가황' 나훈아가 가수 생활 은퇴를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27일, 인천 연수구 송도컴벤션시아에서 나훈아는 데뷔 58년 생활을 마무리하는 단독 공연을 펼쳤다. 그는 이날 "이제 진짜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며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오후 3
1/3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빙설의 꿈, 하나로 잇는 아시아'... 2024년 할빈시조선족중소학생 랑독대회 개최

'빙설의 꿈, 하나로 잇는 아시아'... 2024년 할빈시조선족중소학생 랑독대회 개최

도리조선족학교 초중부 김가영, 소학부 하의연 학생 특등상 아성조중 두사기, 오상시조선족실험소학교 강봉혁 학생 1등상 2025년 제9차동계아시안게임과 할빈빙설문화의 풍채 및 2024년 세계독서의 날을 맞아 최근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 할빈시교육연구원민족교연부,

중국 의학계, 인재 육성∙AI 접목한 교육 강화에 박차

중국 의학계, 인재 육성∙AI 접목한 교육 강화에 박차

"현대의학은 단일 질병에서 동반 질환으로, 질병에 대한 관심에서 건강에 대한 관심으로, 즉각적 효과에서 장기적 효과로, 개체에서 단체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의료 업무는 '질병 치료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 더 나아가 '사람과 인류 중심'으로 전환돼야 합니다.

중국 로동절 련휴 겨냥, 소비 진작 위한 다양한 활동 전개

중국 로동절 련휴 겨냥, 소비 진작 위한 다양한 활동 전개

지난 21일 하북성 석가장시 정정(正定)현의 한 야시장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모습을 드론 사진에 담았다. (사진/신화통신) 중국 정부가 로동절(5월 1일) 련휴를 앞두고 소비 진작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하아동(何亞東)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25일 상무부 정례브리핑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